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나눔 릴레이] (11) 문성윤 제주지방변호사회 회장...목영진 화백의 한국화

참가와 동시에 자동 기부되는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대회’, 어려운 이웃들을 향한 ‘사랑의 연탄나눔’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부와 나눔의 홀씨를 퍼뜨려온 [제주의소리]가 한국의 대표 사회적기업 ‘아름다운 가게’ 신제주점(매니저 김정민)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제주지역 명사(名士)는 물론 나눔행렬에 동참한 일반 시민들이 각자 사연이 깃든 소중한 물건을 기증하는 ‘아름다운 나눔릴레이’이다. 이 소중하고 특별한 물건의 판매 수익금은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를 통해 출산·육아 비용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 산모들에게 전달된다. [제주의소리]는 기증품에 얽힌 사연을 통해 나눔과 공유의 가치를 확산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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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윤 제주지방변호사회 회장. ⓒ제주의소리

제주지방변호사회 문성윤 회장은 4.3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1999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씨가 지역 일간지 제민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과 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4.3계엄령은 불법이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4.3 당시 계엄령 하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당한 사실을 보도했는데 이것이 아버지와 본인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것.

지리한 법정공방 끝에 2001년 마침내 대법원에서 보도에 문제가 없다는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것이 문 회장. 당시 문 회장은 법정에서 처음으로 4.3희생자 유족들의 증언을 이끌어냈다.

당시만 해도 법정에서 4.3과 관련된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역사적 진실이 잊혀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이 일을 피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이와 관련된 행보는 계속됐다. 그는 4.3희생자유족회 고문변호사로 쭉 활동하면서 유족들을 위한 법률 상담이라는 재능기부를 이어왔다. 또 외부 강연 기회가 있을 때마다 4.3 진실 알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직도 4.3유족들을 위해 해야할 일이 많다고 말하는 문 회장을 평일 오후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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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회장이 기증한 송원 목영진 화백의 작품. ⓒ제주의소리

“4.3 진실 지키기에 후배 변호사들도 함께했으면...”

- 송원 목영진 화백의 한국화 작품을 기증해주기로 했다.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작품인가?

“20년 전에 내가 변론을 해준 분이 고맙다면서 주신 작품이다. 그 동안 사무실에 걸어놓았다가 기증하려고 이번에 뗐다. 나 혼자 감상하는 것보다 같이 감상하는 게 좋지 않겠나. 아껴서 보관해온 작품이지만 가격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웃음)”

- 문 변호사 하면 4.3을 빼놓을 수 없다. 17년째 4.3과 관련한 각종 소송을 도맡고 있다. 특히 제주4.3희생자유족회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며 무료 변론과 상담을 해주고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맨 처음 어떻게 이런 길을 택하게 됐나?

“제주도 사람이라면 당연히 4.3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하는게 맞다. 그리고 변호사 하면서도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과 제민일보가 법적으로 맞붙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유족회에서도 나를 고문변호사 위촉했다. 유족분들이 고마워하시는 거 보니까 개인적으로 참 보람도 있다. 정말 어렵지 않았나, 누가 관심도 갖지 않고...”

-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이승만 전 대통령 양자인 이인수씨가 제민일보를 상대로 낸 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얘기를 더 듣고싶다. 당시 재판 시작부터 최종 판결까지 과정이 아주 다이나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맨 처음 서울에서 재판이 열리기로 된 것을 제주에서 열리도록 이송신청을 했다. 그러자 재판을 어디서 진행하는가를 두고, 이 이송신청만 대법원까지 갈 정도였다. 결국 제주에서 재판을 하게 됐다. 그때 재판부는 이씨 측의 청구를 기각했는데 그 때 1심 판결을 내렸던 분이 김창보 판사, 지금의 제주지방법원장이다. 다시 이 분이 법원장으로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4.3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공개된 법정에서 재판을 하게 된 사례다. 건국 이래 4.3이 언급된 재판이 없었으니 말이다. 피해자들이 직접 나와서 증언도 다 하고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 이기고 나니 어쨌든 유족들한테 조금이라도 보답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아마 전기가 됐던 것 같다. 여러 가지 일들이 그때 여러 가지 정리가 됐기 때문이다. 4.3 당시 양민학살이 이뤄졌다는 점이 더 이상 논의의 쟁점이 아니고 확정이 된 것이다. 그게 특별법 제정하는 데도 여러 가지 도움을 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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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윤 제주지방변호사회 회장. ⓒ제주의소리

- 4.3유족들의 버팀목이 돼 줬다. 관련 변론과 상담에 앞장서왔는데, 이들과 만나면서 기구한 사연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우리 특별법에 보면 ‘간이한 방법으로 호적을 정리할 수 있다’고 나와있다. 4.3 당시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큰 아버지 밑으로 옮겨놓는 등 호적이 잘못된 것이 많았다. 나이들어서 죽기 전에 제대로 정리하려면 재판을 해야한다. ‘간이한 방법으로 호적을 정리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단서가 ‘호적이 소실될 경우’만이다. 그러니까 호적이 불탄 경우 빼고는 재판을 해야되는 상황이다. 고쳐야 되는 부분이다.

