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서 담금질한 송경태 ‘아름다운마라톤 홍보대사’...한국산악회와 내년 ‘아름다운 도전’

 

▲ 한라산에서 설상훈련을 하고 있는 한국산악회 원정대. 왼쪽에서 네 번째가 송경태(54) 전북시각장애인 도서관장. 그는 장애인으로는 세계최초로 세계 3대 오지마라톤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바 있고,  전주시의원도 역임할 만큼 장애를 극복하한 왕성한 활동으로 귀감이 되고 있다. 기부와 나눔 문화 확산을 위해 매년 개최되는 '아름다운 제주국제마라톤대회'의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제주의소리

한라산에 눈보라가 몰아치던 2월의 세 번째 주말.

항공편으로 지난 12일 전국 각지에서 제주에 모인 11명의 산악인이 꽁꽁 언 한라산 눈밭에서 3박 4일간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가장 험난한 관음사 코스 꼭대기 구간을 반복해서 일주하고, 로프에 의지해 아슬아슬한 빙벽을 타고 오르기를 수차례.

하지만 이들이 내년 봄 시도할 세계최초의 도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한국산악회는 내년 3월 16일부터 5월 29일까지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에베레스트 정복에 도전할 원정대를 꾸렸다. 이름하여 ‘송경태(시각장애인) 7대륙 최고봉 세계최초 한국산악회 에베레스트 원정대’다.

오지·극지마라톤으로 이집트 사하라 사막, 중국 고비 사막, 칠레 아타카마 사막과 남극까지 정복한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54)이 한국산악회와 저지른(?) 일이다.

8848m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등반을 계획하고 있는 송경태 관장은 1급 시각장애인으로 ‘기적의 사나이’라고 불린다. 양시가 보이지 않는 극한의 한계를 극복하고 250km에 달하는 죽음의 사막 마라톤과 세계 극지점인 남극마라톤까지 모두 완주에 성공한 그에게 붙은 별명이라 결코 과분하지 않다.

<제주의소리>가 기부와 나눔 문화 확산을 위해 지난 2008년부터 개최하는 '아름다운 제주국제마라톤대회' 첫 해부터 '홍보대사'를 자처한 그는 매년 이 대회에 참석하며 제주에서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그런 송 관장이 중심에 선 이번 에베레스트 원정대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전국의 명산을 돌아다니며 에베레스트 등반 대비 훈련을 벌이고 있다.

 

▲ 한라산에서 설상훈련을 하고 있는 한국산악회 원정대. 앞쪽에서 두 번째가 송 관장. ⓒ제주의소리

“사막? 에베레스트? 우리 삶은 그보다 더한 도전”

지난 16일 오전 한라산 설상훈련을 모두 마치고 홀가분하게 하산한 그를 만났다. 인사말로 훈련이 어땠냐고 물어봤다. 춥고 눈이 몰아치긴 했어도 이미 전 세계 온갖 험난한 곳은 다 거친 그이기에 별로 힘들 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고 했다. 2년에 한 번씩 성판악 코스를 통해 한라산을 올라온 그였지만, 이번엔 제대로 된 혹한훈련이었다. 한라산 정상에는 계속 눈보라가 몰아쳤고 그와 동행한 산악회 회원들은 시야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하지만 사막과 아프리카 킬로만자로도 종주한 그와 경험 많은 산악대는 예정대로 훈련에 임했다. 러셀(눈길 뚫기)에 이은 주마훈련, 가파른 경사를 로프를 타고 올라가는 훈련을 반복했다. 한라산은 국내의 다른 산 보다 히말라야 산맥의 눈 높이, 경사도 등 조건이 비슷한 부분이 많아 훈련 최적지다.

내년 3월 출국 전까지 이 훈련은 반복된다. 다음 달에는 네팔의 임자체(6189m)를 오르고, 10월에는 남미 최고봉인 아콩카구아(6959m)에 오른다.

그가 에베레스트를 오를 경우 시각장애인으로서는 등정하는 최초의 인물이 된다. 게다가 한국산악회 70주년까지 겹치면서 세계 산악계에서 한국이 재조명될 기회로 전망된다.

