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반 및 사고 현장 개념도 <한국설암산악회 제공>

[단독] 한국설암산악회, 정상 포기 대만인 구조...피말리는 7시간 '감동스토리'

“정상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던 대만팀 2명이 해발 7700미터에서 추락해 갈비뼈가 부러지고 피를 토하고 있다. 구조 바란다”

7월17일 오후 7시 히말라야 해발 7300미터 제3캠프. 정상 등정을 눈앞에 둔 시각 대만 출신의 등반 대원이 다급하게 캠프로 달려와 건넨 구조 요청이다.

당시 3캠프 현장에는 제주지역 한국설암산악회 소속 고경만 등반대장과 김영용, 이경용 대원이 세르파 2명과 함께 정상을 향한 마지막 준비작업이 한창이었다.

이경용 대장은 구조 요청을 받자 곧바로 베이스 캠프에 연락을 취했다. 산악회를 이끈 이창백 원정대장은 우선 제3캠프에 있는 다른 국적 팀들과 합동 구조대를 꾸리라고 주문했다.

현장에는 한국설암산악회 외에 유럽 아미탈 상업등반대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구조요청을 단번에 거절했다. 상업등반대는 돈을 받고 고객을 정상에 안내하는 업체였기 때문이다.

▲ 히말라야 등반에 나선 한국설암산악회의 제3캠프 모습. <한국설암산악회 제공>
▲ 마지막 공격 전 김영용 대원과 김영미팀의 최정명. <한국설암산악회 제공>
순간 침묵이 오갔다. 정상을 눈 앞에 둔 한국설암산악회도 등반을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 목숨을 걸고 높은 곳까지 올라온 여정도 교차했다. 곧이어 이창백 원정대장이 무전기를 잡았다.

“삐삐. 시간이 다급하다. 정상 등정 공격조가 판단하라. 사람을 구조할 것인지. 등정을 할 것인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판단해 달라”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제3캠프에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전파를 탔다.

“대장님, 정상 포기하고 구조팀 보내겠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고 정상에 가더라도 평생 짐이 될 것 같습니다”

베이스캠프에 탄성이 퍼졌다. 오후 8시30분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정상 등정 공격조는 비상식량과 산소통, 침낭 등을 챙기고 사고 예상지점으로 향했다.

7시간30분을 헤맨 끝에 대만인 조난자를 찾는데 성공했다. 산 너머에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대만인들은 한국설암산악회의 도움으로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 이창백 원정대장과 대만팀 귀환자가 베이스캠프에서 등정축하주를 마시고 있다. <한국설암산악회 제공>
▲ 히말라야 등반에 나선 한국설암등반대. <한국설암산악회 제공>
구조 활동으로 베이스 캠프로 돌아온 원점팀은 26일 다시 정상 공격에 나섰다. 이튿날 새벽 3시30분 해발 7700미터에서 눈보라가 몰아쳤다. 1시간을 버텼지만 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결국 원정대는 철수 결정을 내렸다. 미련은 남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아름다운 철수였다.

그리고 9월15일. 제주출신 고상돈 산악인이 국내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날. 대만등산협회는 대한산악연맹을 통해 한국설암원정대에 감사패를 보내왔다.

자신들의 등정을 포기하며 자국의 조난자를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한국설암원정대는 “히말라야 죽음의 지대에서 비록 등정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등정보다 소중한 아름다운 인개를 꽃피우며 휴먼드라마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1972년 창립한 한국설암산악회는 지역 산악회 중 꾸준히 히말라야 고봉 등반대를 꾸려 도전해온 전문인들의 모임이다.<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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