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개인의 비리 아닌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결과

4월의 노란 개나리 같았던 단원고 학생들을 태우고 꿈에서나 그리던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참사를 당한지 벌써 3주가 다 돼간다. 이 엄청난 비극에 예년 이맘때 지척에 가득했던 개나리들은 자신들의 환한 얼굴을 감히 내밀기가 못내 염치없는지 쉬이 보기 어렵고, 그렇다고 그들을 애써 찾기에는 우리들의 마음이 무겁다. 대신 기적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소망을 담은 노란 리본들의 행렬들이 개나리들을 세상천지를 노랗게 물들이며 그들의 기적 같은 안녕을 기원했지만, 실낱같은 희망은 절망으로 바뀐 지 오래다. 

끝내 오지 않은 어른들

“얘들아, 이 (배가 기우는) 장면을 페이스북에 올리면 대박날 것 같아.”
“선실에서 나가지 말래. (선내) 방송에서 구명복 입고 가만히 앉아 있으래”

시체로 발견된 한 학생의 유품에서 발견된 휴대폰에는 배가 90도로 기울어 자신들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까지 천진난만한 웃음을 잃지 않았던 학생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동영상으로 찍혀 있었다. 선장이 탈출한 시간 선실에 갇힌 또 다른 학생이 아빠에게 보낸 동영상에서는 학생들이 선실 밖에서 들리는 구조 헬기 소리를 들으며 밝은 웃음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다독거리는 모습이 녹화돼 있었다.

그들은 적어도 죽음의 문턱을 넘고 말았던 반시간 전까지 어른들이 자신들을 구출하러 올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국 믿었던 어른들은 오지 않았고 그들을 태운 배는 제주로 가는 개나리들의 꿈을 영원히 못 다한 꿈으로 남긴 채 저 차갑고 컴컴한 깊은 바다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고 말았다.

선실에 갇혔던 수백 명에 달했던 실종자들은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 명도 구조되지 못했고 돌아온 것은 모두가 사체들뿐이다. 아직도 저 무정한 바다 속에는  수십 명의 실종자들의 영혼들이 생존이 아니라 온전한 주검으로서라도 가족들의 슬픔과 절망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빠른 구조를 소망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너무나 많은 시일이 지났고 이제 그들의 마지막 애절한 소원마저 이뤄질지 의문이다. 

거꾸로 산에 올라가버린 대한민국 호

선실에 갇힌 단 한 명의 승객도 구조하지 못한 원인은 가깝게는 초동대응에 있다. 최초 사고 신고시간부터 여객선의 완전 전복까지 거의 두 시간에 가까운 구조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선박을 크레인으로 잡고 있으면 침몰을 막거나 적어도 침몰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대형 해상 크레인들이 현장투입을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대한민국 해군의 UDT와 SSU가 출동했음에도, 그리고 많은 경험 많고 노련한 일반인 잠수요원들이 작업을 돕기 위해 전국에서 구름떼처럼 진도 팽목항에 몰려 왔을 때도, 구조작업을 책임지고 있었던 해경은 구조작업 전속계약을 맺은 언딘이라는 민간업체가 도착할 때까지 구조 작업을 유보시켰다고 한다.

대형 참사의 인명구조마저 민간업체에 맡기다가 적절한 구조 타이밍을 놓쳤다고 하니 민영화의 지상낙원 대한민국의 막장을 보는 듯하다. 이러다가 영화 배트맨의 고담시처럼 행정과 치안마저 민영화가 이뤄질지도 모르겠다. 어처구니없는 일의 연속이었으니 정부의 여러 해명과 변명에도 불구하고 구조하지 못한 게 아니라 구조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초동대응도 문제지만 컨트롤 타워의 부재는 더 심각했다. 정권 초기 거액의 예산을 들여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꾸며 국민 안전을 요란하게 떠들어댔지만, 입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은 비단 4.3 문제 해결에 대한 정부의 이중적 태도에서 익히 본 바 있다. 사고가 터진 결과 말 그대로 정부의 재난정책은 ‘속빈 강정’이었다. 책임 시스템조차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고 관계부서들끼리 서로 우왕좌왕하다가 이른바 구조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것이다. 배를 저을 사공조차 제대로 정해지지 않다보니 배가 거꾸로 산으로 올라가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여론의 비판이 쏟아지자 “자신들은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는 주장을 거듭 강조해 여전히 책임 면피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어느 실종자 학부모는 “평생 살면서 정부가 이렇게 무능력 하다는 걸 팽목항에 와서 알았다”고 울분을 토했겠는가.

