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다섯 돌 맞은 달리 도서관 축하 잔치... 작지만 어울려 사는 힘이 만드는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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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달리 도서관 개관 5주년 기념 토크쇼에 참석한 사람들. 맨 앞줄 정정엽 화가, 뒤에 마이크 든 이가 오한숙희 여성학자, 그 뒤에 모자쓴 이가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 ⓒ 오마이뉴스 박건

지난 10월 30일, 달리 도서관이 제주시에 자리 잡고 문 연 지 다섯 돌을 축하하는 잔치가 열렸습니다. 이름 하여 '초생달이 반달로 여물어가는 사이...우리는' 토크.

이날은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전국에서 온 손님들로 달리 도서관이 꽉 찼습니다. 제주 올레의 전설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방송인 오한숙희 여성학 강사, 여성주의미술 정정엽 작가와 축하객 5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달리 도서관의 세 여인이 차린 술과 떡, 주안상은 물론 객들이 싸 온 음식들로 금세 푸짐한 만찬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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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 도서관의 운영자 세 여자 왼쪽부터 현순실(어리), 윤홍경숙(토토), 그리고 달리지기 이름으로 인터뷰를 한 박진창아(짱아). ⓒ 오마이뉴스 박건

달리란 '달빛 아래 책 읽는 소리'의 줄임말입니다. 그리고 '달리 보고, 달리 느끼고, 달리 생각한다'는 뜻도 품고 있답니다. 달리 도서관은 책과 여행과 제주를 좋아하는 비혼여성 세 명이 함께 가꾸고 있습니다. 문화기획자로 활동한 박진창아(짱아), 제주에 언론인으로 활동한 현순실(어리), 엔지오 활동을 한 윤홍경숙(토토)씨가 의기투합해 지난 2009년 만들었습니다.

한 해 달리 도서관을 다녀가는 사람만 6백여 명. 정식 도서관으로 등록도 하고 장서 수만 4천 권이 넘습니다. 입장료 4천 원을 내면 간단한 다과를 즐길 수 있으며 여성 전용 게스트 하우스도 운영합니다.

세 사람의 매력을 연극으로 치자면 짱아는 기획·연출가, 어리는 극작가, 토토는 배우같습니다. 달리 도서관 운영에 필요한 자기 역할들을 제각각 하기 때문입니다.

삶과 꿈을 창작하는 달리 도서관

- 어떻게 시작한 거예요?
달리지기(박진창아): "한글을 배운 이래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어요. 우울한 10대를 보내고, 20대에는 음주가무를 즐기다가 40대 들어서니 뭔가 패러다임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모여 새로운 아이템이 있는데 어떻게 구체화할까 궁리했어요. 세 명의 공통점이 '책'이었어요. 좋은 책들을 읽고 있었고, 자기가 품고 있는 책들을 모아서 도서관을 만들면 좋겠다고 했지요. 도서관 등록을 하려면 1000권의 책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각자 서가에 있는 것을 모으게 됐죠. 저희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농사도 짓고,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북까페 공간도 만들고, 운영비 마련을 위해 게스트 공간도 만들게 된 거죠."

- 사적이지도 않고, 공적이지도 않은 달리 도서관만의 성깔이 있어요.
달리지기(박진창아): "동네 아이와 어른들이 모이는 정다운 사랑방, 제주 여행자들을 위한 편안한 쉼터를 추구해요. 몇 달 전 이철수 판화전과 작가와의 대화 같은 것을 기획했고, 다양한 문화예술과 인문학이 소통하고 교감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해요. 스스로의 삶을 기획하고 창조하는 마음으로 하니 기쁘게 할 수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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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모, 달리 도서관 5주년 축하해요 대학에서 판소리 공부를 공부를 하다 휴학 중인 조카가 축하공연을 위해 서울서 달려와 사철가를 불러 흥을 돋구었다. ⓒ 오마이뉴스 박건
이날 5살 잔치에서는 현지예 학생이 사철가를 부르기 전 구성진 재담으로 흥을 돋굽니다.

