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2) 서로 다른 / 서울전자음악단 (2009)

2374368.jpg

작년 여름 함덕에서 신기루를 봤다. 스테핑 스톤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는데, 그 공연은 마치 우드스탁 페스티벌처럼 객석 구분 없이 여기저기 둘러앉거나 돌아다니며 즐기는 공연이었다. 해변에 설치된 무대는 바닷바람에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낮부터 시작된 공연은 서서히 저녁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자주 접할 수 없는 공연이라서 나는 넋 놓고 바라보는 게 거의였다. 그러다가 일행 중 몇이 물에 들어가자고 했고, 나도 덩달아 물에 들어갔다. 그날 함덕에 간 목적 중 하나는 신윤철을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의심했다. 이미 몇 개월 전에 <서울전자음악단>은 해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서울전자음악단>은 오지 않을 거라 단념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물에 들어가서 놀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젖은 몸으로 걸어나오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음악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타 소리는 내 젖은 몸에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뭐지? 이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은……. 음악에 이끌려 좀비처럼 무대 가까이로 걸어갔다. 사람들은 이미 음악에 취해 몸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한 사내가 무대 바로 앞에서 양 팔을 벌린 채 음악 샤워를 하고 있었다. 노을 때문이었을까. 무대 주위로 분홍빛 라이트가 켜진 것처럼 보였다. 양 팔을 벌린 채 고개를 뒤로 젖힌 사내 때문에 무대 위의 기타리스트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은 선명하게 들렸다.‘서로 다른’. 그리고 신윤철의 목소리. ‘바닷가의 자갈들 위에 서로 다른 아픔이 있네’. 어눌하게 부르는 목소리는 분명히 신윤철이다. 음악 샤워를 하고 있는 사내를 비켜서서 무대를 바라보니 작은 체구에 고개를 숙인 채 연주하는 신윤철. 윤철이 형, 하고 부를뻔 했다. 그의 운지법은 조개껍데기와 잘 어울렸다. 서걱거리는 소리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때 내가 본 게 신기루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신기루처럼 존재하고 신기루로 사라져버리는지도 모르겠다. 진짜를 만진다고 해도 좋아하는 감정이 큰 나머지 현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신기루를 너무 많이 본다. 삶이 꿈꾸는 것 같으면 큰일인데……. 토요일 오후의 햇빛이 신기루 같다. 짬뽕을 먹으러 들어간 중국집에서 짜장면이 신기루처럼 보인다. 함덕에서 신기루를 보고 그로부터 한 계절 정도 지나 나는 명도암에서 이석원(<언니네 이발관>)이라는 신기루를 보게 된다. / 현택훈 시인


145569_165239_2341.jpg
▲ 현택훈 시인.
[편집자 주] 현 시인은 1974년 제주에서 태어났고 2007년 <시와정신>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 <지구레코드>와 <남방큰돌고래>를 펴냈습니다. 2005년 '대작'으로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2013년 '곤을동'으로 제1회 4.3평화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연재 제목이 '눈사람 레코드'인 이유는 눈사람과 음악의 화학적 연관성도 있지만 현 시인의 체형이 눈사람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가장 밀접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