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빙기에 부르는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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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레코드] (13) Antifreeze / 검정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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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 / 검정치마(2010)

부동액은 겨울에 차가 얼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마음이 겨울일 때 얼어붙지 않도록 할 부동액이 필요하다. 내가 사는 동네에 ‘푸른항공 매표 대리점’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안나푸르나 너머로 날아가는 비행기의 탑승권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튜어디스가 음료 대신 음악을 권한다. 나는 <검정치마>를 선택한다. 마침 비행기는 사막이나 빙하 위를 지나고 있을 테고, 기장은 라플란드 언어로 고도와 기류를 말할 것이다. ‘푸른항공 매표 대리점’이 내게 부동액이었던 계절이 있었다. 여름에도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차가운 방에 누우면 회색 구름이 보였다. 보랏빛 눈보라였다. 누군가는 오로라 같다며 아름다워했다. 과거완료형은 시간 속에 묻혀 큰 무덤을 이룬다. 어떤 곳은 그 무덤이 성지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곳은 도굴범이 파헤쳐 너절해진다. ‘푸른 항공 매표 대리점’은 저울 가게로 바뀌더니 그마저도 문을 닫았다. 마음의 무게를 잴 수 없는 현실에 저울 가게 사장은 이내 얼어붙곤 했을 것이다. 비행기는 기차가 되기도 하고, 우주선이 되기도 한다. ‘현(縣)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라는 문장을 찾아 북해도에 갔을 무렵 ‘푸른항공 매표 대리점’은 문을 닫았고, <검정치마>는 ‘젊은 우리 사랑’을 읊조렸다. 식당칸에 앉아 졸다 보니 라트비아 국경이었다. 경비는 삼엄하지 않았다. 여장을 풀 곳을 먼저 찾아야만 했다. 꿈을 꾸듯 지나온 러시아는 겨울밤이었다. 내 가방은 여전히 물에 젖어 축축했다. 배낭엔 편지가 가득했다. 나는 길 잃은 우체부처럼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맸다.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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