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38) 삼공본풀이 4

 

   

남성중심 사회는 남자가 태어나 자라나면, 우선 직장을 얻고 한 이상적인 한 여성 배우자를 선택하여 결혼을 한다. 삼공본풀이는 가믄장아기가 자력으로 남자를 얻고, 마 파던 땅을 개척하여 금덩이 은덩이가 나오는 땅으로 만들어 부자가 된다.

가믄장아기는 이렇게 적극적이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직업의 신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보통 여자는 가믄장아기를 닮을 수 없다. 제주도 신화 삼공본풀이에 나오는 제주 여성 가믄장아기는 반항하는 여자, 자기 앞의 생을 당당하게 실현하는 ‘당당하고 솔직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한국의 보통 여자들은 너는 누구덕에 사느냐 하고 물으면, 신화 속의 은장아기 놋장아기처럼 하느님의 덕과 지하님의 덕 때문에 살며, 부모님 덕에 산다고 대답했을지 모른다. 그것은 자기주장이 아니다. 자기주장이 없는 것이다. 허울이요 위선이다. 자신을 당당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봉건적 종속성, 순응성, 이를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가믄장아기 콤플렉스라 부르고자 한다.

가믄장아기가 될 수 없는 ‘당당하지도 솔직하지도 못한’ 여성들은 이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한다. 모든 여성들은 신화를 통하여 가믄장아기가 주어진 환경에 맹목적으로 순응하지 않으며, 주어진 생의 조건들을 거부하고, 집에서 쫓겨나 자기 앞에 주어진 삶을 어떻게 ‘당당하고 떳떳하게’ 그리고 ‘지혜롭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가, 그리고 바로 그러한 새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이가 어른이 되는’ 성년식의 과정임 배울 수 있을 것이며, 가믄장아기 컴플랙스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삼공본풀이는 뭇 여성들이 가믄장아기를 통하여 자신의 컴플랙스, 여성으로서 세상을 거부하지 못하고 반항하지 못하는 그 부자유를 극복하게 하는 ‘당당하고 솔직한 힘’을 지니고 있다. 신화 속에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하는 지혜가 있다.

삼공본풀이는 은장아기나 놋장아기처럼 현실에 타협하고 순응하는 여성, 인형과 같은 삶을 거부하며, 잘난 체 하는 것,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는 위장된 선은 비인간적인 것이며, 이러한 업의 댓가로 그녀들은 ‘청지네’ 또는 ‘버섯’의 몸으로 환생하고 있다. 결국 업의 댓가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도 운명이며 ‘전상(前生의 業)’이라 할 것이다.

쫓겨난 가믄장아기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삶, 원래의 삶의 모습을 찾아 길을 떠난다. 가믄장아기가 집을 떠나는 것은 팔자대로 살겠다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인생의 길’이다. 가믄장아기는 정처 없이 길을 걸었다. 해는 서산에 기울고 사람 사는 마을을 찾아야 밤을 샐 터인데 집 한 채 보이지 않았다.

한참 가다 보니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 있었다 거기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하룻밤만 재워 달라 부탁하니, 아들이 삼형제나 있어 누워 잘 방이 없다 한다. 부엌이라도 좋으니 하룻밤만 재워 달라 사정하여 겨우 허락을 받았다. 그곳은 마 파먹고 사는 ‘마퉁이’네 집이었다. ‘마퉁이’는 고대의 서동설화를 잠시 생각해보게 한다.

서동은 백제무왕의 어렸을 때 별명인 ‘맛동’이를 말한다. 서동(薯童)의 서(薯)는 참 마, 들감자의 ‘마’이니 ‘서동’은 이두식으로 사용하면 ‘맛동’, ‘마퉁이’가 된다. 이처럼 제주도의 삼공본풀이에도 신라에서 제일 고운 선해공주를 푸대쌈하여 엎고 달아나 백제 무왕이 되었다는 이야기의 단편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를 차용하고 있다. 그리고 바보온달 이야기처럼 마퉁이네 집은 무식한 남자들, 가난하고 무지한 남자들만 살고 있다.

이들 역시 선택되지 않은 남자들, 미성년의 아이들에 불과하다. 가믄장아기의 방황과 시련은 이런 가난하고 무지한 남자아이를 만나는 것이다. 가믄장아기가 찾아간 비주리초막(오막사리)은 삼형제가 마를 파다 먹고사는 마퉁이네 집이었다. 세 마퉁이가 마를 파고 집으로 돌아왔다. 세 형제는 파 가지고 온 마를 삶아서 저녁을 준비한다. 큰 마퉁이가 마를 삶았다.

“어머니 아버지는 먼저 나서 많이 먹었으니, 마 모가지나 먹읍서”하며 머리 부분을 드리고 자기는 살 많은 잔등을 먹고, 손님에게는 꼬리 부분을 준다. 둘째 마퉁이도 마를 삶아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머리를, 자기는 살 많은 잔등을 먹고, 손님에게는 꼬리 부분을 준다. 셋째 마퉁이는 마를 삶는다. “어머니 아버지 우릴 낳아 기르려고 얼마나 공을 들였고, 또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살이 많은 잔등을 부모님께 드리는 것이었다.

가믄장아기는 그들의 부모님에 대한 효행과 손님(異性)에 대한 인정을 보았다. 큰마퉁이와 둘째 마퉁이 불효와 푸대접, 막네 마퉁이의 효행과 인정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도 신화전개의 삼단화법은 ‘부정-부정-긍정’으로 전개되고 있다. 가믄장아기는 마 삶던 솥을 깨끗이 씻은 후, 나락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한 상 차리고 우선 할머니∙할아버지에게 들어갔다.

조상 대에도 아니 먹었던 것이라며 먹지 아니한다. 큰 마퉁이도 조상 대에도 아니 먹던 것이라 사양한다. 둘째 마퉁이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작은 마퉁이에게 밥상을 들여가니 활짝 웃으며 맛있게 밥을 먹는다. 

마퉁니네의 가난은 밭을 갈아 농사를 짓지 않고, 야생의 ‘마’를 파먹고 사는 생활, 간단한 초막을 임시 지어놓고 떠돌아다니며 사는 그런 원시농경사회의 가난이다. 여기서 가믄장아기가 부모에게 쫓겨날 때 흑암소를 데리고 이곳 가난한 초막에 와서 쌀로 정성껏 밥을 지어 마퉁이네를 대접하는 것은 지금처럼 가난한 생활을 계속하느냐 쌀밥을 먹는 부유한 문화생활을 선택하겠느냐는 의사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손님의 대접에 대한 거부는 가난한 현실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마퉁이 삼형제는 첫째도 둘째도 조상 대대로 ‘마 파 먹던 풍습’을 버리지 않게다고 한다. 작은 마퉁이만이 새로운 여성의 대접으로써의 새 생활을 받아들인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신화전개의 삼단화법은 가믄장아기가 새로운 남편으로 선택해야 할 ‘긍정’의 조건들은 마 파먹던 가난한 삶을 버리고, 아름다운 여자가 제의하는 뜻을 받아들여, 농사를 지어 쌀밥을 먹는 개선되고 보다 풍요로운 삶을 선택한 것이다.

직업이란 가난의 순응에서부터 적극적인 자세로 새롭고 윤택한 삶이 보장되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다. 가믄장아기 신화는 그런 의미에서 ‘직업(職業)’의 신화라 하는 것이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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