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 (9) 천지왕본풀이 5-곱가르기 2, 저승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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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왕 본풀이>는 천지혼합[混合]시 도업에서부터 시작하여, 천지개벽[開闢]을 거쳐, 천지인(天地人) 3황[三皇] 개문 하여 새벽을 연 뒤, 하늘의 천지왕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총명부인에게 인간의 맑고 깨끗한 음식(飮食)‘곤밥’을 대접받고, 하늘의 남자[天父]로서 땅의 여자[地母]와 합궁일(合宮日)을 받아 천상배필[天上配匹]을 맺고서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총명부인이 말했다.

“천지왕님아, 지난 밤 사랑으로 얻은 아이 이름 성명이나 지워주고 가십시오.”하니. 천지왕이 말하기를, “하늘의 아비[天父]와 땅의 어미[地母]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니, 쌍둥이가 분명하다. 아들을 낳거든, 먼저 낳은 아이는 ‘대별왕’, 나중에 낳은 아이는 ‘소별왕’이라 이름을 짓고, 딸을 낳거든, 먼저 낳은 아이는 ‘대별댁이’, 나중에 낳은 아이는 ‘소별댁이’라 이름 성명을 지으라 하였다.  

“증거가 될 만한 물건, ‘본매본짱’이나 주고 가십시오.”하니 농을 꺼내 그 안에서 박 씨 세 방울을 꺼내 주며, 하는 말이, “정월 들어 첫 돼지날, 초해일(初亥日)에 묘(苗)를 심어, 양 박 줄은 하늘로 뻗어가고, 한 박 줄은 지붕으로 뻗어가게 하십시오. 그리고 나를 찾아오려면, 쳇돗날[初亥日]에 박 씨를 심으면 알 수가 있을 거요.”하였다. 이때 생긴 법으로, 우리 세상엔 정월 초정일(初丁日) 또는 정해일[或丁或亥日]에 하늘 굿[天祭]이나 나라 굿[國祭]를 지내거나 마을의 포제(酺祭)를 지내는 법이 생겨났다.

그때 천지왕은 하늘 옥황으로 올라갔다. 총명부인은 아들 형제를 낳았다. 형제는 한 살 두 살 열다섯 십오 세 나이가 들어 삼천선비들이 다니는 서당에 글공부 활공부를 다니게 되었다. 서당에 가면, 양반 선비들이 ‘애비 없는 호로자식’이라 놀렸다. 형제는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아버질 찾아 줍서.”“느네(너희) 아방은(아버지)는 하늘 옥황의 천지왕이여.”“아버지를 찾을 증거물, ‘본메’는 주고 갔나요?”“너희 아버지가 주고 간 박 씨를 쳇돗날[初亥日]에 심어보면, 알 수가 있을 거여.”하였다. 형제는 쳇돗날 박씨를 심었더니, 박 줄은 줄이 뻗어 하늘 천지왕의 용상에 감겼고, 형제는 박 줄을 타고 하늘나라에 올라 아버지 천지왕을 만났다. 천지왕은 꿈에 만났던 두 아들이 성장하여 박줄을 타고 하늘에 온 것이 기뻤다. 두 아들에게 줄 선물이 필요했다.

그것은 이승과 저승, 두 개의 세상을 다스릴 법전이었다. 어멍국, 어머니의 나라의 이승법과 아방국, 아버지 나라의 저승법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고, 천부지모를 이어 새로운 질서의 세상, 저승왕과 이승왕으로 거듭 나야 한다. 천지왕은 단호하게 말했다. “하늘의 법은 변할 수 없다. 나는 너희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너의 어머니에게 약속한 것이 있다. 두 아이가 태어나면, 먼저 난 건 대별왕, 뒤에 난 건 소별왕이라 지으라 하였지.” 대별왕을 보며, “옳지. 네가 마음 착한 형 대별왕이로구나. 너는 인간세상의 무질서를 바로잡을 이승왕으로 들어서라.”

소별왕을 보고는 “옳지. 네가 모든 걸 뒤집어 버리는 문제아 소별왕이로구나. 너는 아무래도 여기 하늘에 남아 모자란 걸 배우며 저승왕이 되거라.”하였다. 천지왕의 결정은 아이들의 세상은 마음 착한  형 대별왕의 맑고 공명정대한 지혜로 세상의 질서[秩序]를 잡게 하고, 마음이 비뚤어진 아우 소별왕은 곁에 두고 가르치면서 하늘의 법도를 가르치려 하였다. 그런데 이승을 차지하고 싶은 동생 소별왕은 꾀를 내어 아버지가 정해놓은 ‘하늘의 법’을 뒤바꾸려 하였다. 마음이 비뚤어진 동생 소별왕의 반역은 요즈음 그 흔히 일 나는 반역, 역성혁명이었을까?

