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 한 단쯤은 등짐 지고 넘었을 거다/관음사 산길을 따라 몇 리를 가다보면/숲 그늘 아늑한 곳에/부려놓은 숯가마 하나//못다 한 이야기가 여태 남았는지/말문을 열어둔 채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숯쟁이 거무데데한 얼굴/얼핏설핏 떠오른다' - 오래된 숯가마 中에서
제주 애월 출신인 홍성운 시인(55)이 최근 발간한 세 번째 시조집 <오래된 숯가마>에는 세월에 떠밀려 자취를 감춘 옛 기억들을 늘어뜨렸다.
10년 만에 내놓은 새 작품집이다. 쥐어짜낸 말마디가 아닌 10년 동안 기다렸다 받은 전언임을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1부 제목에 ‘섬에 산다는 건 절반이 기다림이다’라고 써놓았 듯 기다림으로 묵혀둔 시어들을 걸러냈다.
시(詩) 아닌 '시조'(詩調)다. 홍 씨는 역사를 가르며 섬 곳곳에 눌어붙은 상흔들에 자로 잰 듯 시어를 새겨 넣었다. 오밀조밀 열 지은 문장마다 운율감이 묻어나는 까닭이다.
제주 섬 안을 훑는다. 자연을 전면에 내놓고 세상살이의 면모를 뒤에 감춰두는 것이 그의 시조의 특징이다. 서경, 서정, 서사로 세 축을 이룬 선 그의 시조는 차분하면서도 고집스런 섬 사내의 정서가 그대로 드러난다.
홍기돈 평론가는 "시인의 기다림은 활활 타오르지는 않지만 발갛게 달아오르는 홍조의 기운이자 생명력의 표출"이라고 평했다.
푸른사상. 117쪽. 값 8000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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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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