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 델 아구아 철거 1년] (1) 인터뷰-김형준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

2013년 3월 6일.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철거가 집행된 날이다. 이전 몇 달 간 제주도의회와 문화예술계, 시민사회의 반발이 그치지 않았음에도 철거는 강행됐다. 불법건축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추후 ‘이전복원하겠다’는 것이 도정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1년이 지난 지금 카사델아구아 복원은 감감무소식이다. 이 시점에서 <제주의소리>는 카사 델 아구아 철거가 제주사회에 남긴 의미는 무엇인지, 또 이 논란을 다룬 도정이나 건축계의 태도는 적절했는지, 이미 철거된 건물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접근해야하는지를 하나씩 조명해봤다. 당시 철거반대대책위원회 공동대표단 8인에 함께 이름을 올렸던 김형준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와 양건 가우건축사사무소 대표를 만나 이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 김형준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 ⓒ제주의소리

당초 제주도는 철거를 하면서 2013년 말까지 이전계획을 세우고 재원을 확보하기로 했지만 사실상 물 건너갔다. 제주도가 내세우는 이유는 설계도면 원본을 갖고 있는 JID로부터 무상기증을 받지 않는 이상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것.

제주도 관계자는 5일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복원의 전제 조건이 설계 원본 기증인데, JID는 현재 부영과 설계도면에 대한 지적재산권 소송전을 벌이고 있어 이를 얻기가 힘든 상황”이라며 “여기에 행정에 휘말려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복원에 드는 재원을 도민의 혈세로 마련할 수 없고 사후 관리비 등 재정적인 문제도 수반되는 문제”이라며 “도내 전통문화와 관련해 급한 게 많다”고 난색을 표했다.

감감무소식 행정을 탓하는 목소리는 하루이틀이 아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복원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하고 되물어볼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앞서 ‘카사델아구아 더 갤러리 철거’가 우리 지역사회에 남긴 의미가 무엇인지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된다.

당시 반대대책위원회 대표 중 한 명이었던 김형준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는 “제주 건축계의 자성과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쓴소리를 냈다. 또 도정에서 대해서도 “그 수준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카사 델 아구아를 복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며 오히려 표지석을 세우거나, 논문이나 책과 같이 정리하는 등 후손들에게 ‘기억’으로 분명히 남겨야 한다고 언급했다. 반쪽짜리 급급한 복원보다는 이 사건의 의미를 확실히 정리하고 체계화해 후손들에게 교훈으로 삼도록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평일 오후 연구실에서 만난 그의 어조에는 1년이 지났지만 카사 델 아구아 철거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강하게 묻어났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

 

▲ 김형준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 ⓒ제주의소리

# 제 목소리 못 낸 건축계...도정 눈치 볼 수 밖에 없어
  지금 이 상태로 복원하는 건 큰 의미없어
  중요한 건 이 사건을 기억하고 전달하는 일

- 딱 1년이 됐다.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철거가 제주건축사에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나?

“저는 이번 카사델아구아 철거가 하나의 제주건축사에 갖는 의미 이전에 하나의 큰 사건으로 기록될 거라고 본다. 그 사건은 제주의 건축계의 수준, 건축문화에 대한 제주도정의 인식수준을 명확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하고 싶다. 카사 델 아구아 철거논쟁에서 제주건축계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오히려 문화예술인 쪽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건축계로서는 어떻게 보면 자성과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세게 얘기하면 건축인 스스로 대처하는 수준이 높지 않았다고 봐야한다. 카사 델 아구아를 지켜야한다는 아젠다 설정에도 동참할 수 없는 건축계의 수준, 암울한거다. 건축사들이 심의하고도 연계돼있고 건축에 제주도가 허가권을 갖고 있다. 건축계가 문화예술을 지키기보다는 그 눈치를 본거다. 도정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 제주도는 카사 델 아구아 더 갤러리를 다른 지점에 ‘복원’한다고 한다. (게다가 이 마저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런 행정의 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뒤늦게 나마 ‘복원’을 한다면 그것은 적절한 해답이라고 보나?

“카사 델 아구아를 철거하는 때 이미 도정의 수준은 그대로 드러났다고 본다. 그 수준을 갖고 있는 도정이 다시 복원할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믿음도 가지 않고. 복원을 하겠다는 것은 철거를 위한 명분 쌓기였지 실제로 복원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철거를 안 했을거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개인적으로는 복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실제 복원 된다면 바르셀로나 파빌리온(Barcelona Pavilion)처럼 제주건축계, 도민 전부가 철거된 카사델아구아에 대해 복원해야한다는 가치에 공감할 때 복원해야한다. 그게 복원의 시점이지 행정에서 부숴진 상태에서 몇몇 사람이 목소리 낸 걸 지금 복원하겠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바르셀로나 파빌리온도 미스 반 데어 로에 사후에 몇 십 뒤에 복원된다. 시간이 지난후 레고레타 건축가가 더 위대해졌을 때, 소위말해서 어마어마한 사람으로,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건축가가 됐을 때 그 사람 작품이 필요한 경우에는 도민들이 돈 모아서라도 할 거다. 지금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이 입장료로 벌어들이는 돈이 얼마나 많나.

차라리 표지석을 세우는 게 나을 것 같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문화재들이 없어진 자리에 표지석을 세운다. 그렇게 없어진 자리에 세워서 여기가 카사 델 아구아 자리였고 언제 누가 지었고, 어떻게 철거됐는지를 남기는 게 후손들을 위해서 나을거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잊혀질까봐 카사 델 아구아 관련 내용을 한국주거학회지에 4월달에 논문으로 싣는다. 기록으로 남기는 건 중요하다. 반대에 목소리 낸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목소리는 잊혀지고 없어도 그 자리에 표지석을 세운다면 지나가는 관광객들, 도민들 이런 사람들이 이걸 보고 예전의 사건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필요하다고 본다.”

