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근대건축 산책] (5) 아름다운 빛, 소통의 빛 제주 등명대(燈明臺) 上

이번 연재부터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가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제가 미처 다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번갈아 들려드릴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 제주도내 등명대 분포도. ⓒ김태일

넓은 바다위에 떠있는 섬, 제주에는 바다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

강인한 제주여성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해녀이야기, 한라산과 바다를 이어주는 아름다운 포구이야기, 지형적인 조건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았던 원 이야기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등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주에서 건축된 등대로는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건축된 우도등대(1906년), 마라도등대(1915년), 산지등대(1916년) 등이 있다. 이들 등대는 아마도 일제 강점기 당시 침탈한 물자와 사람들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건축된 제국주의 유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이들 등대는 등대 고유의 기능뿐만 아니라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상징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먼 바다까지 강렬한 빛을 보내야만 했던 것이 관청이 주도하여 건축하였던 현대식 등대였다면, 근해를 중심으로 어업활동을 하였던 제주어촌마을의 주민들이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건축하고 자체적으로 관리하였던 등대가 바로 등명대(燈明臺)다.

#. 제주 등명대 축조시기와 어원 살펴보기

제주의 등명대는 제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민간등대인 셈이다. 건축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현존하는 용담동 등명대가 1957년에 세워진 것으로 볼 때 전기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이전까지는 등명대가 건축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북촌리 등명대에 남아 있는 비석(碑石)에 “대정(大正) 4년(1915) 12월 건립”이라는 기록으로 보아(그림) 일반적으로 등명대 건축연도는 대략 1910년-1940년 사이에 건축된 것이 많으리라 추측된다.

▲ (1) 북촌리 등명대비. ⓒ김태일

등명대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하와이에서 도시계획가로 활동 중인 이덕희의「제주의 도대불」(1997년)와 필자가 쓴「아름다운 불빛, 제주 등명대」(2008년), 제주시문화원의 제주문화18 「등명대, 그 첫 불씨를 찾아」(2012년)정도다. 책마다 등명대를 도대불이라고 명칭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도대불로 부르기도 한다.

북촌리 포구의 유적에  '등명대(燈明臺)'라는 옛 표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등명대(燈明臺)''라는 명칭이 초기부터 사용되었다고 생각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실제 제주시문화원의 조사에 의하면 북촌리 등명대비뿐만 아니라 제주시 도두동 ‘오래물’에서 발견된 비석이나 제주시 삼양동 서가름포구의 등명대비에 새겨진 내용에도 ‘등명대’로 표기되어 있는 점을 확인한 바, 등명대로 통칭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그럼에도 이덕희의「제주의 도대불」에서 도대불로 부르고 있는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점도 학술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도대불의 어원(語源)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배의 돛대처럼 높은 대(臺)를 이용해서 불을 밝혔기 때문에 '돛대불(도대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

둘째, 길 즉 배가 오고 가도록 길(道)을 밝혔던 대(臺)라는 의미로 '道臺불(도대불)'로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

셋째, 도대불이 건축된 시기와 발음을 고려하여 볼 때 일본의 등대(灯台、燈台(とうだい、Toudai)), 즉 토우다이→ 도대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

이들 모두 타당성을 갖는 주장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등대와의 관련된 주장 은 일본의 옛날등대를 보면, 거의 제주의 등명대와 유사한 형태를 갖고 있어서 공감이 되는 부분이지만,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 (2) 일본에서 현존하는 最古級의 明石港旧灯台(1657年、兵庫県明石市)(인용자료)

그림2의 明石港旧灯台(1657年、兵庫県明石市)의 경우는 크기와 비례감, 그리고 축조기법은 다르지만 기단부분, 삼각형태의 본체부분과 경사계단, 그리고 불을 피웠던 상부부분은 애월읍 등명대의 그것과 거의 유사한 형태다.

▲ (3) 洲崎(우자키)의 高灯籠(타카토로)(1802年、福井県敦賀市)(인용자료).

그리고 그림3의 洲崎(우자키)의 高灯籠(타카토로)(1802年、福井県敦賀市)와 그림4의 住吉燈台(1688-1704年頃、岐阜県大垣市)은 고산리의 형태와 상당히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등명대가 건축되었던 당시의 시대상황이 일제강점기였다는 점, 그리고 근해에서 어업활동을 하였던 어민들이 자발적으로 건축하였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 들고 또한 손쉽게 축조할 수 있는 형태를 일본의 옛 등대에서 찾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제주의 등명대 일부 형태가 다소 일본의 옛 등대와 형태적 유사성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전국 포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제주의 포구에만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볼 때 일본의 옛 등대를 모방하여 건축하였다는 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즉 두모리의 등명대는 조선 세종 때에 축조된 연대(煙臺) 위에 세워졌는데  사다리꼴 형태로 축조하고 윗부분에 점등도구를 보호하기 위해 작은 집을 지은 형태의 등명대라는 점, 그리고 용담동의 등명대은 방사탑의 형태를 하고 있는 점 등에 미루어 볼 때 연대(煙臺) 혹은 돌탑등과 같은 높은 구조물들이 실질적인 기능을 상실할 무렵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구조물을 등명대로 이용했다 추측된다. 이미 오래 전 부터 등명대로 사용하여왔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주 포구에 산재해 있는 10곳의 등명대와 소멸된 6곳의 자료를 검토해 본 결과 자연석으로 쌓은 원뿔형, 사다리형, 사각형 등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일부 일본의 옛 등대를 참고했을는지 모르겠으나 기본적으로는 제주의 돌을 응용하여 기본 구조물을 응용하거나 새롭게 건축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능적이고 가장 자연스럽게 등명대를 축조하였다는 점이 설득력이 있다.

