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언론인 故 홍순만 선생의 35년 전 연재물 '제주의 비', 책으로 출간

조선시대 성종 때 제주에 부임 온 이약동 목사는 한라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산천단에 묘단을 마련하고 비석을 세웠다. '한라산신고선(漢拏山神古墠) 비(碑)'와 '산천단(山川壇) 내력 지문비'(誌文碑)다.

수백 년이 지나고 우물가 진창에 뒹굴고 있던 것을 35년 전, 금석학에 관심을 뒀던 누군가가 발견하게 돼 제 위치를 되찾는다. 언론인으로 제주문화원장을 지냈던 故 홍순만 선생이다.

고인의 표현으로 제주는 '비다의 섬'이라고 할 만큼 많은 비가 있다. 1977년 제주도가 조사한 바로 도내 기념비는 총 1120기(基)였다. 가장 많기로는 기념비(紀念碑)가 550기로 집계됐고, 공덕비 165기, 충혼비(忠魂碑) 136기, 추사비 70기, 송덕비(頌德碑) 46기, 열녀비 42기 등이다.

고인은 이 가운데 제주시 삼성혈비에서 조천석비까지 제주도 전 지역에 놓인 150여개 주요 비석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조사를 진행했다. 교통편도 좋지 않던 시절이었다.

고인은 "역사문화를 인식하는 데 있어 어떤 기록보다 강한 대변자가 되며, 비 앞에 서면 아무리 긴 시간이라도 초월할 수 있고 그날의 주인공과 마주서 대화할 수 있다"고 할 만큼 애정을 쏟았다.

특히 고인은 단순히 명문을 조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헌 조사로 비에 담긴 역사적 배경과 내용을 추가해 실었다. 흔히 말하는 스토리텔링의 뿌리 작업이었던 셈이다.

▲ 1978년 3월 1일 제주 신문에 실렸던 연재 기사. ⓒ제주의소리

이 같은 조사 결과는 1978년 3월 15일부터 1979년 2월 16일까지 38회에 걸쳐 <제주신문>에 실리며 세상에 알려졌다. 최근, 35년 만에 출간된 <제주의 비>는 당시 연재 기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난 2009년 고인이 세상을 뜨고 유족들이 책을 발간하기로 마음 먹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 각 기관이나 문화단체마다 금석학 관련 책을 냈지만 비석 이면에 얽힌 이야기는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에서다.

지난해 2월부터 1년 동안 고인의 모아둔 자료를 근거로 유족들이 다시 조사를 진행했다. 비석의 상태와 명문을 살펴보고, 사진 촬영으로 책에 더 넣을 자료를 갖췄다.

고인의 장남 홍기표 성균관대 겸임교수가 책 발간에 필요한 작업을 맡았다. 한자로만 인쇄되던 탓에 이번 책에는 한글로 쓰되 부득이한 경우는 한자를 병기했다. 오탈자나 틀린 내용을 바로 잡아 각주로 달고, 당시 기사를 수록해 내용을 대조할 수 있도록 했다.

값은 3만원으로, 300부 한정판으로 인쇄됐다. 문의=064-746-2044.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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