- 이런 비판도 있다. 카사 델 아구아가 과연 그 만큼의 가치가 있었냐는 점이다. 혹자는 “그냥 모델하우스 아니냐”, “건축사적으로 그만한 가치가 있긴 하냐”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중섭의 은지화를 예로 들고 싶다. 피난 와서 답배갑 안에다 작품을 그렸는데 당시 그 가치를 아는 사람 얼마나 되겠냐. 전문가들만 알았다. 사후 은지화가 사후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가 됐다. 바로 그거다. 건축이라는 것도 예술에 속해 있어서 전문가들이 판단할 수 있는 게 있다. 분재도 마찬가지다. 일반인들은 분재의 가치를 모르는데 하는 사람은 가치를 안다. 건축도 그런 영역이다. 도민, 시민들은 일반 건축물 아니냐고 하는데 전문가들이 봤을 때 미래에 굉장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전문가에 속해있는 이들의 가치판단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만약 카사 델 아구아가 보존됐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이중섭의 은지화처럼 빛을 발할 때가 왔을거라고 본다. 왜냐면 아시아에서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유작이 일본에 하나있고 제주에 하나있다. 앵커호텔은 작품 훼손을 해서 사람들이 싫어할 거 같다. 진정한 레고레타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건 앵커호텔이 아니라 카사 델 아구아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에 2개 있는 유작 중 일본에 있는 건 주택, 사유건물이기 때문에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카사 델 아구아는 공적인 건물로 활용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는 건축물이 될 수 있었다. 엄청난 건축문화자산이 되고 관광자산이 됐을 거다. 은지화도 그런 게 아닌가. 지금은 예술가 사후에 더 가치가 올라가는 것 있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그런 선례는 건축계에 많다. 르코르뷔지에의 사부아 주택,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작품처럼.

레고레타는 프리츠커상(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최고 권위의 상) 심사위원을 맡은 사람이다. 그 만큼 레고레타는 검증된 작품이 철거된거다. 카사 델 아구아는 세계적인 건축가로 인정받은 사람의 마지막 유작이다.”

 

▲ 작년 3월 6일, 철거되고 있는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제주의소리DB

# 제주시청사, 카사 델 아구아 이상의 가치 있었는데...
  더 갤러리 건축사적 의미 후손들 놓치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겨야 
  시민들의 큰 관심은 ‘제주’였기 때문에 가능

- 또 다른 비판도 있다. 더 갤러리에는 관심을 크게 쏟아 부었지만 정작 두 달 앞서 건축 54년 만에 철거된 제주시청사(박진후 작)은 상황이 달랐다. 우리 것에는 정작 소흘했다는 문제제기, 동네 심방 안 알아준다는 비판도 일었다.

“일단 몰랐다. 하지만 알았다고 하더라도 제주건축계가 앞장서서 막았을 거라는 확신은 안 선다. 카사 델 아구아 사건만 봐도 제주도 건축계의 수준이 보존을 위해 한 목소리를 외치는 수준은 아니다. 건축계가 앞설 거라는 믿음은 없지만 만약에 미리 알았더라면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 철거 반대에 동참했던 사람들과 몇몇 도의회 의원들은 철거 반대를 외쳤을거다.

참으로 아쉽다. 책임감도 많이 느끼고 마음도 무겁다. 안타까운 것은 제주시청사가 작품적으로 봤을 때 근대시기가 담을 수 있는 건축언어와 어휘들을 담고 있다. 시대상을 반영한 건축언어를 담고 있다. 입구라던가 사각형 창이나 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보존의 가치가 있는 거다. 그래서 철거된 게 아쉽다. 너무 맘이 무겁다. 어떻게 보면 개인적으로 봤을 때 그런 거야 말로 카사델 아구아 보다 더 보존의 가치가 크다. 시청사가 더 보존의 가치가 크다. 그런데 (눈 깜짝할 새) 어느 날 갑자기 부서져버렸다.”

-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가 철거된 지 1년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다른 지점에라도 복원을 해야하나?

“아까도 얘기했지만 표지석 이야기다. 이게 후손들에게 교훈으로 남을 필요가 있다.

또 관련 논문이 한국주거학회 4월달에 실릴 예정이다. 건축언어로 봤을 때 더 갤러리의 작품성이 들어갔는지 검증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저명학술지에 이런 내용 실음으로서 카사 델 아구아가 가진 의미가 컸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논문은) 예를 들면 이런거다. 레고레타의 건축물들이 많은데 보편적인 건축언어들이 있다. 레고레타만의 건축언어들이 더 갤러리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증명하는 것이다. 

카사 델 아구아가 철거된 것이 너무 아쉽다. 기록으로 남기려고 하시는 것도 이런 이유다. 강의도 하고 책도 쓰고, 건축사적 의미를 후손들이 놓치지 않도록, 이런 일을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 한편으로는 카사 델 아구아 철거 반대 운동 과정 자체가 하나의 화제거리였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반발했고, 시민사회에서 힘이 모여 시민문화제가 열렸다. 음악가들은 여기에 재능기부로 공연에 나섰다. 제주 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이 같은 일이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를 이끈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우리나라 국민들이 제주도에 갖는 애정과 관심이라는 게 크다는 걸 느낀다. 제주도는 정말 어떤 문화적, 자연적 가치들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 한국사람이라면 마땅히 자부심을 갖는 땅이라는 거다. 다른 지역 제주가 아닌 지역이었으면 공감대 형성이 오히려 덜 하지 않았을까. 제주라는 우리나라에서 갖는 고유한 지역성이 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공감대를 불러 일으킨 거라고 본다.”

 

▲ 김형준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

<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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