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II'가 13일 기준으로 1만 관객을 넘겼습니다. 현재 서울에서 시사회와 인터뷰 일정을 소화 중인 오멸 감독이 제주도민들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전문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안녕하십니까? 영화 '지슬'의 감독 오멸입니다.

제주에서의 개봉을 어렵게 성사시키고 드디어 일만 명의 관객들께서 이 영화를 봐주셨습니다.

상상으로 바랬던 일이 일어나고 있어 감격 하지 않을 수 없는 날들입니다.
촬영 초기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친 날 '어쩌면 난 이 영화를 완성 못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떠올렸던 날이 있습니다.
그 날밤  ‘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 하는 생각으로 잠을 이루기 어려웠습니다.
그 날의 상황은 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두려움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때 든 생각이 제사였습니다.
진심으로 제사를 지내는 방법밖에 없지 않겠나 하고 새벽에 일어나자 마자 하얀 종이에 지방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쓰여진 지방지를 초가집 안의 문틀에 붙이고 스텝들과 마음을 다해 제를 지냈습니다. 그리고는 전날 포기했던 장면을 다시 찍기 시작했습니다. 촬영은 두 번 만에 완료가 되고 어제의 두려움은 어느새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찍은 장면이 첫 프롤로그의 초가집 안의 풍경입니다.
다음 날, 하루 촬영을 다시 마치고 촬영감독에게 주변의 인서트 풍경을  몇 컷 찍어 줄 것을 요청해 놨었는데, 숙소에서 찍은 영상을 확인해보니 영상이 줌인(Zoom-In)되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순간 촬영감독이 당혹해 했었지요.
왜냐하면 그 장면 촬영 당시 아무도 카메라에 손을 대지 않았기에 줌인 현상이 일어 날수가 없는 터였지요. 앵글이 위쪽으로 향한 장면이어서 물리적으로 카메라의 줌인은 불가능하다 판단되는 상황이었지요.
그렇게 우리들 사이에서 일명 ‘귀신컷’이라 이름 붙인 장면이 만들어졌고, 그 장면은 프롤로그 부분에 과일을 먹는 군인 다음에 붙여진 초가지붕과 나뭇가지 장면입니다.
그 장면을 보면 사시나무 떨듯 흔들리는 나무의 모습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필히 돌아가신 경률이 형이 와서 찍었다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가리라 마음을 먹고 작업을 진행 하였습니다.
(카메라 렌즈의 특수한 상황일 수도 있지만 당시는 모두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렇게 매일 매일이 마치 영령들과 대화하는 심경으로 진행이 되었고, 촬영 기간 내내 힘든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간절히 원하고 실천한다면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또 그렇게 도와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제주 섬의 남다른 기운을 받으며 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한 순간도 소홀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었습니다.
‘지슬’은 그렇게 모든 스텝과 배우, 주변의 도움으로 완성이 가능했던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의 모습에 더해서 제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차원과의 만남이 함께했음을 저는 부인 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3월 1일에 제주 개봉이 시작되고 지금까지에 이르는 동안에도 그 기운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해외 굴지의 영화제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루어 내고, 1만 명이라는 많은 분들이 극장으로 찾아오고 계십니다. 1만 명이라는 의미는 숫자에 국한되지 않는 커다란 상징을 지닙니다. 제주에서의 1만 명은 더 나아가보면 대한민국 전체를 두고 백만명의 숫자만큼이나 대중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변방이라 일컬어지는 제주에서 이루어낸 영화적 사건의 하나로 기록될 일입니다. 또한 저희가 목표로 하는 3만 명의 의미는 구천을 떠돌 당시의 영령들의 걸음이며 섬의 울음이기도 합니다. 그 울음소리를 세상이 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후예들의 걸음이기도 합니다.

개봉 둘째 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극장에 가 보았습니다.
구석에 앉아 가만히 보고 있자니 평생 극장에 오시지 않을 것 같은 어르신 두 분이 앉아있었습니다. 두 분은 서로 떨어져 앉아 있었는데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답니다.
그 어떤 미동도 없이… 그 모습에 울컥 목이 메이더군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깊이를 모를 상처와 어둠의 과거를, 또한 잊고 싶었던 기억을 못내 끄집어 내놓은 못된 영화를 보러 오신 게지요… 마음 깊은 곳에서 떨고 계시는 듯한 파동을 느꼈습니다. 
저는 더 있지 못하고 극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저 바랄 뿐입니다. 영화 보시고 이 때문에 더 아파하지 않으시기를…
제 부족함이 마음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 입니다.

지금은 서울에서 전국개봉을 위한 인터뷰와 남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주의 분위기를 전해 듣습니다. 극장에 홀로 왔다가 티켓 사는 방법을 몰라서 돌아가셨다는 어르신. 자신의 생일 날에 지슬을 보러 가겠다 해서 모셨다 드렸다는 자녀분의 이야기. 영화를 보시고 그때는 이것보다 더 심했다고 역설을 하시는 어르신. 비행기를 타고 가서 보는 사람들… 두 번보고, 세 번째 본다는 사람들...
너무도 다양한 모습이 제주의 극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그만 이 영화에 기대를 걸어주시고 걸음 옮겨주시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제 지슬은 여러분이 감독이십니다. 또한 여러분의 영화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또 다른 성과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 걸음은 그 어떤 것보다도 선명한
제주인의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묵직한 외침을 세상이 들어주기를 저 역시 간절히 원합니다.

제주에서의 첫 개봉이 제 가슴 속에 맺힌 오랜 설움도 풀어 주었습니다.
제주의 이야기이기에 그 주인들에게 먼저 보여 드려야겠다는 것과 제주는 변방이라는 문화적 소외감을 함께 해소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지역에서도 해내지 못한 성과를 함께 해주심에 문화적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섬이어서, 혹은 지방이어서 불편하고 불리한 조건처럼 여겨졌던 많은 것들을 넘어서게 해주셨습니다. 영화 ‘지슬’은 4월 말까지 상영 되오니 지속적인 관심 잊지 말아주시길 바라며, 저 역시 더 나은 역할이 무엇인지를 찾아 노력 하겠습니다.

▲ 오멸 감독. <제주의소리DB>

2013년 4월은 남다른 감회의 기억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멸 드림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