 

▲ 한라산에서 설상훈련을 하고 있는 한국산악회 원정대. 앞쪽이 송 관장. ⓒ제주의소리

그를 끊임없는 모험가로 만든 힘은?

송 관장은 20대 군 복무 시절 훈련도중 예기치 않은 수류탄 폭발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그 어떤 큰 심장을 가진 사람도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그는 오히려 ‘모험가’로 대변신을 한다.

1998년. 2002 한일월드컵 홍보를 위해 미대륙을 도보 횡단한 것을 시작으로 2000년에는 수백미터의 거벽을 오르며 암벽등반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4대 극한 사막 마라톤 그랜드 슬램(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남극)을 달성하고, 그랜드캐니언 271km와 나미브사막 마라톤 250km, 타클라마칸사막 마라톤 100km를 완주했다.

캐나다 록키 산맥 스큐아뮈시 치프봉 거벽 등반, 미국 대륙 도보 횡단, 부산~임진각 도보 종단 625km, 동두천~울산 울트라 600km 완주 등 굉장한 경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놀라운 성과들은 낙천적인 그의 성격 탓이 크다. 그는 쏟아지는 부담감에도 늘 ‘즐기면서 하자’를 가슴에 되새긴다. 그는 험난한 길을 걸을 때 ‘도전 뒤에 있는 기쁨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을 한단다.

이처럼 한계를 넘어선 그의 도전이지만 역시 에베레스트 등반은 차원이 다르다. 그가 등정에 성공하면 이 산을 정복하는 최초의 시각장애인이 된다. 송 관장과 함께 7명이 도전하는데, 대장으로 원정대를 이끄는 양병옥 한국산악회 이사 역시 짊어진 짐이 크다.

양 이사는 “우리 산악회 70주년 기념으로 큰 등반대회를 총 지휘해서 한다는 게 제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 하고 책임감도 많이 느껴진다”며 “이번 등반은 정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힘든 도전이라는 것은 송 관장도 알고 있다.

 

▲ 지난 2012년 아름다운 제주국제마라톤대회 개막식에 참석한 송경태 홍보대사가 참가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DB>
▲ 한라산에서 3박4일간의 설상훈련을 마치고 하산한 양병옥 한국산악회 이사(왼쪽)와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 송 관장은 20대 군 복무 시절 훈련 도중 양시를 모두 잃은 1급 시각장애인이다. ⓒ제주의소리

“사막마라톤은 나 혼자만 잘 달리면 되는데 등반은 팀웍이 중요하더라구요. 특히 모든 것들을 시각으로 판단을 해야하는데 저는 그런 것들을 못하니까 악조건이죠. 제 손, 발, 눈 역할을 해주는 양병옥 대장을 비롯해 대원들이 더 제 몫까지 해야 하니 힘들죠. 그런 걸 하나하나 극복해가는 이런 부분이 상당히 고맙게 느껴지니다. 저는 대원들이 징검다리를 놔주는 부분을 밟고 가는 거죠”

그가 징검다리를 강조하는 이유,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손을 잡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마음과 맞닿아 있다. ‘자신의 도전이 어떤 식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그는 평소 생각들을 찬찬히 펼쳐놓았다.

“제일 무서운 게 뭐냐하면 ‘장애인들은 할 수 없어’라는 일반인들의 무관심입니다. 우리가 조금 부족한 부분만 채우면 다 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두면 좋을 거 같습니다. 장애인이라고 못하는게 아니라 다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죠. 다만 일반인들이 같이 협업을 해줘야겠죠. 그런 면에서 이번 등반이 세계의 모든 분들이 장애인과 같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가 전주시 의원으로 활동했던 일, 기부와 나눔이 모토인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대회 홍보대사로 앞장선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에게 ‘왜 에베레스트였냐’고 물었다. 그는 편안한 표정으로 ‘장애인들에게는 산이던 사막이던 일상생활이든 모두가 큰 도전’이라고 답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장애인들을 위한 법과 제도가 미흡하다는 점을 거듭 지적했다. 이처럼 그의 도전은 단순히 험난한 도전이나 개인적 성취를 넘어 더 좋은 세상을 함께 나누기 위한 바람인 셈이다.

그 바람을 위한 역사적인 도전이 이뤄질 내년 봄. 온 세계가 그를 주목한다. <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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