퍼주기 식 규제완화

이 보다 더 부끄러운 민낯은 유족들과 국민들의 분노의 불길을 선박 소유주와 선장 등 일부 개인들의 비리로 몰고 가는 듯한 정부의 태도다. 여기에는 평소 나팔수 노릇을 즐기는 언론들이 조연의 역할을 맡았다. 그동안 청해진 실소유주 가족에 대한 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덮어두기’로 일관했던 언론들은 이번 사고가 터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태평양 건너 미국에 소재한 구원파 실력자의 소유 별장까지 샅샅이 보도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보면 청해진 해운의 관계자들의 책임은 이번 사고에서 제한적일 뿐이다.

세월호 참사의 더 큰 원인은 이전 정권이 해운업계 요구를 반영해 무분별하게 규제를 완화하고 그 부실한 규제마저 제대로 적용하지 않은데 있었다. MB 정부는 선박의 선령을 30년으로 늘려 퇴물 여객선을 고철 값으로 수입할 수 있도록 하고, 정부의 고유 권한인 감독권마저 선박회사들의 이익보호단체로 전락한 선급협회에 갖다 바치는 등 기업들의 영리를 위해 인심을 펑펑 쓴 것이다. 정부가 단지 선박회사들의 돈벌이를 위해 승객들의 목숨을 볼모로 규제를 완화했던 것이다.

지난 달 10일 청와대 비서관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불필요한 규제는 쳐부숴야 할 원수이자 제거해야 할 암 덩어리”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규제가 거추장스럽고 불합리하게 보이더라도 지금까지 오랜 세월 존재해 온 데는 그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배고프다고 하니, 규제완화의 지상낙원 대한민국의 막장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걱정이다. 규제완화로 인한 참사는 경제, 교육, 의료, 교통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 잠재적 위험으로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정부는 이 와중에도 학교주변 호텔을 짓기 위한 규제를 풀기 위해 기 쓰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그 열성만큼은 정말 감탄스럽다. 그러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결과의 책임은 정부가 아니라 애꿎은 일반 국민들이 져야만 하는 것이 이번 참사의 교훈이다.

여론 관리에만 치중한 정부

정부는 사고 관리는 무능해도 적어도 여론 관리만큼은 확실한 능력을 발휘했다. 관계당국은 구조 자체에 최선을 다하기보다 ‘구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최선을 다했다. 더욱이 무능하고 안일했던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점에 달했던 상황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사상최고를 기록했다는 눈치 없는 보도는 오히려 실종자 가족들의 염장만 지르는 결과를 나았다.

여론조사가 단지 여론몰이를 위한 ‘밑밥’ 투하라는 삐딱한 시선들이 존재한 지 오래다. 이번 사고에서도 밑바닥 인심과 따로 노는 지지율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언론들이 보도한 절대적인 지지율로 봐서는 대통령의 진도체육관 방문은 당연히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아야 하겠지만, 구조에 대한 정부의 무능함과 무성의를 항의하는 실종자 가족들의 목소리가 더 컸다. 그러나 언론은 기막힌 편집 ‘마술’을 발휘해 유족들의 항의는 빼고 박수치는 장면만 화면에 내보냈다. 이후에도 언론의 요술은 청와대가 부탁한 일반 조문객을 향한 연출된 위로의 사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언론을 믿지 못하면 정부 보도에 대한 신뢰가 악화되고 유언비어만 난무하게 되는 법이다. 이제는 국내 언론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최초 신고 시간에 대한 정부발표마저 조작 의혹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평소 언론이 정부 발표 받아쓰기에 안주하면서 본연인 임무인 비판의 정도를 잃어 버려 정부의 홍보부서로 전락돼버린 결과다. 얼마 전에는 대형 선박사고 발생 시 충격 상쇄용 아이템을 개발하고 여론과 주의를 분산시킬 대체 기사도 개발해야 한다는 노골적인 언론 대응 지침을 담은 해양수산부의 공문이 유출된 바 있다. 이번 엄청난 사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아직도 지지율의 몽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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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시계를 사고가 일어났던 4월 16일 이전으로 돌려 수학여행을 위해 여객선에 올랐던 단원고 학생들의 해맑은 웃음을 다시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갓 피어난 봄꽃처럼 뽀얀 생명력으로 가득했던 그들이 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던 게 불과 몇 주 전이었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생존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져가는 지금, 수많은 노란 개나리들의 꿈을 삼켜버린 야속한 팽목항 앞바다에는 유족들과 국민들의 통탄의 눈물이 통곡의 바다로 흐르고 있다.

“대한민국은 진도의 절규를 처절하게 직시하지 않는다면 사람 사는 사회, 좋은 나라를 위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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