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인혁 제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장 찾아달라"

 

▲ 지난 7월 취임한 정인혁 제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가 22일 취임연주회 '운명 그리고 시작'을 연다. ⓒ제주의소리

그의 취임연주회를 알리는 공연 포스터, 짐짓 비장한 표정이 눈길을 끌었다. ‘운명 그리고 시작’이라는 타이틀이 호기심을 키웠다.

그가 제주에 온지 3개월 째. 지난 9월 정기연주회를 비롯해 여러 무대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이는 그저 서막이었다. 오는 22일 오후7시30분 제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취임연주회는 그가 제주에서 맞닥뜨린 운명 그리고 시작을 보여주기 위한 무대로 준비가 한창이다.

제주도립 제주교향악단 3대 상임지휘자인 정인혁(39) 지휘자를 16일 오후 제주국제공항에서 만났다.

교향악단이 창단된 지 올해로 28년이나 됐지만 새로운 지휘자를 맞아들인 것은 이번이 세 번째. 무려 15년 만이다. 그랬기에 수장 자리를 맡는다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다고 그는 털어놨다.

10여 년 전 대학원에 다니던 때, 한국지휘자협회에서 주최하는 캠프에 참가하며 제주와 인연을 맺은 것이 시작. 그는 36:1의 경쟁률을 뚫고 제주에 온 건 운명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취임연주회 타이틀도 ‘운명 그리고 시작’이라고 붙였다.

정말 운명이었던 덕분일까. 막상 단원들과 호흡을 맞춰보니 그간 불어났던 부담과 걱정이 싹 달아났다. 갓 학업을 마친 신입 단원부터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선임 단원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이뤄진 교향악단을 하나로 묶어주는 건 바로 ‘음악’이라는 안테나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인터뷰 내내 ‘첫 단추’를 강조했다. 서예가들이 일필휘지를 발휘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쌓아야 하듯, 곡목을 고르고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고 관객들에게 내보이기까지 빈틈없이 진행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그가 매 연주회마다 모니터링을 거듭하는 이유다.

어떤 단체든 존립 이유는 ‘발전’이라는 평소 그의 신념에 따라, 교향악단을 끌어올리기 위한 머릿속 여러 구상도 차츰 모양새를 잡아가고 있다. 연간 6회에 걸쳐 열어오던 정기연주회는 8회로 늘리고, 저녁 시간에 쉽게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관객들을 위한 11시 콘서트를, 찾아가는 연주회에 콘셉트를 가미한 특별관객콘서트 등을 계획하고 있다.

이처럼 더 자주, 더 가까이에서 관객들을 만나겠다는 뜻을 밝힌 그는 관객들에게도 당부를 건넸다. 부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 취임연주회는 도입부는 잘 알려졌지만 미처 다 알지 못하는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으로 하여금 고전음악의 매력을 보여줄 참이다.  

다음은 정인혁 지휘자와 일문일답.

▲ 정인혁 제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 제주와는 원래 인연이 있었나.

10여 년 전, 한국지휘자협회에서 주최하는 전국 지휘 캠프에 참가하면서 제주에 왔다. 2회와 3회 참가했는데 2회에는 최우수지휘자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제주에 오면 항상 좋았다. 제주 사투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기억에 남는 단어는 '제라한'이다. 굉장히 의미심장하면서 부담스럽지 않다. 단원들한테 처음 인사하면서 '앞으로 제라한 교향악단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 창단 28년 만에 세 번째 지휘자로 오셨다. 전임 지휘자가 오래 자리를 지켰던 터라 적응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오기 전에 했던 걱정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10대쯤 되는 지휘자거나 어느 정도 노년의 원숙미를 가진 중견음악가라면 모를까, 신인인데다 3대 지휘자라는 점 때문에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 단원들과의 첫 인상은 어땠는지.

막상 오고 나니 괜한 걱정이라는 걸 알게 됐다. 굉장히 긍정적이고 밝고 좋았다. 마음 한 편에 있던 걱정이 확 달아났다. 첫 출발이 의미가 있고 신선했다.

매일같이 연습하고 정기연주회도 치렀다. 다른 교향악단에서 느끼지 못하는 열정이 있다. 자발적이다. 음악에 대한 애정이나 숭고한 정신을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들이 상당하다. 개인적으로 만나기에는 아직 시간적으로 여의치가 않지만 음악으로 매일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 36:1의 경쟁률을 뚫고 상임지휘자 자리에 앉았다. 내로라하는 경쟁자들 가운데서 무엇이 통했던 걸까.

