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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島詩樂 산책](8) 늦은 봄, 정물화 / 변종태

오일시장 입구 좌판에 푸성귀 몇 잎 늘어놓고,
늦은 봄 푸성귀처럼 시들어가는 할머니,
오가는 이들에게 푸른 기운 다 덜어주고
저 혼자 말라간다.
늦봄의 햇살은 무심히 머리 위를 흐르고
바람이 머리칼을 흥크리고 가는 4월.
야속한 바람이 건 듯, 불었나?
할머니의 몸이 잠깐 휘청, 거렸나?
시든 푸성귀가 언뜻 훌러덩, 날렸나?
지나는 아가씨의 짧은 스커트가 살짝, 들렸나?
못 본 척 곁눈질 지나는 내 마음이, 이크, 들켰나?
무수한 눈길이 좌판 앞에 떨어진다.
푸성귀만 더 깊이 고개 숙인다.
오일시장의 늦봄은 깊어만 가는데,
오가는 시장 상인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간다.
다시 건듯 분 바람에 할머니의 머리카락이 시든다. / 늦은 봄, 정물화 - 변종태

변종태 = 『다층』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멕시코 행 열차는 어디서 타지』, 『니체와 함께 간 선술집에서』, 『미친 닭을 위한 변명』등이 있음.

오늘은 오일장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늦은 봄, 4월에 시인은 오일장 할머니 장터를 어슬렁거립니다. 특별히 사고 싶은 것도 없는, 그냥 어슬렁 장구경입니다.
시인은 장터의 할머니들이 시들어가는 것은 오가는 이들에게 새봄의 푸성귀 같은 푸른 기운을 다 덜어주었기 때문에 저 혼자 말라간다고 합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할머니는 언제나 푸르른 것들을 데리고 장터에 나오시는 건지도 모르지요.
‘바람이 건 듯 불었나? / 잠깐, 휘청 거렸나? / 언뜻 훌러덩, 날렸나? / 스커트가 살짝, 들렸나? / 내 마음이 이크, 들켰나?’ 이건 전형적인 한량의 장구경입니다. 한량 같은 봄이 어슬렁거리는 오늘 당신을 오일장으로 초대합니다.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변종태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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