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삼도동 이종신씨, 이산가족 상봉자로 최종 선정...28일 '66년만의 해후'

 

▲ 제주에서는 유일하게 이달 말 열리는 추석 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자로 선정된 이종신(74)씨와 아내 문순옥(70)씨. ⓒ제주의소리

여태 살아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죽은 줄로 알고 묘비를 세워 40년 넘게 제사까지 지내왔다.

제주시 삼도1동에 사는 이종신(74)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꿈만 같다. 오는 25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리는 추석 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자로 선정돼 60여년만에 친형님과 만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돌아가신 줄만 알고 40년 넘게 제사 지내왔는데 어떻게...”

이씨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금덕리)에서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렴풋이 은은한 기억이지만 열 살 위인 형과 함께 근처 냇가에서 물장난을 하며, 또 매미를 잡으러 다녔다.

그가 7살이던 1948년 4.3의 광풍은 그의 마을에도 어김없이 불어닥쳤다. 당시 제주중학교에 다니던 친형 종성씨는 어느 날 집안에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인지 군인인지 모를 이들에게 끌려나갔다. 종성씨는 곧바로 인천소년형무소에 수감된다.

“형님을 잡아간 이유요? 그런 건 없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고 정신도 없었습니다”

1949년 형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열악한 형무소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고, 종성씨도 이에 감염돼 건강이 위태롭다는 것. 이씨의 아버지는 몇 개월 간 돈을 모아 인천으로 면회를 간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그 시절 항의는 커녕 결국 아들을 두고 다시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곧 6.25가 터졌고 격전지인 인천은 쑥대밭이 됐다. 가족들은 당연히 형님이 죽었을거라 생각했다. 생사확인 조차 사치이던 시절이었다. 전쟁 후 집안을 추수른 뒤 고향 금덕리에 작은 비석하나 세우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시신이 없었으니 묘지가 있을리도 만무했다.

 

▲ 이종신씨가 어린 시절 찍은 가족사진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제주의소리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40여년이 지났다.

아버지는 얼마 안돼 돌아가셨다. 매일 큰 아들의 어린 시절을 노래하며 가족들과 이야기 하던 어머니도 결국 1998년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 종신씨 남매는 형님의 사진 한 장 제대로 건지지 못한 채 마음 속에 그를 묻었다.

그러던 지난 8월 말. 뜻밖의 전화를 한 통이 걸려온다.

북한이 남한에 전달한 추석 계기 이산가족상봉 후보자 생사확인의뢰서 명단에 ‘제주 북제주군’ 출신인 리종성(84)씨의 이름이 오른 것. ‘제주 북제주군에 있는 동생과 부모님을 찾는다’는 소식이 종신씨에게 들려온 것이다.

그의 아내 문순옥(70)씨와 그는 이 소식을 듣고 펑펑 울었단다.

“죽은 줄만 알았는데... 살았다길래 꿈만 같았습니다. 연락받고 아버지 어머니 묘소에도 갔습니다. 어머님 아버님이 ‘잘 만낭오라’ (잘 만나고 돌아오라)하는 거 같았습니다. 그 추룩(그토록) 보고싶던 아들을...”

믿기지가 않았다. 설렘과 기대로 잠못 이루는 날이 계속됐다. 그리고 16일. 마침내 기대대로 이산가족 상봉자 최종 명단에 이씨의 이름이 올랐다. 63년만에 친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됐다.

종신씨는 남한 측 상봉자 2진으로 오는 28일부터 상봉에 들어간다. 96명의 다른 남쪽 이산가족들과 같이 종신씨 부부와 여동생 이영자(69)씨 부부 그리고 종신씨의 아들이 금강산으로 향할 계획이다.

끝내 마음에 걸리는 건 15년전 세상을 뜬 어머니다. 조금만 더 일찍 만날 수 있었어도, 십수년 전에 이 소식을 알 수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 때문이다. 며느리 문씨는 “어머님은 매일 아들 얘기를 고랐다(말했다). 보고싶다고 맨날 노래를 부르셨다”고 말했다.

종신씨도 “장남 생각 많이 하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매일 그 얘기를 하셨습니다”하고 말끝을 흐렸다.

종신씨는 더 늦기 전에 자신의 가족들같이 아픔을 겪는 이들이 없어졌으면 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형님은 고향 제주를 두고 북한에서 실향민으로 지냈습니다. 남한에도 북에서 남쪽으로 피난 와 고향을 잃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 사람들이 고향을 잊지 못합니다. 형님도 어린 시절 유수암에서 매미 잡고 냇가에서 놀고 했던 것 다 기억을 할 겁니다. 나이가 들어도 그건 뚜렷할 겁니다...고향을 매일 그리워하고 있는 실향민들이 하루 빨리 모두 상봉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종신씨가 적십자사 제주지부 직원들로부터 이달 말 열릴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 절차에 대해 안내를 받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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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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