"인간이 모두가 백년을 산다 해도 걱정근심, 잠자는 날 다 빼면 오십 년 밖에 못 사는데... 이모나 친구들도 이제 인생의 반을 살고 있잖아요. 사철가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인생 머 있나! 좋아하는 사람과 술 한 잔 먹으면서.. (하하하) 여러분도 요로 코롬 잘 살기를 바라면서 한 번 불러 볼까 합니다.

그란디, 소리를 하기 전에, 중요한 거시 있는디 그거시 추임새라는 것은 모두 아시지라? (네에). 이래 놓고 한 명도 안 해(하하하)."

이 날 이야기판은 제주에 휴식차 내려와 머물 곳을 찾고 있는 오한숙희씨가 진행을 맡아 좌중을 들었다 놨다, 웃음과 감동으로 이어 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 여성이네요. 아마도 이게 모성이겠지요. 책 이야기를 먼저 하고, 달리 도서관 이야기로 펼쳐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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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 도서관 5주년 기념 토크쇼 오한숙희씨의 진행으로 책과 달리도서관에 얽힌 이야기를 유쾌한 분위기로 이끌어 갔다. 옆에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지낸 서명숙 올레 이사장. 그 옆으로 살람활동가 한은정씨, 정정엽 화가. ⓒ 오마이뉴스 박건

독서는 마음으로 하는 여행

서명숙: "제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은 어린 시절 도서반원을 하면서 세계문학전집을 마음껏 읽은 거 하고, 길을 낸 거예요. 나중에 <시사저널>과 <오마이뉴스> 기자하면서 남 다른 칼럼, 한 문장이라도 다른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 때 읽은 책 때문이었지요. 제게 책이란 길이에요. 바로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1년 뒤에 다시 찾기도 하고, 읽었던 한 귀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잖아요. 여행이 몸으로 하는 독서라면, 독서는 마음으로 하는 여행이죠."

오숙희: "해물탕을 특별히 맛있게 하는 집이 있죠. 비결이 뭐예요, 물으면 육수라고 해요. 맹물로는 좋은 맛을 낼 수 없는 거지요. 수십 가지 신선한 재료를 넣어 우려낸 육수가 그 맛의 비법이라는 건데, 책은 생각이나 글을 쓸 때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죠. 독서란 내 영혼의 육수 같은 거예요."

정정엽: "아들에게 책 이야기를 가끔해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취미가 뭘까?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취미는 독서예요.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싸게 갈수 있는 여행이지요. 누가 여행 가는 데 100만 원 들었다 하면 단돈 만 원으로 할 수 있는 게 책이니까요. 책은 친구이고 그것을 갖지 않은 사람은 손해죠."

오숙희: "대화가 너무 진지한 거 아닌가요. 근데 이게 달리의 힘인 거 같아요. 책은  누구나 갖고 있고, 집에도 있어요. 그러나 여기 와서 책을 읽을 때 뭔가 달라진다는 거죠. 그래서 도서관 이름이 '달리'가 아닌가 해요."

달리지기(박진창아): "다들 신기해 해요. 돈도 안 나오는 데 거기서 뭐하냐는 거지요. 저희 셋이 5년 동안 인건비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처음에 빚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후원회원도 있고, 게스트 손님도 다녀가고,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입장료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무엇보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건물 주인의 아량이 컸죠.

좌옥미·김용택님이 이 건물 주인이죠. 저희 선배예요. 처음에 기획서를 보여 드렸을 때 너무 좋은 아이템이고, 본인들도 공공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상으로 5년 동안 임대를 해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제가 더 많은 것을 받은 느낌... 온기와 향기가 넘치잖아요

오한숙희: "무상으로 빌려 쓰다가 작년에 감사의 뜻으로 임대료 일부를 드렸잖아요. 그런데 더 감동스러운 것은 주인이 받으시고 이 돈을 다시 후원금으로 돌려 주셨다는 거 아닙니까. 제가 서귀포에 내려와 잠시 살려고 집 값을 알아보니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그런데 1년도 아니고 5년씩이나 무상임대를 주다니 '너 미쳤니?'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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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리도서관 세 여자 어리, 짱가, 토토의 비밀 프로젝트 달리도서관을 5년 동안 무상으로 임대해 준 좌옥미씨에게 고마움의 뜻으로 선물을 줬다. 수개월에 동안 비밀리에 만들어 감사의 뜻으로 전달했다. ⓒ 오마이뉴스 박건

