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준 시인 '발길 닿는 곳, 거기가 세상이고 하늘이거니'. ⓒ제주의소리

제주 출신 이성준 시인 다섯 번째 시집 '발길 닿는 곳…' 발간

▲ 이성준 시인 '발길 닿는 곳, 거기가 세상이고 하늘이거니'. ⓒ제주의소리

“어머니 돌아가신 마흔아홉에/나는 조울증을 앓으며/폐쇄병동에서 편안히 지냈다 (중략) 마흔아홉에 돌아가신 어머니/당신에 비하면/나는 눈물겹도록 복 있는 놈이건만/복이 차고 넘치건만/그것만으로도 우울증은 없어져야 하는데” - ‘병상일기’ 중

지극히 어렵게 사시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삶을 글로 쓰고자 대학에서 글공부를 시작했던 그다. 국어국문학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건만 떨쳐내지 못하는 설움은 행간에 그렁그렁 맺혔다. 제주 출신 이성준(52) 작가의 다섯 번째 시집 <발길 닿는 곳, 거기가 세상이고 하늘이거니>다.

지난해 소설집 <달의 시간을 찾아서>와 창작본풀이집 <설문대할마님, 어떵 옵데가?>를 나란히 내놓으며 바지런을 떨었던 작가지만 시집은 햇수로 4년 만이다.

뭉근하다 못해 푹 삭혀둔 ‘그리움’은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에게만 향해있지 않다. 쉰 넘게 살아오며 마음 구석 어딘가에 꽂혔던 갖지 못한 것, 가지 못한 길, 이루지 못한 꿈들에 애잔 혹은 처연한 감정 뭉텅이들을 꺼내놓았다.  

“묵은 세월이 익어 간다/삭아야 비로소 빛을 내는 세월/어머니의 젖은 손길이 세월에 익어/헛되이 베인 가슴도/알싸한 새 살로 돋아난다 (중략) 간장도 된장도/혹은 김치도 다 그렇게 삭아야/삭혀야/하늘빛보다 파란 숨결로 다가오나니/그저 빈 세월이 아니었나니” - ‘장독’ 중

시집 머리를 장식한 최광호 시인이 활자에 다 비추지 못한 속내를 대신 털어놓는다. 

최 시인은 서문에서 “자기의 목소리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담아내고 있으며 거기에 따른 시인의 성찰과 구도의 마음을 시화하고 있다. 시적 사유는 이중성 내지 이율배반성에 대해 고민함으로써 오래도록 기억되리라 본다”고 그의 시를 평했다.

'키만큼 책을 남기고 싶은 것이 평생 소원'이라는 작가는 "계절과는 상관없이 이제 시상이 내리지 않는 사막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슴을 파내어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 시기를 찾아 부산을 떤다"고 스스로 되뇌인다.

123쪽. 한강. 9000원.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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