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릴레이 詩(2) : 허영선 시인] 월령리 진아영

무명천 할머니

      -  월령리 진아영

 

 

허영선 시인

 

한 여자가 울담 아래 쪼그려 있네

손바닥 선인장처럼 앉아 있네

희디 흰 무명천 턱을 싸맨 채

 

울음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울음이 되는

그녀, 끅끅 막힌 목젖의 음운 나는 알 수 없네

가슴뼈로 후둑이는 그녀의 울음 난 알 수 없네

무자년 그날, 살려고 후다닥 내달린 밭담 안에서

누가 날렸는지 모를

날카로운 한발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턱

당해보지 않은 나는 알 수가 없네

그 고통 속에 허구한 밤 뒤채이는

어둠을 본 적 없는 나는 알 수 없네

링거를 맞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그녀 몸의 소리를

모든 말은 부호처럼 날아가 비명횡사하고

모든 꿈은 먼 바다로 가 꽃히고

어둠이 깊을수록 통증은 깊어지네

홀로 헛것들과 싸우며 새벽을 기다리던

그래 본 적 없는 나는

그 깊은 고통을 진정 알 길 없네

그녀 딛는 곳마다 헛딛는 말들을 할 수 있다고

바다 새가 꾸륵대고 있네

지금 대명천지 훌훌 자물쇠 벗기는

베롱한 세상

한 세상 왔다지만

꽁꽁 자물쇠 채운 문전에서

한 여자가 슬픈 눈 비린 저녁놀에 얼굴 묻네

오늘도 희디흰 무명천 받치고

울담 아래 앉아 있네

한 여자가

 

                - 허영선 시집 ‘뿌리의 노러 중

 

* 진아영 할머니는 1914년 생. 북제주군 한경면 판포리에서 4.3때 총을 맞고 턱을 잃었다. 무명천으로 턱을 감싼 채 월령리에서 홀로 살아왔다. 2003년 89세로 금악에 살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