“아방국 ‘저승’이 네 세상이여, 어멍국 ‘이승’이 내 세상이여”하는 싸움은 소별왕 때문에 시작된 싸움이었다. 하늘에서 맨 처음 지혜와 질서의 대별왕의 ‘곱 가르기’는 해도 둘 달도 둘이라, 낮에는 타 죽고, 저녁에는 얼어 죽는 세상을 천근 살을 당겨 해 하나, 달 하나 쏘아 새로운 질서를 만든 이야기다. 인간 세상에 달도 둘이 비치고 해도 둘이 비쳐 사람이 살 수 없으니 천근 활[千斤弓] 천근 살[百斤矢]를 겨눠 해 하나 쏘아 동해바다에 던지고, 달 하나 쏘아 서해 바다에 던지시니, 동쪽 하늘에서 해가 하나 뜨고, 서쪽 하늘에서 달이 지는 살만한 세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천지왕은 대별왕에게 이승의 질서를 잡게 하였으나, 소별왕은 자기가 형을 제치고 이승왕이 되려 하였다. 그래서 소별왕은 형에게 수수께끼 시합을 제안한다. “옵서. 우리 수수께끼를 내어 이기는 자, 이승을 차지하고, 지는 자는 저승을 차지하는 게 어떨까요?” “그건 그렇게 하라마는, 설운 동생아. 어떤 나무는 밤낮 잎이 지지 않고, 어떤 나무는 잎이 지지?” “설운 형님, 오곡이라 짧은 나무는 주야평생 잎이 안 져도, 오곡이라 속빈 나문 주야평생 잎이 진답니다.” “설운 동생아 모르는 말마라. 대나무는 마디마디 속이 비어도 댓잎은 지지 않는다.” “설운 동생아, 어째서 동산에 풀은 성장이 나쁘고, 굴헝에 풀은 성장이 좋을까?” “설운 동생아, 모르는 말  마라. 어째서 사람의 머리털은 길고, 다리에 털은 짧지?”

이 시합도 동생이 졌다. 이리하여 첫 번째 시합에선 쉽게 형 대별왕이 이겼다. 두 번째 시합은 누가 꽃을 잘 가꾸는가 시합을 하여 꽃이 번성하는 자는 이승을 차지하고, 꽃이 번성하지 않는 자는 저승을 차지하기로 하여 꽃씨를 심으니, 대별왕 꽃은 뿌리는 한 뿌리, 가지는 사만팔천(四萬八千) 가지로 뻗어 ‘번성꽃’이 되고, 소별왕 꽃은 뿌리는 사만팔천 뿌리, 겨우 가지는 한 가지만 남아 점점 시들어 결국은 죽어버린 ‘수레멸망 악심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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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두 번째 시합도 대별왕이 이기게 되자 소별왕은 잔꾀를 내어 누가 오래 잠을 자나 하는 ‘잠자기 시합’을 하자 하였다. 두 형제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대별왕은 속눈도 감고, 겉눈도 감아 깊은 잠을 잤다. 그러나 소별왕은 겉눈은 감아도 속눈은 뜨고 있다가 대별왕 키워 무럭무럭 자라 ‘번성꽃’이 된 대별왕 꽃바구니를 소별왕 자기 앞으로 갖다놓고, 시들어 ‘검뉴울꽃’이 되어가는 자기 꽃은 대별왕 앞으로 갖다 놓고 나서, “형님! 아, 큰일 났습니다.”하였다. 대별왕은 일어나 보니 꽃은  바뀌어 있었다. 형이 잠든 틈에 소별왕이 꽃을 바꿔 놓아, 결국 동생 소별왕이 이승을 차지하고, 대별왕은 저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소별왕이 차지한 이승은 혼란한 세상이었다. 새∙짐승이 말을 하고 귀신과 생인의 분별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 게다가 인간 세상에는 살인∙역적∙도둑∙간통이 많고 질서가 말이 아니었다. 소별왕의 능력으론 이승의 혼란을 감당할 수 없었다. 소별왕은 형을 찾아가 질서를 잡아 달라 빌었다. 마음 착한 형 대별왕은 천근 살 천근 활로 앞에 오는 해 하나 쏘아 동해 바다에 던지고, 뒤에 오는 달 하나 쏘아 서해 바다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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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짐승은 송피 가루 닷말 닷되를 뿌리니 혀가 굳어져 말을 못하게 되고 사람만 말할 수 있게 하였다. ‘질서의 저울’을 가진 대별왕은 저울에 달아 백 근이 차는 것은 산 사람[生人], 백근이 되지 않는 것은 귀신으로 분별하게 하였다. 산 사람[生人] 중 여자의 몸무게는 줄여 백근이 못 차는 귀신과 같이 남자를 유혹하고 홀리는 능력을 주어 남녀사랑법도 만들었다. 대별왕은 낮과 밤, 자연의 질서를 바로 잡아 주었으나 인간 세상의 질서는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 /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장·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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