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에 대한 오해
‘인플레이션’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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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 중에 TIPS(Treasury Inflation Protected Securities), 직역하면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보호되는 재무성증권이란 것이 있다.

내용을 보면 소비자물가지수만큼 원금을 얹어서 상환해주는 채권이다.

인플레이션은 물가상승을 말함인데 인플레이션을 측정하는 방법으로서 소비자물가지수를 사용하는 관행이 여전함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예다.

사람들은 소비자물가지수를 구성하는 여러 항목들에만 돈을 지출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항목들을 구입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의 지출을 줄여 저축도 해야 하고 저축한 돈으로 주식도 사고 또 식구가 늘면 좀 더 큰 집도 사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비자물가 외에 이런 자산가격까지 포함하는 물가지수는 아직 개발된 것이 없다. 문제는 정책 당국자들이 오직 소비자물가지수에 불과한 이 인플레이션 수치에 지나친 무게를 싣고 있다는 데 있다.

'번번히 속았던 지난 80년간의 경험'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이번만은 다르다"의 저자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일정한 징후를 보면서도 이번만은 다르겠지 하는 생각 때문에 대형 금융위기가 되풀이 되었다면서 그 공통된 위기의 징후로 자산가격의 거품을 지목했다.

그가 지적했듯이 1930년 대공황의 경우는 물론이고 그 이후 최악의 위기로 일컬어지는 지금의 위기에 있어서도 장바구니의 가격이 아니라 자산의 가격이 대형 금융위기의 주범이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로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현재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주제 중의 하나로서 미국이 양적 완화를 언제 거두어 들일 것인가, 또는 제로 연준 금리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등의 이야기가 등장할 때마다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인플레이션 수치는 G7 국가 중 영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2% 미만에 머물러 있다.

소비자물가지수에 불과한 인플레이션

고용 증진과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것이 2%는 되어야 하므로 그 이상으로 더 오르지만 않는다면 앞으로 더 돈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이들 주요국 정책 당국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그런데 다들 자산가격 상승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다.

S&P 500 지수는 금년 들어 20% 이상 상승했고 2007년의 역대 최고점 1560보다도 약 10% 더 높은 수준에 와 있다.

미국 20개 도시 케이스-쉴러 주택가격 지수도 일년 사이에 12.2% 상승했다.

전체적으로는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 아직 미달하고 있으나 샌프란시스코와 라스베가스는 각각 24.5% 및 23.3% 상승하였고 댈러스와 덴버의 경우는 그동안 어느새 과거 기록을 갱신하였다.

2% 정도의 소비자물가지수를 보상해 주며 인플레이션 보호 운운하는 채권시장은 언어도단의 극치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1월 연준의장의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는 제닛 옐런과 래리 서머스 중 누가 지명되더라도 낮은 인플레이션을 빌미로 하여 양적완화를 지속하려는 분위기는 바뀔 것 같지 않다.

연준이 매달 시중에서 매입하는 채권규모는 예상대로 조금씩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그 동안 매입하여 보유하고 있는 거대한 물량을 시장에 다시 내놓지 않는 한 이것은 양적완화의 지속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지금의 저금리도 최소한 2015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자산가격 거품의 재발 가능성을 알면서 이를 무시하고 돈을 푸는 이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선, 인플레이션 타깃을 2%에 두고 돈을 풀겠다는 것은 되도록 오랫동안 돈을 풀겠다는 취지로밖에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풀린돈이 일상의 장바구니로 가기보다는 자산가격 상승에 이바지하는 한 소비자 물가지수는 지금의 1.5%에서 크게 오를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자산가격 거품을 외면하는 숨은 이유

자산가격이 오르는 만큼 돈의 가치는 하락한다. 이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에 대해서는 부채 부담을 경감해 주고 고용시장에서는 실질임금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그것이 고용증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그러나 언젠가 다시 깨지고야 말 자산가격의 거품이 이 모든 것의 대가로 한쪽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엄연한 진실이다.

재미(?) 있는 것은 위에 언급했던 케네스 로고프 교수마저도 차기 연준 의장에는 너무 인플레이션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을 앉혀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는 환상에 그도 빠져들고 있는 것인가?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이 글은 <내일신문> 8월 14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실린 내용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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