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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주 특별시사회에서 만난 영화 ‘위로공단’ ★★★★★
주목받지 못해도 한국사회 세운 여성노동자, 나아가 소시민들 조명...더 많은 도민과 만났으면


우리나라 영화 ‘위로공단’(Factory Complex)이 8월 13일 개봉했다. 22일을 기준으로 극장에 내걸린 지 9일이 지났지만 영화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제주도민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한 해 무수히 많은 영화가 스크린에 오르내리지만 위로공단은 보다 특별하다.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올해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제에서 높은 상(은사자장: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에게 주는 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름도 모를 영화제에서 트로피 하나 받은 거 아니냐'고 폄훼할지 모르지만, 베니스 비엔날레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행사다. 과거 ‘000감독의 작품, 베니스 영화제 수상’이라는 기사를 종종 매스컴에서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베니스가 이 베니스다.

주목할 점은 위로공감은 영화제가 아닌 '미술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1895년 최초 미술제로 시작한 만큼, 영화·연극·음악제 등 다른 비엔날레와 비교할 때 미술제가 지닌 무게감은 크다. 하나의 미술작품으로 영화 위로공단은 수상한 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제에서 한국 작품의 은사자상 수상은 위로공단이 최초, 당연히 한국 영화 수상도 최초다. 

국내 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다른 말로 ‘대단한 곳에서 상 탄’ 작품이기 때문에 위로공단은 특별하다. 

‘이렇게 범상치 않은 작품이 궁금하지 않냐’고 단순히 위로공단을 소개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왜 우리는 위로공단을 기억해야 하고 봐야하는가? 

이 영화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급이나 다름 없었던 여성노동자의 삶, 나아가 남녀 구분 없이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모든 소시민들을 위한 일종의 헌시다.

위로공단은 21일 중앙로 메가박스제주에서 특별시사회로 도민들과 처음 만났다. 영화는 1979년부터 현재까지 시기마다 중요한 사건을 경험한 여성들의 인터뷰를 중점적으로 실었다. 

1979년 YH무역사건, 1985년 구로공단 파업, 2005년 기륭전자 사태,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백혈병 사건,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 2014년 캄보디아 유혈사태. 하나 같이 거대 권력과 자본 앞에서 작은 개미들이 외롭게 싸워온 역사들이다.

평생을 ‘미싱’(재봉틀) 앞에서 살아온 할머니와 반도체 공장에서 암을 얻은 20대 여성 사이에는 30년이란 긴 시간이 놓여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보인다.

그녀들은 그저 조금 더 좋은 신발을 신고 싶었고, 가족들이 조금 더 넓은 집에서 살기를 원했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들은 행복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비참하다 못해 잔혹했다.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다. 대형마트 계산원, 스튜디어스, 콜센터 직원를 비롯해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청소부, 아르바이트생, 식당일, 주부 등 지금 우리 주위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여성들도 차마 말하지 못할 아픔을 품고 있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할머니와 엄마가 저런 일을 당하며 살아온 사실을 아느냐’, ‘여성들이 왜 고통 받아야 하냐’, ‘당신은 행복하냐’고. 질문 너머에는 ‘행복 하고 싶어 일하는데 왜 일을 할 수록 힘들어지냐’는 소시민들의 외침이 자리잡고 있다.

불편한 질문이지만 영화는 이런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직접적인 설명 대신 상상을 자극하는 은유적인 장치들로 가득하다. 
▲ 영화 위로공단의 장면. 사진제공=영화사 반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영화 위로공단을 만든 임흥순 감독(오른쪽)과 김민경 PD.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하나부터 열까지 무엇이 문제라고 말해주지 않지만, 마치 선글라스를 써야 태양을 편하게 볼 수 있듯 예술적 표현으로 영화 메시지는 더욱 오래 기억된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김민기의 노래 '야근'과 작사미상의 '희망가'는 누군가에게 추억을 선사해 줄 것이다.

아픔의 역사를 머리가 아닌 가슴에 가깝게 전달하기에 위로공단은 낯선 외국인에게도 단순한 영화가 아닌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이유로 위로공단을 봐야 한다면, 제주도민들이 영화를 챙겨야 이유는 따로 있다. 

일단 영화를 만든 제작자가 제주도 사람이다. 김민경 프로듀서다. 김 PD와 임흥순 감독은 제주4.3을 다룬 영화 '비념'을 함께 제작한 바 있다.

또 하나는 제주만큼 여성의 존재감이 컸던 지역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밭으로 쉴 틈 없이 일하며 가족 생계를 책임진 할머니, 오는 일 마다하지 않고 자녀 교육에 힘 쏟은 어머니, 무한 경쟁 속에 힘겨워하는 딸 모두 위로공단 속 주인공들이다. 

제주여성 3대가 나란히 극장을 찾는 장면을 상상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주에서의 상영은 21일 특별시사회가 현재로서는 마지막이다. 

변변한 씨네마테크(일반 대중극장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 하나 갖추지 못한 비참한 지역 현실과 거대 프랜차이즈 회사가 개봉관을 꽉 잡고 있는 국내 현실이 만난 결과인 셈이다.

개봉 이후 서울,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위로공단을 알음알음 관람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덕분에 임 감독과 김 PD도 하루 일정으로 전국을 누비고 있다. 

위로공단의 배급을 맡고 있는 ㈜엣나잇필름은 극장 대관이 어려울 경우 30명 이하의 소규모 관객들도 충분히 관람 가능하도록 준비 중이다. ‘제주의 딸’ 김 PD는 이날 “더 많은 도민들이 위로공단을 만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당부했다.

위로공단은 평범한 영화는 아니다. 재미있거나 유쾌한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감독 또한 "일반적인 관객 눈높이에 맞춘 작품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평범한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울림이 분명 있다. 불편하지만 누군가는 말해야만 하는 사실을 용기있게 다룬다.

눈물 짓는 스크린 속 여성들과 공감대가 있다면 울림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회화, 예술학을 전공한 감독의 역량이 느껴지는 화면 구성도 인상깊다.

이날 시사회 후 관객과의 만남에서 임 감독이 남긴 “작품을 위해 사람을 만나지는 않는다. 사람을 위해 작품을 만든다”는 말은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위로공단을 만들었는지 짐작케 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뿐만 아니라 부산국제영화제, 인천다큐멘터리리포트, 상하이국제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몬트리올국제영화제 등 전세계에서 위로공단을 찾았고 또 찾을 예정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자녀를 위해, 가족을 위해, 미래를 위해… 지금도 밤낮 없이 노동하는 모든 사람을 위로하며 영화 위로공단을 추천한다. 

관람 문의: ㈜엣나잇필름 극장사업부(010-3363-8293)
▲ 21일 열린 영화 위로공단 제주 특별시사회 장면. 왼쪽부터 안혜경 아트스페이스C 대표, 임흥순 감독, 위로공단 출연자 김민경 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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