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욱 노형초 교사...남편-두 딸도 장애인 교육 종사 "특수교육은 봉사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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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형초등학교 제자들이 심은 식물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정재욱 교사.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26년간 특수교육 교사로 살아온 정재욱(54.여.노형초등학교) 씨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는 ‘우리 아이’다.

‘우리 아이들하고 나중에 만나볼 기회가 있으면 알 수 있어요’, ‘우리 아이들은요. 특별한 매력이 있는 아이들이에요’, ‘우리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이 행복해요’

짧은 대화 속에서 '장애'라는 표현을 듣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중에는 "지금 우리 아이가"라는 말이 학생을 말하는 것인지 자신의 자녀를 말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야 할 정도다.

네 식구 모두 특수교육에 전념하는 그녀가 가장 많이 내보이는 표정은 웃음이다. 간단한 대화에도 박장대소를 아끼지 않아 스스로가 ‘웃음이 헤프다’고 말할 정도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학급 급훈도 ‘웃음이 꽃피는 교실’이다.

늘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이 가르치는 장애 아동을 ‘우리 아이들’이라고 보듬는 그녀. 제주도 특수교육 교사들의 롤모델이자 가장 닮고 싶은 선배·선생님으로 손꼽히는 그녀를 스승의 날을 맞아 지난 15일 [제주의소리]가 만났다.

대구대학교의 전신인 한국사회사업대학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해 1988년부터 특수교육 교사로 평생을 살아온 정재욱 씨는 자신이 정말 우연한 계기로 이 길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그저 막연하게 ‘불쌍한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어릴 적 마음은, 대학 진학 안내책자에서 우연히 ‘특수교육학과’를 발견하면서 단단하게 굳어졌다.

부모의 반대 속에 결국 스스로 학비를 충당하고자 야간대학에 진학했고, 학교를 졸업한 뒤 지금까지 제주 장애아동들과 함께 한 삶을 살았다.

제주영송학교, 서귀포온성학교, 제주영지학교 등 제주지역 특수학교는 빠짐없이 다니며 지금은 노형초등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열정, 친화력을 칭찬한다. 교사로서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활기차게 진행하는 수업은 젊은 특수교사들에게 큰 자극을 제공하고, 자신보다 많게는 20년 이상 차이나는 어린 교사들과 함께하며 배울 점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인다. 학생·부모와는 인연을 소중히 간직해 시간이 오래 지나도 함께 추억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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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이 서로를 칭찬하는 메모를 붙인 물고기 그림을 설명하고 있는 정 교사. '선생님은 우리를 이해해 주어서 좋다'라고 적힌 내용이 인상적이다.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후배들이 모델로 삼고 싶다고 스스럼없이 말할 만큼 그녀의 존재는 제주 특수교육계에서 무게감을 지닌다. 이러한 활동은 2011년 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특수교육자상’을 수상할 만큼 많은 이들의 인정을 받았다.

말 한 마디에도 장애아동에 대한 애정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그녀이지만, 첫 부임 당시를 기억하면 상당히 다른 모습이라고 회고한다.

“처음에는 열정이 있잖아요. 저는 학습적인 면에 굉장히 집중했어요. 예를 들어 ‘아이들을 이만큼 끌어올리겠다' 이런 것이죠. 숙제를 해서 보냈는데 어머니들이 안 해서 보내면 '왜 안해서 보내냐'고 말하고 했어요. 아이들이 향상되는 그런 면을 많이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추진력 있게 학생들을 가르쳤던 젊은 정재욱 교사를 변화시킨 계기는 결혼과 출산이었다. 똑같은 특수교육 교사인 남편을 반려자로 만나고 두 딸을 낳으면서, 그녀는 지금껏 자신이 보지 못했던 장애아동 ‘부모’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었다.

“첫 애를 낳고 병원에서 엄청 울었어요. 장애아동 부모님들의 마음은 아이들을 향상시키겠다는 마음보다는 더 깊은 내면에 아픔이 있는데, ‘내가 아픔까지 만져주지 못했구나’라고 그제야 느꼈던거에요.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장애에서 극복시키기 위해서 그런 쪽으로 생각했었지만, 아이 낳고서 부모님들의 마음을 알게 됐어요. 저 깊은 곳에 깔려 있던 아픔까지 바라봐 줬어야 했는데….”

누가 말해주고 가르쳐준 것이 아닌 스스로 깨달은 것이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교육자로서 살아가는 길에 큰 방향을 그려줬다.

“아이를 낳으면서 저는 아이들(학생)을 맡으면 부모님도 한 가족이라고 여기고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웬만하면 부모님 이야기는 들어주려고 해요. 그분들은 우리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아프신 분들이기 때문에 수용하려고 해요. 나중에 부모님들 만나서 그런 이야기 하면 막 웃어요, ‘예전에 저 그랬죠?’ 하면서요.”

