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1)  뜻이 꺾이지 않게, 공부도 재미있게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뜻인 꺾인 아이

공부보다는 운동이 더 좋았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성적은 반에서 중간쯤이었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턱걸이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죠. 부모님은 인문계고에 붙이고 싶어 했고, 아이는 운동을 할 수 있는 다른 학교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의 반대로 뜻을 접었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문학이 참 좋았죠.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지방 국립대 정도 갈 성적이 되었습니다. 학과 선택을 앞두고 가족들이 저를 설득했습니다. 설득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나중에 좋은 직장 다니면서 글을 써도 늦지 않아.”

저는 가족의 의견을 받아들여 공과대학을 선택했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후에 저는 매일 갈등했습니다. 견딜 수 없더군요. 결국 국어국문학과로 전과를 하고 철학을 복수전공으로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시 가족과 격돌했지만, 대학생이 된 저는 가족의 반대를 이겨냈습니다. 저는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입니다.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유년이나 청소년시기에 뜻이 꺾인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 분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 일을 생생히 기억하면서 아파하고 있어요. 앞서 소개했던 아이는 부모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성적이 뒤처지기 때문에 공부의 흥미를 잃었고, 부모에게 뜻이 꺾였기 때문에 공부의 동기 또한 생기지 않습니다. 그 다음을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잘 알 것입니다. 이 한 가지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공부’에 대한 생각이 협소하다는 점, ‘인문계 고등학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일반의 고정관념,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의미, 아이가 살아갈 세상과 어른이 살았던 세상의 질서가 다른 점 등. 이 이야기들은 가족과 아이의 인생, 그리고 우리 제주 사회의 소중한 인재들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하는 주제와 관계가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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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재밌었던 적은 단연코 없었어요

저는 동양에서 가장 배우는 것을 사랑했고, 모든 동양인의 존경을 받는 ‘공자’라는 인물과 그의 행적이 기록된 <논어>라는 책을 통해 가족과 대화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논어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사실상 <논어> 전체를 대표한다고 인정되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면 기쁘지 않은가.”
- <논어>, 「학이」 편 일부

공부방에서는 가뭄에 콩 나듯이 파티를 할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 공부를 할 때도 아이들과 잡담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파티 때는 하루 종일 이야기합니다. 아이들의 마음속 얘기를 듣는 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라는 긴 시간 동안 많은 걸 배웠지만 단 한 번도 즐거웠던 적이 없다’던 지인의 생각을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배우면서 즐거웠던 적이 있었니?” 제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전혀 없어요.”라고 차갑게 대답하더군요. 물론 공부가 재미있다는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 어른으로서 우리는 아이가 말한 ‘공부’를 구분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이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보았던 ‘공부’는 협소한 개념으로, 실제 공부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저는 아이의 불만을 협소한 공부 말고 살아 숨 쉬는 전체 모습으로서의 공부를 보여 달라는 요구로 이해합니다. 공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재밌어야 공부다’라는 말은 공부의 진실을 어느 정도 설명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에게 뜻이 꺾인 아이가 하고 싶었던 운동이야말로 공부의 원칙에 걸맞는 공부 중의 공부죠. 어른들은 이 사실을 매번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공부가 재미있을 수가 있나요?’라고 말합니다.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기십(기)이 죽듯, 성적이 안 나오는 아이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점 인정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재미로 들어가지 못하면 아이의 실력도, 진로도, 직업도 겉돌 뿐입니다. 반대로 재미로 들어갈 수 있다면 평생 업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공자가 자로에게 말했다. “네 어찌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느냐? 그 사람(공자)은 공부가 좋아서 밥 먹는 것도 잊고 몰두하고, 배움의 즐거움에 모든 근심도 잊어버린다고. 그렇게 살다가 제 몸이 늙어가는 줄도 모른다고 말이다.”
- <논어>, 「술이」 편 일부

아이가 좋아한다는 게 있다는 것은 부모에게는 가장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아이가 자신의 온몸을 다해서 표현한 뜻을 꺾기보다는, 그것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아이를 부정하지 않고 타협하라고 어른이지, 뜻을 꺾을 권리는 신에게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이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이제 공부를 시작합시다. 재미가 함께 하는 공부를. 

‘오승주의 어·부·가’ (2)편부터는 매주 토요일에 연재됩니다. 

 [140자 Q & A 상담코너]

1. 공부 싫어하는 아이
Q = 아이가 공부하는 걸 엄청 힘들어합니다. 다른 아이에 비해서 공부에 대한 반감이 큰 것 같아요. 그런데 세계사는 재밌다고 합니다. 어떻게 공부를 시켜야 할까요?

A = 좋아하는 게 있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입니다. 별을 보고 자신의 운명을 가늠하고, 해를 잡아먹는 일식이 언제 또 다시 나타날지 계산하는 것은 참 멋진 일입니다. 아이가 재밌어하는 것을 찾고 상상력을 동원해 다른 것들과 연결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 독서지도사 오승주 씨에게 자녀들의 학습방법과 독서 등에 관한 궁금한 점을 이메일로 상담할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 dajak9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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