<서평> 문정인 교수, 일본 최고전략가 14명과 격정인터뷰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

일본은 늘 우리에게 부정의 아이콘이자 따라잡아야 할 롤모델의 두 얼굴이었다. 그러나 최근 그나마 유지되던 이 두 얼굴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한국은 독도와 종군위안부 문제 등 연일 비난 여론을 쏟아내고 일본 역시 우경화의 길을 거침없이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G2시대의 개막으로 그 어느 때보다 한일협력이 절실한 지금, 진정 필요한 것은 뜨거운 가슴을 식혀줄 냉정한 시선일 것이다.

지난 2010년 중국 최고의 지성들과 격정의 토론을 벌이며 ‘우리가 알고 있던 중국’이 G2로 부상한 지금의 중국이 아니었음을, 우리가 잘못 본 중국의 참 모습은 무엇인지, 21명의 중국 최고 지성의 솔직한 고백 <중국의 내일을 묻다>(삼성경제연구소)를 펴내 대중국관의 일대 변화를 일으켰던 제주출신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이번엔 일본 최고의 전략가들로부터 일본의 본심(本心)을 끌어냈다.

서승원 고려대 교수와 함께 쓴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삼성경제연구소, 2만5000원)는 패전 이후 최대의 총체적 위기를 겪고 있는 일본의 현재와 미래를 일본 지성들의 눈을 통해, 일본이라는 나라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다양한 각도에서 선명하게 촬영해 보여주는 대담집이자 뇌지도이다. 특히나 본심을 이끌어내는 대담한 질문들은 강렬한 긴장감을 연출하며 미리 인터뷰이들의 책과 논문을 샅샅이 탐구한 저자들의 내공을 엿보게 한다.

▲ 2010년 중국 최고의 지성 21명과 격정의 인터뷰 <중국의 내일을 묻다>을 펴내, 한국의 대중국 인식에 일대변화를 일으켰던 문정인 연세대 교수가 이번엔 일본 최고의 전략가들이 말하는 일본의 속내를 이끌어 낸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펴냈다. ⓒ 제주의소리
일본, 정말로 우향우를 향해 갈 것인가...

현재 일본은 과거 어느 때보다 드러내놓고 ‘우향우’를 외치고 있다. 지난 2012년 12월 총선에서 정권을 잡은 자민당 아베 총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와 위안부 동원강제성과 인권 침해를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해야 한다고 이전부터 주장해왔고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본격 검토하겠다며 평화헌법 개정과 일본 재무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에 따라 한국 내에서도 일본의 우경화, 나아가 군국주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격양되고 있다.

하지만 비난의 소리를 높이기 전에 그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냉정하게 저울질해봐야 할 것이다. 누구나 일본의 우경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일본은 정말로 우경화될 것인가? 과연 일본 국민은 그에 찬동할 것인가?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의문을 밝혀줄 열쇠가 될 것이다.

쉽사리 ‘적대적 제휴’에 사로잡히고 마는 한일관계에 필요한 것은...

최근의 일본 여론 조사를 보면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평화헌법 개헌 및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반대하는 일본 국민이 더 많다. 일본 최고 지성들의 현실 인식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이 책 역시 우리의 냉정한 판단에 도움이 될 만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은 다수를 대변함에도 불구하고 우파의 득세로 자칫 묻히기 쉽다는 점에서 특히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무엇보다 한일관계가 그 어떤 관계보다 쉽사리 ‘적대적 제휴’ 현상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요한다.

실상 한일관계는 서로를 적대시하지만 역설적으로 상대의 입지를 강화해주는 적대적 제휴 현상이 만연한 상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일본 우파에 대해 한국 측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이들의 정치력을 오히려 강화시켜주는 셈이다. 때문에 우리는 보다 신중한 태도로 일본의 본심(本心)을 정밀하게 진단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일본? 어쩌면 우리가 제대로 묻지 못한 것은 아닌가...