좌옥미: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쑥스럽고요. 사실은 제가 더 많은 것을 받은 느낌이에요. 지난 5년 동안 저를 넉넉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아무리 멋진 공간이 있다 해도 온기와 향기를 채울 수 없다면 죽은 거지요. '달리'라는 공간은 이 친구들(달리지기들) 때문에 온기와 향기가 굉장히 넘치잖아요. 제가 그걸 받으면서 지난 5년 참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들에게 감사합니다. 저를 늘 풍요롭게 해주어서."

정정엽: "저는 '삶을 창작하는 달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러한 방식의 도서관이 자본 없이 굴러가는 자체가 하나의 실험이고 모험이죠. 대자본에 대항하는 미래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건물주인 또한 참으로 자본을 창의적으로 쓰시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이런 분을 만나기가 쉽지 않거던요. 자본으로부터 독립되고 휘둘리지 않는 달리가 되었으면 좋겠구요. 달리가 망하면 우리의 미래도 망한다고 생각해요." 

자유로운 개인이 연대하는 힘

달리지기(박진창아): "달리 도서관 초기에 게스트 한 분이 다녀가셨어요. 갑자기 인터뷰를 당하게 되었죠. 당신은 어떻게 이런 도서관을 운영하게 되었냐, 무얼 하던 사람인가, 어떻게 운영하고 있냐. 이 분이 하루 밤 주무시러 왔는데 너무나 관심이 많은 거예요.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시고 갑자기 수첩을 내미시는 거예요. '왜 그러세요' 했더니 '계좌번호를 적어 주세요'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후원금을 200만 원을 그 자리에서 입금해 주셨어요. 그런데 그 때 이 공간을 만들면서 은행 돈을 썼는데 갚고 빚이 200만 원 있었어요. 그래서 그 때 너무 깜짝 놀랐어요.

개인의 출세나 영광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삶, 우리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남들도 함께 좋아하는 삶을 원하는데, 거기에 생전 모르는 어떤 이가 이렇게 좋은 뜻을 올려주는 마음이 너무 놀랍고 감동적인 거예요. 그 분이 서울에서 초방책방을 운영하는 대표님이에요. 달리를 운영하는 힘은 자본이 아니라 작지만 어울려 사는 힘이이에요."

오한숙희: "사람들이 돈 때문에 잠깐 자기 자신을 잠시 굽힐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을 주지는 않지요. 그러나, 달리 도서관 같은 공간은 마음을 주는 곳이에요. 저는 여기 말고도 제주 올레 21코스마다 한 군데씩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놀멍, 쉬멍, 걸으멍'에다 '읽으멍'까지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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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꽂이와 북까페 원 안은 임순례 영화감독이 기증한 책장이다. 달리 도서관은 좋은 책을 읽고 스무 권 정도 기증하면 기증자의 서가를 만들어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다. 한 쪽에는 차를 마실 수 있게 준비되어 있다. 안방에는 독서는 물론 여성들이 제주여행을 할 수 있는 게스트 공간으로 마련해 두었다. ⓒ 오마이뉴스 박건

전국 마을마다 달리 같은 도서관이 하나씩 생기면 좋겠습니다. 달리 도서관 세 여자는 건물 주인에게 개관 5돌 맞이 선물을 줬습니다. 그 도자기 조작 작품에는 아래와 같은 글귀가 새겨졌습니다.

"하루하루 여물어 그렇게 다섯해, 고마워요. 천천히 알차게 기쁘게 여물어 갈게요."

* 달리도서관(http://www.dallibook.org,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2동 1017번지 2층 달리도서관, 064-702-0236)

* 이 기사는 <제주의소리>와 <오마이뉴스>와의 협약에 의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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