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안따라가기(22)] 고산해안

용수리 포구를 지나 ‘당오름’이라고도 불리는 ‘당산봉’을 마주하면 해안도로는 일주도로와 합쳐진다. 일주도로를 따라 고산1리 마을쪽으로 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눠지는데 왼쪽은 고산마을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당오름’을 끼고 돌아가는 고산마을의 우회도로다. ‘당오름’은 신당이 있어서 당오름이라고 불린다. 우회도로의 오른쪽에 ‘당목잇당’이라는 신당이 있다. 표석이 세워져 있는데 표석에 있는 내용과 민간에서 전하는 내용이 다르다. 민간에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200년 전에 한경면 두모리사람이 여기에 옮겨와 살면서 두모리의 본향당인 ‘거머들당’에서 하르방신을 모시고 와서 당을 만들었다는 설과 두모리에 사는 벅수데기란 사람이 자구내에 고기를 잡으로 갔다가 우연히 큰 상자를 하나 주웠는데 갑자기 큰 황구렁이 하나(또는 작고 빨간 뱀 7마리)가 튀어 나와 지금의 당의 자리로 들어가자 당을 모시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두 가지 설이 차이는 있지만 공통점도 있다. 당을 만든 사람이 두모리 사람이라는 점과 두모리 거머들본향당을 보면 모시는 신위는 셋인데, 7개의 작은 궤가 있다는 점이 빨간 뱀 7마리와 연관이 있는 듯하다. 이 곳에 모시는 신은 고산리 사람들의 생산·물고·호적을 관장하는 본향신이다. 이 당에 기원하면 어린이들이 병 없이 잘 자란다고 한다.

▲ 신당이 있어서 ‘당오름’으로 이름 지어졌다. 오른쪽은 당목잇당의 입구, 수풀이 길을 막고 있다.ⓒ홍여철
당산봉을 지나면 자구내 포구로 내려가는 길이 오른쪽에 있다. 자구내 포구에는 북동쪽 절벽아래에 해신당이 있는데 ‘자구내 개당’ 또는 ‘선주당 할망당’ 이라고도 부른다. ‘선주당 할망당’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배의 주인인 선주들이 여기에 제를 올리면 배가 무사하게 조업을 할 수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었고 신당에는 현무암으로 깎은 작은 할망신의 모습이 모셔져 있다. 해녀들도 다니는 곳이지만 대부분 남자들이 다니는 당이라고 한다.

▲ 고산 자구내포구의 선주당 할망당의 모습, 오른쪽은 자구내포구의 모습 뒤쪽이 당오름이다.ⓒ홍영철
할망당을 나와서 포구 서쪽의 도대불로 향한다. 이 곳의 도대불은 원형대로 가장 잘 보전된 도대불이라 할 만하다. 도대불 윗 부분에 불을 놓는 곳도 원형대로 잘 보전되어 있다. 차귀섬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차귀섬과 도대불이 잘 어울린다. 차귀섬은 대나무가 많아서 ‘죽도’라고 불렸다. 용수리 포구의 절부암에서 고씨부인의 남편 강사철이 대나무를 하러 갔다가 풍랑을 만났다는 곳이 차귀섬이다. 이 곳 자구내 포구에서 차귀섬까지는 매우 물길이 거칠다고 한다. 본 섬과 차귀섬사이의 작은 목이니 물살이 셀 것이라는 짐작도 간다. 저 도대불이 많은 사람의 희망의 빛이었다. 지금도 오래전의 온기가 남아 있는 듯해서 손을 가까이 대어 본다.

▲ 자구내포구의 도대불, 잘 보존되고 있는 도대불이다. 오른쪽은 자구내포구에서 바라본 차귀섬의 모습.ⓒ홍영철
차귀섬. 중국의 주술사인 호종단이 탐라의 혈맥을 끊어 놓고 돌아가는데 차귀섬에 있는 오백장군의 막내인 장군바위가 매로 변하여 풍랑을 일으켜서 호종단의 배를 침몰시켰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그래서 차귀섬의 이름풀이도 ‘돌아가는 것을 막는다’이다. 어머니가 설문대 할망인 오백장군은 어머니가 빠진 죽을 먹고 슬픔에 울며 영실에 남게된다. 그 중 막내가 마지막에 돌아와서 어머니를 먹은 형들과 같이 있을 수 없다고 하며 제주 서쪽의 차귀섬에 와서 장군바위가 된다. 자구내포구와 수월봉을 잇는 엉알산책로를 따라서 걷다보면 차귀섬 가운데에 높이 솟은 장군바위를 볼 수 있다.

▲ 자구내포구에서 엉알산책로로 가는 도중, 호종단의 전설이 기록된 비문이 있다.ⓒ홍영철
엉알산책로는 바다에서 형성된 오름인 ‘응회구’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오름은 형성된 위치에 따라 ‘수중화산’과 ‘육상화산’으로 나누는데 마그마가 물과 만나면 더욱 격렬한 폭발을 일으킨다. 그래서 아주 미세한 입자로 분화구 주변에 쌓이는데 엉알산책로 옆의 절벽은 파도에 깎여서 수중화산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성산 일출봉과 송악산 아랫부분, 고산 수월봉과 당오름이 대표적인 수중화산인데 수평층리로 형성되어 있다. ‘육상화산’의 구성물질은 ‘송이’라고 불리는 ‘스코리아’인데 수중화산은 석회질이 층층이 굳은 것처럼 보인다.

▲ 수월봉은 수중화산으로 응회암 층리로 이루어져 있다(좌). 암석이 화산폭발로 튀어 올랐다가 떨어진 탄낭구조(우).ⓒ홍영철
엉알산책로는 수월봉 등산로로 이어진다. 수월봉은 ‘수월’과 ‘녹고’남매의 슬픈 전설이 깃든 오름이다. 오름자체는 높지는 않지만 수중화산이 파도에 깎여 까마득한 해안 절벽으로 바다와 만난다. 수월과 녹고남매는 어머니의 병환을 치료할 약을 구하려고 이 곳 수월봉까지 온다. 수월봉의 절벽 중간에 어머니의 병구완에 필요한 약초를 캐기 위하여 수월과 녹고는 한 손을 잡고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약초를 손에 잡은 수월은 기쁨에 그만 녹고의 손을 놓치게 되고 절벽 밑으로 떨어져 죽게 된다. 수월이의 슬픈 사연을 기리기 위해 수월봉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곳 수월봉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 저무는 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수월이의 슬픈 마음을 오랫동안 매만져주고 싶은 때문이다.  

▲ 수월과 녹고의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수월봉과 수월봉 정상에서 바라본 차귀섬의 모습.ⓒ홍영철
※ 홍영철님은 제주의 새로운 관광, 자연과 생태문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대안관광을 만들어 나가는 (주)제주생태관광(www.ecojeju.net )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주의 벗 에코가이드칼럼’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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