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근대건축 산책] (4) 제주의 등대들 下

우도봉 입구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대한민국 여느 등대가 그렇듯 우도 등대 역시 한참 가파른 비탈길에 놓였다. 등대는 보안 등급 3등급으로 군사 지역에 해당돼 일반인은 쉬이 드나들 수 없었다. 대부분의 등대가 옛 모습을 잃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우도봉은 우도에서도 손에 꼽히는 관광지이지만 등대에 관광객들이 드나들기 시작한 건 몇 년 안 된 이야기다. 2003년 우도 등대가 '해양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하면서다.

2001년 우도등대 종합정비사업 추진계획을 확정지어 항로표지 홍보관을 겸한 등대를 새로 짓고 2003년까지 주변 부지를 '등대공원'으로 조성했다. 당시 과장으로 있던 강성복 씨의 아이디어다. 우도에 들어오는 관광객은 늘어나는데 등대를 개방해 관광자원으로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방안을 내놨던 것. 마침 국토해양부에서도 국내 등대 100주년을 앞두고 문화공간으로의 활용을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렇게 32억원의 예산을 들여 2003년 국내 최초로 등대테마공원을 조성했다. 등대역사박물관도 함께 지어 단순한 등대 기능에서 해양문화공간으로 크게 탈바꿈했다. 이후 해마다 예산을 들여 하나씩 고치고 더하기를 거듭하는 중이다. 

▲ 1906년에 지어졌던 등간의 도면. 이를 토대로 100년만에 옛 모습이 복원됐다. <제공=부산지방해양항만청 제주해양관리단>

2006년, 우도 등대 100주년을 기념해 부산지방해양항만청 제주해양관리단(당시 제주지방해양수산청)은 100년 전 우도 등간을 되살려냈다. 1919년에 지은 옛 등탑과 2003년 새로 지은 등탑 사이에 놓여있는 것이 그것이다.

1907년 대한제국 세관공사부 등대국에서 내놓은 '한국등대 1연보'에 실린 우도와 울기 등간의 도면을 입수해 당시 실물 크기로 제작했다. 등간 내부에는 호롱에 석유를 넣어 불을 켠 뒤 쇠기둥에 올려달던 당시의 모습이 재현됐다. 등이 꺼지면 도르레로 내려 불을 켜고 다시 등탑으로 올리는 수고를 해야 했다.

요즘이야 세상 좋아져 장비 점검이 하루 일과 중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석유등을 쓰던 때는 렌즈 닦는 일에 온 종일을 매달려야 했다. 오죽하면 '얼어붙은 달 그림자'라는 시까지 나왔겠느냐 직원들이 너스레를 떤다.

옛 등탑은 아직도 비상시에 쓸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하다. 흔히 등대지기라 알려져 있는 항로표지관리원들의 보이지 않는 고생 덕분이다. 고성봉 우도 항로표지관리소 소장은 옛 등탑을 가리켜 "보수할 때마다 감탄하곤 했다. 외관이나 내구성이나 오히려 새로 지은 등탑보다 훨씬 단단하다"고 말했다.

직원을 채근해 옛 등탑 등롱까지 올랐다. 계단이 좁고 가파른 탓에 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나선형 철 계단이던 것을 한 번 고쳐서 그나마 좋아진 거라고 설명했다. 등롱에까지 오르자 우도 섬이 한 눈에 들어온다. 우도봉 정상에만 올라도 기막힌 경치인데 탑 꼭대기서 바라보는 경치는 사뭇 달랐다.

 

▲ 우도 새로운 등탑에서 내려다본 옛 등대와 새로 복원한 100년 전 등간. 우도 섬의 풍경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제주의소리

 

▲ 2003년 새로 지은 우도 등대. 높이 16m 커다란 외관이 눈에 띈다. 50km 밖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회전식 등명기가 달렸다. ⓒ제주의소리

이왕 둘러보기 시작했으니 새 등탑에도 올랐다. 일반 대리석 계단이어서 등대 오르는 기분 보다는 아파트 계단 오르는 기분이었다. 높이가 16m에 달한다. IT기술을 접목해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대형 회전식 등명기를 갖다놓았다. 그야말로 최첨단이다.

사무실까지 한 바퀴 둘러보자 고 소장이 하소연하듯 털어 놓는다. "옛 등탑은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았다면 진작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실무자들에게도 없는 편이 훨씬 관리하기 쉽다. 그럼에도 보존하고 가꾸려고 애를 쓴다"며 "관람객들이 '오래되고 낡았네? 관리 안 하나?'라고 말할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 옛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말끝을 흐렸다.

우도 등대가 '문화공간'으로 꾸려진지도 올해로 벌써 10년을 맞는다. 지난해에는 국토해양부가 선정하는 등대해양문화공간으로 선정됐다. 주변 자연경관과 역사 등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스토리텔링 개발,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교육기관 등과 연계해 바다미술학교, 해양문학교실 등을 진행해나간다는 계획이다.

덕분에 지난 8월부터 등대해양문화해설사가 배치돼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여혜숙씨는 우도에서 태어나 40여년을 우도에서 산 우도토박이다. 등대에 관한 설명은 물론 섬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하나라도 더 들려주기 위해 공부 또 공부중이라고 말했다.

사라봉에서 제주항을 굽어보는 '산지 등대' 역시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도심지에 위치한데다 운동 삼아 사라봉을 찾는 이들이 많은 덕이다. 부러 등대 공원을 짓지 않아도 절로 관광지가 된 셈이다.

1916년에 지어진 옛 등대는 도심지가 커 가면서 불빛에 가려지는 등 점차 기능을 잃게 됐다. 이에 지난 2000년 종합정비계획 때 건물도 새로 짓고 등대도 더 크게 지었다. 100년 가까이 제 역할을 다한 공로를 인정받아 옛 등대는 국토해양부에서는 영구히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새 등대는 18m 거대한 등치를 자랑한다. 옛 등탑의 건축 양식을 대부분 물려와 형제 같은 인상을 준다.

2000년부터는 예전에 관사로 쓰던 건물 하나를 체험학습장으로 개방했다. 방 3개에 목욕탕, 주방까지 갖추고 있어 콘도 못지않은 시설이다. 이용자도 매년 1000명에 달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누구나 드나들며 등대시설을 관람할 수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 산지 등대. 나란히 서 있는 옛 등대와 새 등대. 우애 좋은 형제 같은 인상을 준다. ⓒ제주의소리

제주지방해양관리단 김한종 해양시설교통팀장은 "우도, 산지, 마라도 등대 등 일제의 군사 목적으로 지어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등대의 역할도 바뀌었다. 앞으로 각 등대마다 알맞은 프로그램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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