▲ 문 교수가 서승원 교수와 함께 쓴 <중국의 내일을 묻다> 일본판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
우리는 일본에 대해 흔히 겉 다르고 속 다르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우리가 일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저자는 일본의 국가전략부터 동아시아공동체구상, 대북정책과 한미일관계, 전 세계인의 눈이 쏠려 있는 센카쿠열도와 북방영토 문제, 그리고 종군위안부와 독도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뜨거운 이슈를 에두르지 않고 솔직하게, 한편으로 집요하게 묻는다.

그로 인해 돌아오는 답변도 웬만한 역사서나 외교사 한 편을 읽은 듯 각각의 이슈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그려준다. 더욱이 이 책은 전작 <중국의 내일을 묻다>라는 중국 최고 지성들과의 대담집을 통해 때로 돌직구를 마다않고 그들의 감추어짐 속마음을 드러냄으로써 인터뷰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 문 교수의 날카로운 분석과 통찰에 더하여 일본의 정치와 외교를 전공한 서승원 교수의 냉철한 일본 인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사실 특유의 ‘다테마에(겉)’로 무장한 일본인들에게서 ‘혼네(속내)’를 끄집어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일본 최고 전략가들의 속내를 끈질기게 들추어냄으로써 일본의 본심을 노출시키고자 했고, 그만큼 사전에 그들의 신념, 철학적 배경과 언행, 저술 등을 꼼꼼하게 살피고 준비했다. 인터뷰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깊게 파고든 내용도 돋보이지만 대화 곳곳에서 엿보이는 진솔함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저자인 문재인 교수는 “지금 (한.일) 두 나라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비단 중국의 부상이나 북한의 군사적 위협만이 아니다. 그보다도 G2 시대의 개막이 이 지역에 드리울 지정학적 불확실성이야말로 최대의 도전”이라면서 “미중의 G2체제는 더는 가설이 아니라 현실이며, 이들의 전략적 포석에 따라 동북아의 운명과 역사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만에 하나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 충돌이라도 일으킨다면 한국과 일본 모두가 연루되는 커다란 재앙이겠지만, 반대로 이들이 눈짓을 주고받으며 양두지도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우려한다.

문 교수는 “답은 하나뿐이다. G2 체제가 완전히 굳어지기 전에 한국과 일본은 새로운 지역질서를 만드는 작업에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일 간의 건설적 협력은 어쩌면 역사적 소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군사적으로는 개별 동맹을 넘어 다자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경제적으로는 한중일FTA를 확대. 심화해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일이 구체적 목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한일관계의 새로운 좌표를 만들어내는 창의적 발상이야말로 다가올 100년의 역사를 좌우할 첫 열쇠라는 게 14명의 일본 최고의 전략과와 심층대담한 문 교수의 결론이자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다.

과거로의 회귀는 불가능...

이 책은 모두 4부, 14장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1부는 일본의 중장기적 전략구상에 관한 내용으로, ‘미들파워 외교’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게이오대 동아시아연구소 소장과는 일본의 외교전략 전반을, 육상자위대 중장 출신으로 대표적인 지장(知將)이자 군사전략가인 야마구치 노보루(山口昇) 방위대학교 교수와는 일본의 방위전략을, 유엔 사무차장으로 오래 봉직했던 아카시 야스시(明石康) 조이세프 회장과는 일본의 국제공헌전략을 논하고 있다.

소에야 소장은 “일본의 국력이 정점에 달했을 때조차 일본은 강대국 전략을 취하지 않았는데, 그 근원을 따져보면 과거 군국주의 역사에 있다. 군국주의 경험은 지극히 무겁다. 그 때문에 다양한 복고 논의에도 불구하고 평화헌법과 미일안보를 기반으로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여전히 강고하다”라는 발언을 통해 일본 내에 굳게 자리 잡고 있는 반군국주의 정서와 요시다 독트린에 기초한 미일안보 관계 때문에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군사대국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주장한다. 야마구치 교수도 비슷한 맥락에서 미일동맹, 전수방위, 문민통제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견고하므로 군사대국화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들려준다. 하지만 그는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해 “일시적 ‘감정’에 휩쓸려 잘못된 선택을 할 위험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는 말로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미국 없는 일본의 미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

2부에서는 주요국에 대한 일본의 외교전략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전 아사히신문 주필 겸 재단법인 일본재건이니시어티브 이사장과는 미일관계를, 일본 내 중국 연구의 1인자로 손꼽히는 고쿠분 료세이(國分良成) 방위대학교 총장과는 중일관계를, 또한 일본 최고의 동남아 연구가인 시라이시 다카시(白石隆) 정책연구대학원대학 총장과는 대동남아시아 정책을, 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 교토산업대 세계문제연구소 소장과는 일본과 러시아의 관계를 짚어보고 있다.