이번 정기연주회 타이틀이 '운명 그리고 시작'이다. 제주에 올 운명이었다. 그렇게 생각한다. (웃음)

- 교향악단을 이끄는데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나. 평소 신념이 궁금하다.

무대에 올리기까지 자세하게 들어가 보면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단원 모두가 각자의 바람이 있지만 다 맞춰줄 수는 없다. 생각들이 다르고 음악적으로도 추구하는 바도 다르다. 그렇더라도 음악이라는 안테나로 교감이 된다. 내적으로는 음악의 숭고한 정신, 예술의 힘이랄까 에너지를 단원들과 함께 교감하고 키우고 그것들이 도민들과 관객들한테 퍼져나가서 음악으로 편안함, 평화로움, 안심, 기쁨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게 제 몫이다.

▲ 정인혁 제주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 좋은 무대를 보여주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새로운 곡을 정하면 공부해서 익히고 단원들한테 전달하고 또 관객들한테 전달해야 하는 단계를 거친다. 악보를 볼 때는 작곡자의 마음으로, 연습할 때는 연주자의 마음으로, 무대에 올라서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보려고 한다.

제가 무얼 보여줄지 정하는 순간부터 한 획의 시작이다. 처음에 연습들어가기 전에 충분하게 곡이 돼있지 않으면 단원들은 대번에 안다. 첫 단추를 이렇게 끼우면 무대에서도 좋은 결과를 보여줄 수 없다.

한번 숙성시키는 시간도 필요하다. 개인 연습은 물론 단체 연습을 거쳐 무대에 올리게 되는데, 퇴장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연주회가 끝나고 집에 있을 때가 마음이 제일 무겁다. 모니터링하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는다.

무엇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연주'다. 작가는 펜으로, 의사는 칼로, 법관은 망치로 이야기하듯 우리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런 수고는 결과가 눈에 보인다.

- 취임연주회 타이틀이 '운명'이다. 포스터 사진도 사뭇 비장하다. 정인혁의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취임연주회이지만 제가 주인공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교향악단이 주인공이다.

첫 곡인 바그너의 '탄호이저'는 그 자체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곡이다. 올해가 바그너 탄생 200주년으로 기념의 의미도 담겼다. 비극으로 끝나는 줄거리지만 감정이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곡이다.

일반 대중들에게도 베토벤의 운명은 너무나 잘 알려진 곡이다. 비장함이 돋보이는 1악장은 특히 그렇다. 그러나 4악장까지는 다소 생소하다. 도입부와 달리 승리감, 환희, 기쁨 등을 느낄 수 있다. 고전음악의 매력을 응집한 곡이다.

- 앞으로 어떤 구상을 보여주려는지 궁금하다.

우리는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단체다. 정기연주회는 아무래도 클래식 중심을 선보이다 보니 무거워하고 버거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연주회에 찾아오는 분들도 계시지만 찾아가는 연주회를 선보이려고 한다.

연간 연주회 횟수도 80회에 가까우니 결코 적지 않다. 얼추 일주일에 한 번 꼴인 셈이다. 정기연주회도 8회로 늘렸다. 더 자주 찾아뵙겠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축복 중에 하나는 계절이다. 사계절을 상징하는 곡들을 모아 겨울, 봄, 여름, 가을 등 4회에 걸쳐 연주회를 진행하려고 한다.

저녁 시간에 오실 수 없는 분들도 분명히 계시고, 낮 시간에 공연을 보고 싶은 분들을 위한 11시 콘서트도 보여드리려고 한다. 기존의 찾아가는 음악회에서 조금 더 확장된 개념으로 특별관객콘서트도 기획하고 있다.

제가 제주에 살고 있기에 이곳의 지역사회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비록 제주에서 지낸 기간은 짧지만 이런 것들을 더하면 지역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 연주회를 감상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편안한 마음이다. 저도 직업상 다른 연주회에 자주 다니는 편이다. 공부하고 배워야하는 입장이지만 그런 시각으로 연주회를 보면 오히려 남는 게 없다. 마음이 편안해야 그 시간이 부담스럽지 않고 즐거워진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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