#. 등명대는 어떠한 형식으로 축조되었는가?

▲ (4) 김녕리 등명대. ⓒ김태일
▲ (5) 북촌리 등명대. ⓒ김태일
▲ (6) 고산리 등명대. ⓒ김태일

제주의 등명대는 일정한 형태를 갖고 있는 것이 없다. 지역에 따라, 마을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갖고 있다. 두모리 등명대는 연대(煙臺) 그 자체를  활용하였고 어떠한 것은 방사탑의 형태를 하고 있기도 하고 또 어떠한 것은 연대(煙臺)모양을 변형하여 축조하는 등 등명대의 축조 및 활용 방식이 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조사연구에서 수집된 자료 10 사례와 기존 자료 2 사례를 추가하여 총 12사례를 중심으로 등명대의 형태를 분류하여 보았다.

등명대의 형태는 크게 3가지, 방사탑형(그림4), 연대(煙臺)형(그림5), 사다리형(그림6)으로 구분할 수 있고 이들 형태를 중심으로 점등하기 위해 설치된 계단의 유무에 따라 조금씩 변형된 형태의 등명대로 나눌 수 있다.

방사탑형에는 원뿔형, 원통-내부계단형, 원뿔-외부계단형으로 세분할수 있는데 원뿔형은 거의 방사탑에 가까운 형태로 상부에 점등기구를 설치한 것이 특징으로 용담동 등명대(포구확장으로 철거되었으나 이후에 복원되었다)가 여기에 해당된다.

원통-내부계단형, 원뿔-외부계단형은 상부 점화부분은 별도의 구조물을 두었던 것이 특징인데 귀덕리 등명대와 김녕리 등명대가 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연대(煙臺)형에는 기단형, 사각-내부계단형, 기단-외부계단형으로 세분화 할 수 있다. 기단형은 사각형의 연대(煙臺)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고 상부에 별도의 점화부분을 둔 것이 특징인데 구엄리 등명대가 여기에 해당된다.

사각-내부계단형은  기본적으로 사각형의 연대(煙臺)형태를 하면서 내부에 계단을 둔 형태로 상부에는 별도의 점화 구조물을 두었는데 북촌리 등명대와 신촌리 등명대가 이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기단-외부계단형은 점화하기 용이하도록 외부에 계단을 둔 연대(煙臺)형태로서 상부에 별도의 점화구조물을 둔 것이 특징인데 두모리 등명대와 지금은 사라진 하귀리 등명대가 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다리형은 기단-마름모형, 마름모-외부계단형, 마름모-항아리형으로 세분화 할 수 있다. 고산리 등명대는 기단-마름모형으로 자연석 쌓기로 축조하여 흰색 시멘트로 마감되어 독특한 의장(意匠)을 하고 있음. 특히 본체는 완만한 곡선미를 갖고 있어 미묘한 곡선미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름모-외부계단형은 넓은 기단위에 본체가 얹혀있는 형태로 점화를 위한 외부계단을 설치한 형식으로  애월읍 등명대와 보목동 등명대가 여기에 해당된다.

마름모 항아리형은 사다리형에서 변형된 형태로 본체 윗부분이 좁아져 항아리형태를 하고 있는 등명대로 상부에는 별도의 점화구조물을 둔 것이 특징인데 대포동 등명대가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사다리형은 일본의 옛 등대와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가공하여 잘 다듬어진 석조를 쌓았던 일본의 옛 등대의 축조법과는 다르게 자연석 쌓기로 축조하여 흰색 시멘트로 마감되어 독특한 의장(意匠)을 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옛 등대의 경우,  본체의 아랫부분은 넓고 위쪽으로 갈수록 좁아져 다소 과장된 형태를 하고 있는 반면 사다리형은 완만한 곡선미를 갖고 있어 미묘한 곡선미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고산리의 등명대는 본체 아랫부분에서 완만하게 굽어진 형태로서 기단과 본체, 그리고 상부 점화부분이 상당히 절제되고 비례감을 갖고 있는 등명대로 평가할 수 있다. (下에서 이어집니다.) /김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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