▲ 저자는 "한일관계의 새로운 좌표를 만들어내는 창의적 발상이야말로 다가올 100년의 역사를 좌우하게 될 첫 열쇠"라고 말한다. ⓒ 제주의소리
일본 외교전략의 두 축은 미일동맹에 대한 충격적이리만큼 확고한 확신과 중국이라는 압도적 위협에 대한 인식으로 요약된다. “미국 없는 일본의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며 “미국은 여전히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이며 미일동맹은 향후 반세기 이상 지속돼야 한다”는 후나바시 이사장의 고백이 놀랍지 않게 들리는 대목이다. 한편 고쿠분 총장의 ‘중국 위협의 본질은 강대해지는 중국 때문이 아니라 정치개혁과 민주화에 실패해 불안정해지는 중국에 있다’라는 관찰은 우리 역시 되새김해볼 만한 인사이트를 제공해준다.

중국보다 민족주의로 무장한 통일한국이 일본에 더 큰 위협...

3부는 우리의 관심이 가장 높은 주제로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를 조명하고 있는데,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명예교수가 한일관계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차분하고 균형 있는 분석을 펼쳐놓는다. 또한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시즈오카현립대 교수가 일본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을, 다나카 히토시(田中均) 일본총합연구소 산하 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이 2002년 고이즈미 방북과 관련한 생생한 증언과 북한 핵문제 타결을 위한 대안을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이를 통해 일본이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과연 일본인납치 문제를 넘어 북한과 수교를 맺을 것인지, 또한 한일관계의 호전을 위해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등을 가늠해볼 수 있다. 앞서 2부의 ‘어쩌면 중국보다는 민족주의로 무장한 통일한국이 일본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후나바시 이사장의 놀라울 만큼 솔직한 전망을 염두에 두면서 한 편 한 편 세세하게 뜯어보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화해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동북아 지역의 진정한 정체성으로 삼는다면...

마지막으로 4부는 일본의 총합안전보장과 미래질서에 대한 탐색을 다각도에서 담고 있다. 이노구치 다카시 니가타현립대학 총장은 미래의 국제질서를 미식축구에 비유하며 일본이 ‘정상국가’로 거듭나야 함을 외치는 것에 반해,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동북아 공동의 집’, 즉 동북아공동체구상이 일본에게 가장 적합한 모델이라고 주장하며 동북아 지역이 침략과 전쟁, 그리고 지배와 굴종의 역사로 점철돼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화해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야말로 동북아 지역의 진정한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역발상의 논리를 내세운다. 더불어 동일본대재해부흥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오키베 마코토 교수로부터 듣는 동일본대재해에 대한 대응방안, 그리고 고이즈미 내각에서 경제개혁의 선봉장을 섰던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로부터 듣는 침체 일로에 빠진 일본 경제에 대한 진단 역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 교수는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말한다.
“일본의 오늘에서 한국의 내일을 읽는다. 사실 우리는 줄곧 일본의 궤적을 따라 걸어오지 않았던가. 이미 우니는 침몰하는 일본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앞선다. 저출산·고령화사회, 저성장 경제의 불투명한 미래, 파편화되고 무기력한 정치, 양극화된 미래비전.,,이 모든 것이 한국의 내일을 예고해 주고 있다. 삼성과 LG의 내일이 소니와 샤프 혹은 파나소닉의 오늘과 다르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 한국을 움직이는 사람들, 장차 한국을 움직일 젊은이들이 오늘의 일본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제주의소리>

<이재홍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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