장애아동을 교육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일반 학생과는 조금 ‘다른’ 그리고 ‘섬세한’ 교육이 필요하다.

정 교사는 가장 기초적인 초등학교 과정에 있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먼 미래까지 생각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소한 나한테 오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살아요. 그리고 난 우리 애들도 사회에 나가서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하면서 작은 월급이라고 받아 가족을 꾸리고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해요. 지금 애들이 초등학생인데 아주 간단한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일상적인 기초생활이나 그런 훈련을 하려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자기 손으로 음식을 먹고, 밖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사서 잔돈을 받고, 카드를 받으면 긁어서 계산해주고, 일반인들은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행동들을 염두하며 하나 하나 가르친다.

“단순한 직업이나 결혼 생활, 그런 것을 위로 두고 보면 밑에는 이런 기초적인 것이 바탕을 이루고 있어요. 그런 것을 염두 해서 교육을 시킵니다. 국어나 수학이나 그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가르친 제자들은 어느새 30대 성인까지 자라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한 제자의 이야기는 회고하면서 눈가가 촉촉해질 만큼 큰 감동으로 남아있다.

“내가 젊었을 때 맡았던 아이인데, 취업을 해서 밥을 사주겠다는 거에요. 월급 받은 돈을 가슴 주머니에 담고 식당에 식사를 초대했어요. 진짜 감동받았죠. 자기가 직접 계산대 가서 계산도 하고. 일하는 월급 많겠어요? 그런데 현금 찾아서 주머니에 넣어 식사 대접을 받았어요. 그리고 어릴 때 제가 커피와 꽃을 좋아했다는 것을 기억하는지 ‘우리 선생님은 커피와 꽃을 좋아해’라고 말하는데 진짜 감동받았어요.”

이 뿐만 아니라 이전 학교에 전화를 걸어 그녀를 찾아 다시 노형초로 전화하는 아이, 아침마다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아이까지, 많은 제자들은 지금도 그녀의 진심어린 손길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어느새 ‘왕고참’으로 불릴 만 한 그녀지만 나이 어린 후배교사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대화하는 와중에도 스승의 날을 맞아 인사드리고 싶다는 후배 전화를 받아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 교사는 “내가 보기에 제주도에는 참 예쁘고 진짜 열심히 하는 특수교사 후배들이 많아요. 그 후배들을 제가 참 좋아해요. 후배들에게 배울 것이 진짜 많죠. 수업하는 것부터 해서… 저는 후배들의 역량에서 나오는 그런 것을 배우면서 제 역량을 키우 것 같아요. 그들에게 배우지 못했다면 예전 것으로 계속 사용했겠죠. 멋진 후배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냐고 묻자 오히려 많이 배운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부모님의 말은 무조건 받아들여 줘라. 장애아이 부모님 마음은 받아들여줘라 그런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말해요”라고 더한다.

정 교사와 그녀의 남편은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 동기다. 흔한 말로 CC라 불리는 ‘캠퍼스 커플’로 만나 두 아이를 낳았다. 그녀의 활발한 성격을 닮은 두 딸과 남편도 특수교육 교사의 길을 걸으며 ‘특수교육교사’ 가족을 꾸렸다. 큰 딸은 현직 교사, 작은 딸은 현재 대학에서 특수교육과를 전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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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아이들 사진을 보며 웃음짓는 정재욱 교사.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인생 한 번 사는 것이니 특수교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다른 길로 가라고 말했지만, 부모와 같은 길을 선택한 두 딸에게 그녀는 간단하지만 어떤 말보다 무게감 있는 조언을 전했다.

“특별히 지도할 때 이렇게 해야 된다 말 안했어요. 장애아이 부모님들이 사회에 나와서 학교로 보내고 마음을 정말 졸이는데 그랬을 때 가장 크게 응원하는 사람이 특수교사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도 교사고. 이런 말은 했어요.”

마지막으로 ‘특수교육’이 무엇인지 간단히 정의하는 질문을 던지자 정 교사는 쉽게 말하지 못했다. 누구나 인정할 만큼 노력해왔고 힘써왔지만 그녀에겐 아직도 특수교육은 아직도 정립하지 못한 과제다.

그러나 특수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고민하던 눈빛 대신 확신에 찬 의지를 비추며 말했다.

“특수교육은 절대 사랑과 봉사만이 아니에요. 우리에게도 분명한 목표가 있어요. 밖에서 사람들이 사랑해주고 봉사해주고 그런 것만은 특수교육이라고 할 수 없어요. 저 스스로도 특수교육에 봉사라는 말을 절대 쓰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결국 사회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람이 저에요. 아이들이 ‘나도 일하면서 같이 살래’하는 마음이 실현되게끔 밑에서 지원해주는 사람이 특수교사에요. 웃음이 꽃 피려면 그 바닥에서 올라와야 할 것이 정말 많아요. 그 안에 내포된 것이 많죠. 웃음이 꽃피는 교실이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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