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선물로 돼지 한 마리 잡았다

귀농 후 세 번째 수확을 마쳤고 세 번째 설을 맞는다. 귤의 수확과 출하가 연말에서 설로 이어지는 대목과 겹치기 때문에 귤을 재배하고서부터는 세월 가는 걸 느낄 새도 없이 한 살을 더 먹는다.

설을 앞두고 예기치 않았던 행운이 찾아들었다. 설에 귤을 선물로 쓰겠다며 두 군데 회사에서 주문이 들어왔는데, 합해서 200상자가 넘는 양이다. 설 대목에 귤 값이 오히려 하락해가는 시점에 온 행운이라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선물용으로 귤을 판 것은 반가운 일인데, 나도 개인적으로 지인들에게 드릴 선물을 준비해야 한다. 매장에 진열되어있는 선물세트는 너무 식상해서 성의가 없어 보이고, 튀는 선물을 준비하자니 비용이 걱정이다.

▲ 설에 선물로 쓰기 위해 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고민 끝에 이번 설에는 돼지를 한 마리 잡기로 했다. 여러 가지 고려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최근 양돈농가들이 당한 처지가 심상치 않기 때문인데, 그 양동농가에는 내 친한 친구와 선후배 등이 여럿 포함되어 있다. 지난 2010년 구제역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많은 농가들이 애써 키운 돼지를 땅에 파묻는 아픔을 견뎌야했다. 그리고 돈사에 돼지를 새로 들여 원상태로 회복하고, 본격적으로 출하를 하려는데 돼지 값이 폭락을 한다. 지난 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돼지 값은 1Kg당 4500원에 달했으나 이후 가격이 떨어져 3000원에 이른다고 한다.

설 명절이 다가와도 가격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전문가들은 "3월 이후 학교급식이 재개되어야 가격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사료 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지난 2007년에 비해 60%이상 올랐다고 하니 양돈농가들이 얼마나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일부 대기업이 돼지 값 폭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서너 개 기업이 대규모로 시설을 갖추고 돼지의 사육 규모를 크게 늘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한돈협회와 양돈농협들이 나서서 돼지 사육마릿수를 줄이기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지만, 기업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규모 확장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 최근 돼지 값이 폭락하면서 양돈농가들이 어려움에 처했다.

 

양돈농가들은 우려했던 한-EU FTA의 충격이 도달하기도 전에, 국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고사할 위기에 내몰렸다. 친구가 운영하는 육가공 회사에 부탁을 했더니 돼지 한 마리를 각 부위별로 8등분해서 8개 스티로폼 상자에 나눠 포장을 해줬다. 그리고 상자를 분홍색 보자기로 싸서 제법 고급스럽게 보였다. 지인들에게 보냈더니 여간 반가워하는 게 아니다.

꽤 큰 돼지를 잡았는데, 돼지 값과 포장비용을 합해도 40만원이 채 들지 않았다. 물론 내가 선물용으로 주문한 돼지 한 마리가 양돈농가에게 당장 큰 힘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회사의 직원들이 귤을 주문했을 때 내가 기쁨을 누렸던 것처럼, 모르는 여러 사람들의 관심으로 양돈농민들도 기쁨을 만끽하기를 기대해본다.

최근 돼지 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가져주길 내가 기대하는 이들이 있다. KBS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는 김준현과 유민상, 김수영 등인데, 이들이 대중들에게 뚱뚱한 돼지 캐릭터로 웃음을 선사해왔다. 지금이 이미지를 활용하면, 벼랑에 빠진 농가에 진짜 웃음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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