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씨퀘스트(sequestration)를 걱정하지 않는 이유가 또 있었다. 몇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결국 흐지부지되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씨퀘스트 조항의 원조는 1985년 균형재정 및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특별법, 일명 그램러드만홀링스(GRH)법이었다. 일정 시한까지 의회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작위로 전 예산항목을 자동삭감시키겠다는 협박(?)을 법의 한 조항으로 명문화해야 할 만큼 그 당시에도 여야 간의 합의가 지지부진했나 보다. 그런 내용을 담은 조항에 불구하고 그 때도 의회 합의는 시한을 넘겨 씨퀘스트가 발동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강제 예산감축이 실제로 이행된 것은 첫해에 불과했고 1987년의 법개정, 1990년에 이르러 동법이 폐기되고 '예산강화법'이라는 별개의 법으로 대체될 때까지 당초 압박수단으로 장치했던 씨퀘스트는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다.

시장 분위기는 이번 씨퀘스트도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다우지수는 2007년에 기록했던 역대 최고기록 1만4164를 이미 돌파했고 12일 종가 1만4450은 저점 대비 110% 오른 수준이다. 금년 들어서만 11.7% 올랐다. 이번 상승장(bull market)은 2009년 3월에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므로 만 4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시장이 반기는 것이 또 있다. 연방준비은행이 작년 11월에 실시한 제2의 스트레스 테스트의 결과가 지난 7일 일부 공개되었는데, 실업률이 12%까지 치솟고 주식시장과 집값이 각각 52% 및 21% 하락하는 위기상황이 2년 이상 지속될 경우를 가상해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의 비율이 최저 5%를 유지하는가를 시험한 것인데 대형은행 18개 중 17개가 합격점수를 받았다.

주가는 역대 최고 기록 경신

이에 따라 거액의 정부 구제금융으로 겨우 살아났던 시티은행도 위기 이후 처음으로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전형적인 낙관주의자로 알려진 라슬로 비리니(Laszlo Birinyi)같은 사람은 블룸버그 라디오에 출연해 "내가 일찍이 2009년에 이번의 상승장을 처음 예견했을 때는 귀를 기울이지 않던 투자대중들이 이제야 상승장인 줄 인식하기 시작했다"면서 "기차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지금이라도 올라타서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씨퀘스트 첫해인 금년을 보자. 앞으로 남은 9개월 동안 강제 감액될 정부지출의 크기는 금액으로는 850억달러, 비율로는 국방예산이 전년대비 7.8%, 그 외 예산이 5.2%로 결코 무시할만한 크기가 아니다.

더욱 불안한 것은 미국 행정부가 이에 대처하는 모습이다. 엄연한 법적 장치로서 씨퀘스트가 가동되기로 확정된 것은 이미 2011년 말이었는데 이제 와서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게다가 다급한 김에 사업을 줄이기보다는 손쉬운 방법으로 사람을 줄이려 한다. 그것도 공무원 신분보장에 관한 법을 의식해 의원면직 또는 무급 청원휴가 같은 꼼수를 쓰려고 한다. 미 의회 예산국은 이에 따른 실직자가 연간 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성장이나 실업률 개선에는 악재가 되는 것이 증권시장에 호재가 된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제에 빨간불이 켜질수록 연준의 제로 기준금리 정책은 더 오래 갈 것이고 저금리 상황은 돈이 증권과 부동산으로 몰리게 할 것이므로 앞선 라슬로 비리니의 말은 과언이 아닐 수도 있겠다.

고용률은 오히려 더 떨어지고 있어

미국의 가장 최근의 상승장은 2003년 봄에서 2007년 말까지의 5년간이었다. 2007년 당시 시티은행의 찰스 프린스 회장은 상승장의 지속이 가능할까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음악이 울리는 한 계속 춤을 춰야죠"라고 대답했다. 그 음악이 꺼졌다가 다시 울리고 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그러나 이번 상승장에서 주가지수가 오른 4년 사이에 미국의 고용률(생산연령인구 대비 취업자 비율)은 72%에서 67%로 낮아졌다. 미국 외에도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 유럽의 문제국가들의 고용률이 일제히 60%대에서 50%대로 떨어졌다.

고용률은 구매력과 관계가 있다. 구매력이 따라주지 않는 증권시장의 호황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 다들 알만큼 안다. 답답한 것은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는 많지만 정작 현실성 있는 대안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증시의 상승장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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