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욱의 '野'한이야기] (9) 산남을 대표했던 초등부 야구선수들, 사회인되어 승부 겨루다

고교야구의 인기가 절정을 이르던 80년대 초반, 서귀포에 볼만한 야구시합이 있었습니다. 서귀북초등학교와 태흥초등학교의 야구부가 산남의 자존심을 걸고 펼친 지역예선인데, 당시에는 지역 야구인들의 최고 관심거리였습니다.

30여 년 전 태흥초와 서귀북초 간 야구경기는 야구인들의 최대 관심사

두 학교의 야구부는 전도소년체전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예선을 치렀는데, 경기가 벌어진 곳은 마침 제가 다니던 위미초등학교 운동장이었습니다. 위미초등학교는 경기를 벌이는 위치상 두 학교의 가운데쯤 자리 잡고 있었고, 학교의 건물이 운동장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어서 구조적으로도 야구하기에 유리한 조건에 있었습니다.

아무튼 예쁜 유니폼을 입은 우리 또래의 야구선수들이 펼치는 경기를 구경하는 것이란 '골목야구선수'들에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달콤한 설렘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던 꼬마 선수들이 성년이 되어 다시 운동장에서 기량을 겨룹니다. 태흥초등학교 선수들은 '태흥야구동호회'란 이름으로, 서귀북초등학교 선수들은 '홍로야구단'으로.

사실 두 팀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주도 사회인 야구에서 최상위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어릴 때 기본기를 탄탄히 익히기도 했고, 오랫동안 같이 손발을 맞춰왔기 때문에 조직력도 제대로 갖췄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 선수나 프로선수까지 성장했던 베테랑도 끼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태흥과 홍로의 경기는 서귀포 사회인야구대회에서 빅 이벤트라 부를 만합니다. 그 빅 이벤트가 지난 14일 오후에 서귀포시 강창학구장에서 벌어졌습니다.

▲ 지난 14일 오후, 태흥야구동호회와 홍로야구단이 서귀포시 강창학구장에서 만나 라이벌전을 벌였습니다.

세월을 넘어 벌어진 라이벌전, 초반부터 방망이 불을 뿜었는데..

경기가 시작되자 1회부터 양 팀의 방망이는 불을 뿜었습니다. 1회 말이 끝나자 3-3으로 팽팽한 긴장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3회 초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4-5로 태흥이 1점 앞서기는 했지만, 백중한 경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팽팽했던 균형은 3회 말에 어이없이 무너졌습니다. 홍로의 수비가 2아웃을 쉽게 잡아낼 때까지만 해도 태흥의 공격이 쉽게 마무리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무더운 날씨 때문이었을까요? 홍로가 볼넷과 내야수 실책을 연발하며 2점을 헌납했습니다. 상대의 집중력이 떨어진 틈에 태흥은 연속 안타로 3점을 추가하며 승리를 굳혔습니다. 이날 경기의 3회말만 떼어놓고 보면, 홍로야구단은 최강팀이란 세간의 평가가 무색해보였습니다.

사회인야구를 하다보면 자주 마주하는 승패의 법칙이 있습니다. 우선, 사회인 야구에는 매일 못하는 팀은 있어도 매일 잘하는 팀은 없습니다. 주축 선수가 바빠서 못나오면, 예전의 조직력은 간데없이 사라져 엉성한 플레이가 반복됩니다. 또, 투수가 볼넷을 쉽게 내주어 루상으로 주자를 부르는 팀은 경기를 풀어갈 수가 없습니다. 볼넷을 수비실수를 부르고, 수비실수는 볼넷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마련입니다.

아무튼 두 팀이 30년 세월을 뛰어넘어 자존심을 걸고 벌이는 라이벌전은 흥미로운 볼거리입니다. 이날 경기를 지켜보는 동안 저는 30여 년 전 이들이 펼쳤던 경기를 구경했던 '골목야구' 선수 시절로 돌아가 달콤한 설렘에 빠져 있었습니다.

<제주의소리/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