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의 영상물로 구성된 '거듭되는 항거'. 이번 전시에서는 하나로 묶어 상영된다. <사진 제공=아트스페이스씨>
제인 진 카이젠이 스스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모아 만든 작품. 이번 전시에서는 4.3과 관련된 기억을 가진 제주도민의 머리카락을 모아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예정이다. <사진 제공=아트스페이스씨>
제인 진 카이젠(오른쪽)과 그녀의 동료이자 남편인 거스톤 손딘 퀑이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인터뷰] 제주서 전시 여는 덴마크 시각예술가 제인 진 카이젠  

▲ 제인 진 카이젠(오른쪽)과 그녀의 동료이자 남편인 거스톤 손딘 퀑이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제주4.3을 알리는 것 역시 나의 작업이다."

덴마크의 시각예술가 제인 진 카이 젠(Jane Jin Kaisen·33)이 섬 밖에서 더듬은 제주의 인상은 어쩐지 묘했다. 알 듯 말 듯 알쏭하다가도 번뜩, 묵직한 메시지가 꽂힌다.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난 작가는 덴마크로 입양된 작가는 가족을 만나러 2001년 제주에 온 것이 첫 방문이었다.

"제주4.3을 아느냐"는 질문에 덴마크서 닥치는 대로 자료를 모았던 작가는 동료이자 남편을 데리고 아예 짐 싸든 채 제주로 건너온다. 2011년, 제주에 넉 달 동안 거주하며 제주4·3과 해녀항쟁, 제주 강정마을 문제 등을 조사했다. 각계 전문가와 문학, 시각예술 등 각 분야 예술가들, 제주도민들의 증언 등을 모은 그녀는 덴마크로 돌아가 작업을 벌였다.

다섯 개의 영상 작품으로 표현된 아트 프로젝트 '불일치의 반복'(Reiterations of Dissent)는  개인전으로 소개됐다. 특히 4·3 관련 영상 작업 '거듭되는 항거'로 덴마크에서 촉망받는 20인의 젊은 예술가 전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거두기도 했다.

 제주 자연의 빼어난 아름다움뿐 아니라 4·3과 제주해군기지 등 그 이면을 함께 담으려는 작가의 역사 인식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으며 당시 유럽 전시계의 이목을 끌었다.

오는 8일부터 17일까지 제주시 이도1동 아트스페이스씨(관장 안혜경)에서 진행될 그녀의 전시는 덴마크에서 보여줬던 전시 가운데 일부 작품을 고른 것이다.

이번 전시로 그녀는 네 번째 제주에 방문하게 됐다. 낯설기만 했던 제주에서도 제법 안면 튼 친구와 동료 작가들이 늘어 방문길이 설렜다고 작가는 귀띔했다.

▲ 5개의 영상물로 구성된 '거듭되는 항거'. 이번 전시에서는 하나로 묶어 상영된다. <사진 제공=아트스페이스씨>
▲ 제인 진 카이젠이 스스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모아 만든 작품. 이번 전시에서는 4.3과 관련된 기억을 가진 제주도민의 머리카락을 모아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예정이다. <사진 제공=아트스페이스씨>

수상을 거뒀던 '거듭되는 항거'를 비롯해 일제에 저항했던 해녀 항쟁을 정치사 해석과 관련된 작업으로 작가의 개인사가 투영된 '빛과 그림자' 일부 작품도 선보인다. '일찍 길을 떠나 어스름에 돌아오다'(사진)와 2분가량의 짧은 영상인 '바다에서'다.

'머리카락'이라고 이름 붙은 작품은 말 그대로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작품이다. 빠진 머리카락을 아홉 달 동안 모은 것 몸에 스며든 기억들을 상징한다. 말로 표현하기보다 4.3사건이 지닌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고른 소재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는 '제주4.3의 기억과 자취'라는 이름을 걸고 새롭게 작업하고 있는 작품 대한 관객 참여를 이끌어낼 참이다. 체험 세대거나 혹은 미체험 세대여도 4.3에 얽힌 기억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다.  

시각 예술가로 활동하는 그녀의 남편 거스톤 손딘 퀑 또한 동행했다. 둘이서 감독과 연출을 맡았던 다큐멘터리 '여자, 고아, 호랑이'는 오는 13일 화요일 오후 7시30분 제14회 제주여성영화제 영화클럽 프로그램으로 소개한다. 이날 상영회는 감독과의 대화를 곁들인 시간으로 펼쳐진다.

전시 오프닝은 작가와의 대화와 '거듭되는 항거' 상영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8일 오후 7시. 이번 전시는 덴마크 예술위원회의 지원과 아트스페이스씨의 초대로 이뤄졌다.

다음은 작가와 일문일답.

- '불일치의 반복'은 어떤 작품인가.
"같은 상황을 겪었더라도 기억이나 기록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언제나 해석이 개입하기 마련이다. 일치하지 않은 지점들이 눈에 띄어 '불일치의 연속'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관람객들도 저마다 해석할 수 있길 바란다."

- 작품의 주된 주제의식은 무엇인지, 어떻게 접근했는지 궁금하다.
"주된 관심사는 '역사'였다. <여자, 고아, 호랑이> 작품을 하면서 제주4·3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니 1945년부터 1950년까지 대한민국에 어떤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제주4·3은 제주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시기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늘 금기시해왔다. 체험 세대는 나이 들고 있고, 희생자를 부모로 둔 세대와 잘 알지 못하는 3세대가 제주4·3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중점을 맞췄다."

-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
"2010년, 영문으로 된 찾을 수 있는 4.3관련 자료는 뭐든 찾았다. 이듬해 제주도에 와서 넉 달 동안 머무르며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풍광도 촬영하러 다녔다. 덴마크로 돌아와 6~7개월을 작업했다. 텍스트, 사진, 영상 등으로 이뤄졌다."

- 여러 나라에 4.3관련 작품을 소개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나.
"4.3관련 작업을 번역한다는 의미도 물론 있다. 직접 4.3을 겪은 제주 작가들은 훨씬 더 깊이 있는 표현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외부에서의 인식을 자꾸 소개해서 알게 하는 의미도 큰 듯하다. 특히 미국에서 전시를 할 땐 아무것도 모르던 재미동포에게 4.3을 알려주기도 했고 몰랐던 사실이나 미국의 책임부분까지 전달할 수 있었다."

- 다시 제주와 관련된 작업을 벌일 계획이 있나.
"제주에 오면 다니는 곳마다 영감을 팍팍 받는다. 남편은 내가 제주에 오면 작업 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당장 무슨 계획이 없더라도 층처럼 쌓여서 언젠간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번 전시에서 모은 머리카락으로 새로운 작업은 진행할 거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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