예전에 어떤 분이 와서 자기 아버지를 찾고 싶다고 해서 아버지 무덤을 파내 유골 DNA로 통해서 인정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이 분의 친척누님이 제주에 갑자기 오셨다. 알고보니 그 분 꿈에 4.3때 돌아가신 아버지 나와서 호적을 정리하달라고 한 것이다. ‘꿈 때문에 견디지 못해서 제주에 왔다’고 말했다. 재판하면서 친척은 없고 DNA검사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무덤을 파내서 유골의 DNA를 통해 인정받아서 호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참 그 사연들 들으면 눈물이 난다. 어쨌든 변호사 하면서 돈만 번다는 인식을 타파하면 좋겠는데... 이런 일에 후배 변호사들도 따라줬으면 좋겠는데 관심들이 없다. 그게 안타깝다.”

- 아직도 4.3에 대해 할 일이 많다는 얘기로 들린다.

“가장 중요한 게 잊혀져가는 역사가 되면 안된다. 그러니 교육을 통해서 역사적 진실은 남겨둬야 한다. 가치관 주입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자라나는 세대가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관심이 멀어져서 크게 큰 문제다. 정치인들도 4.3을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려고 한다. 선거 때 타이틀을 보면 ‘4.3완전 해결’이다. 그걸 그들이 어떻게 완전히 해결하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면 몰라도...”

- 얘기를 좀 돌려보자. 제주지방변호사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 문 변호사가 회장직을 맡으면서 갑자기 변호사회가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변호사회 회장을 해보니까, 이전에 변호사회가 봉사활동을 안해봤더라. 그래서 한 두 차례씩 보육원을 찾아가고, 시각장애인들 모시고 나들이도 가봤다. 그 분 가족들은 위험하다고 눈만 오면 집에 있으라고 했다. 그런데 절물자연휴양림에 눈 쌓인 길에 모시고 가니 아기처럼 좋아하시더라. 눈을 제대로 처음 밟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변호사회가 도민들에게 봉사하는 단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 전엔 뭔 삶이 그리 바빴는지...(웃음)”

- 이제 회장직까지 맡는 중견 법조인으로서 본인만의 원칙이나 신념이 있을 것 같다.

“변호를 하다보면 여러 가지 상황이 닥칠 수 있는데 역시 가장 큰 게 원칙이더라. 조금 편하자고 돌아서가거나 하면 이게 나중에 꼭 반드시 문제가 생기더라. 언젠간 터지고 말더라. 섭섭하더라도 규정대로 가는 게 좋다. 그게 확실하다. 내가 어떤 때는 ‘이렇게 해서 다 적당히 됐구나’ 했는데 결국 문제가 생긴다. 문제가 안 생기면 우연한 결과일 뿐이다. 원칙대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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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윤 제주지방변호사회 회장. ⓒ제주의소리

- 좀 추상적인 질문도 드리겠다. 더 아름다운 제주,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필요한 건 뭐라고 보나.

“결국은 좀 더 여유있고 가진 사람은 나누고 봉사해야한다.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것밖에 더 있나.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계층 간 간극이, 골이 깊어지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게 되면 나중에 가진 사람도 골치가 아프고 문제가 생긴다. 나누고 배려하는 게 중요하다. 나도 그걸 잘 못하지만...(웃음)”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내가 바라는 제주’을 묻는다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제주가 원래의 모습을 찾았으면 좋겠다. 어떤 문제에서도, 어려울 때도 나누고 돕는 공동체 문화가 회복이 됐으면 좋겠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자연도 본래 모습을 찾았으면 한다. 백 몇 층 짜리 콘크리트 구조물이 생기고 해안도로 부근을 다 때려부서서 새로 건물을 세워놓는 것 참... 자연도 원래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편집자 주] 문 회장의 기증품은 아름다운가게 신제주점(064-749-0038)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각별한 사연이 깃든 소중한 물건, 남다른 의미를 가진 귀한 소장품을 이웃과 나누고 싶은 분들은 아름다운가게 신제주점이나 제주의소리(064-711-7021)로 연락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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