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안된 정치 슬로건,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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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후 칼럼> 모호한 정치적 선전 넘어 실천 가능한 청사진 제시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일 개념과 대책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창조경제’와 관련해 직접 설명하고 나섰다. 박 대통령은 기획재정부ㆍ금융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새 정부가 추구하는 창조경제는 과감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창의성을 경제의 핵심 가치로 두고 과학과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5월 중에 구체적인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창조경제의 개념이 추상적인 데다 정부 주요 인사들의 해석도 제각기 달라 정부, 정치권, 기업, 언론, 이익집단 등 관계자들이 정책 방향을 이해하는데 혼란을 겪고 있다. ‘창조’에 대해 <네이버> 어학사전은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듦’, ‘신(神)이 우주 만물을 처음으로 만듦’, ‘새로운 성과나 업적·가치 따위를 이룩함’으로 정의한다. 창조과학을 둘러싸고 종교계 지적설계론자와 과학계 진화론자 간의 논쟁에서 ‘창조’의 의미를 유추할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창조경제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처음 만들어 내는 것이며, 존재하지 않았기에 정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창조경제에서 말하는 ‘창조’는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경제 성장을 통해 축적된 경험과 과학·정보기술의 융합 발전을 토대로 창의적 혁신을 통해 국민의 삶의 가치를 높이는 일로 보아야 한다. 정부는 신(神)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로 창조경제가 전면에 등장하자 경제부처, 비경제부처 할 것 없이 모든 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에 ‘창조’가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각 부처가 창조경제와 씨름하다보니 ‘창조직업’, ‘미래 창조금융’ 같은 생경한 신조어도 등장했다. 창조경제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관료주의적 타성에 젖어 기존 정책을 ‘창조’로 포장하고 있는 행태가 볼썽사납다.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일자리도 줄어드는 상황에서 창조경제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다만 민간의 자발적 영역인 상상력과 창의력의 발현이 정부주도로 이루어질지 불확실하다. 사회 구성원의 창조적 감수성이 뒷받침되어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말한 ‘패러다임 전환’의 구체적인 청사진에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는 정보통신 기술에 익숙한 국민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창조경제는 정치 슬로건으로서 수사학적인 의미가 강하다. 창조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거 정부의 정치 슬로건과 추진과정, 실적을 되돌아 보는 것이 필요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출범한 정부마다 국정철학과 방향을 담은 정치 슬로건을 제시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5년마다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은 국정목표와 원칙을 밝히며 과거 정부와 차별화된 정권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한 국정 철학은 국민의 뜻이 반영된 시대정신의 산물이기도 하다.

각 정부는 정치 슬로건에 부합하는 정책 추진을 통해 일정 부분 역사적 족적을 남겼다. 노태우 정부는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 ‘북방정책’을 내세우고 공산권의 맹주들인 소련, 중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었다. 김영삼 정부는 ‘군정 종식’, ‘변화와 개혁’, ‘신한국 창조’를 제시하고 금융실명제, 정치군인 추방, 공직자 재산등록을 실천했다.

김대중 정부는 ‘국난극복과 국민화합’, ‘햇볓정책’, ‘제2의 건국‘을 기치로 외환위기 극복, IT·벤처기업 육성,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역점을 두었다. 노무현 정부는 ‘개혁과 통합’, ‘혁신’을 강조하며 권위주의 타파, 지방분권,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모토로 4대강,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매진했다.

그러나 국정방향으로 내세운 정치 슬로건이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정치적 선전으로 그친 경우도 있다. ‘위대한 보통사람들의 시대’, ‘신한국 창조’, ‘제2의 건국’이 대표적 사례다. 4대강과 같이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정책은 큰 후유증을 남기기도 했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제주의소리

창조경제가 모호하고 준비 안된 슬로건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버리고 추진력을 얻으려면 국민 친화적이고 실천 가능한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제주도 관광객 1천만명 시대를 여는데 기여한 ‘제주 올레’도 창조경제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은 교육제도나 문화 측면에서 창조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창조경제는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으며, 사람들이 즐거우면 창조경제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시민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용솟음치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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