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고태민 의원

역사적으로 주변 나라의 많은 침략으로부터 굳건히 나라를 지켜낸 우리나라의 호국정신을 말할 때 신라의 화랑정신을 우선 꼽지만, 가장 처절한 외침을 겪었던 고려의 대몽에 대한 ‘저항정신’도 빠질 수 없다. 고려 원종 14년(1273년) 여몽연합군에 최후까지 항쟁하다가 전원 순의한 삼별초의 마지막 보루이자 1997년에 사적 제396호로 지정된 항파두리 항몽유적을 보면 당시의 어려웠던 상황과 삼별초의 기개를 엿볼 수 있다.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항파두리 항몽유적은 1977년부터 토지매입을 시작해 토성복원사업과 발굴조사 등 연차적인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2011년도 시굴조사 결과 항파두성의 중심부인 내성의 규모 및 주요시설물의 존재와 다양한 유물을 확인함으로써 제주에서의 삼별초 대몽항쟁의 고고학적 증거를 확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577필지 110만559㎡의 지정보호구역 중 행정에서 토지매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지금도 사유지가 5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매입된 토지마저 약 35%가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문화재 지구라는 이유만으로 행위 제한에 따른 재산권 피해는 물론 지역주민들이 활용에 따른 그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는 죽어버린 공유재산일 따름이다.

2012년 작성된 2차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 종합정비계획’에 따르면 토지매입과 발굴조사, 복원정비, 학술연구 및 활용을 위해 총 89억원이 투자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지난 2001년 만들어졌던 1차 종합정비계획의 43% 진척률이라는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 2021년까지 완성되어져야 할 항몽유적지 사적지 내에서 복원과 활용사업은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토지매입→발굴조사→ 복원→ 활용’이라는 원칙 아닌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가 소중한 우리 자산이라는 자긍심을 갖도록 하는 문화재 정책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복원정비계획을 추진하면서 지역자산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경제적 창출을 위한 재정적, 제도적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의 지속 가능한 보존과 활용을 위해서는 우선 발굴조사로 파헤쳐진 항몽순의 비의 성역화가 필요하다. 내성 유적 조사라는 이유로 1977년 몽고군에 대항해 최후를 맞이한 삼별초군의 넋을 기리기 위해 항몽유적을 재조명시켰던 정비는, 인정받지 못한 역사처럼 무시된 발굴조사 현장에서 근·현대 문화재관리 정책 부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나라를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버린 ‘저항정신’은 작금에 꼭 필요한 시대정신에 역행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발 빠른 토성 복원으로 대몽항쟁을 체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경기도의 남한산성 둘레길처럼 토성 위를 산책하면서 역사를 배우는 탐방로를 조성한다면 역사와 자연, 문화가 어우러진 제주의 대표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유적지 사업을 통한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면, 복원지역과 보전지역을 사전에 검토해 기존 매입된 발굴완료 토지를 지역주민에게 농경지로 임대한다거나 복원 대상 유적을 선정해 우선 복원 속에 문화콘텐츠화 방안, 그리고 문화유산으로 인한 재산권 피해 주민에게 다각도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관련 조례를 제정할 수도 있다.

네 번째는 문화관광 인프라시설 확충이 시급하다. 유적지내 주차장, 휴게실과 진입도로는 1977년 공영관광지로 공개할 당시의 시설 그대로다. 주차장은 협소해 대형버스 주정차에 어려움이 있고, 휴게실은 구멍가게 수준으로 제대로 된 문화상품 하나 없다. 인근 지방도와 연결된 진입로는 인도 정비가 되지 않아 도보 접근이 곤란하고 자전거 이용도 불가하다.

문화유산 주관부처인 문화재청은 “문화유산 대표브랜드 개발 및 지역문화 유산 자원화가 시급하다”면서 “문화유산 명품 브랜드 육성, 지역 특성과 수요자를 고려한 맞춤형 활용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 확대하겠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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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태민 의원. ⓒ제주의소리

이미 중앙에서는 죽어있는 과거의 문화유산이 아닌 지역주민과 함께하고 지역브랜드로 가져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선 6기 제주도정은 문화재생을 통해 경제적 창출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까지 무조건적 보존만 고수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문화의 가장 기본은 지역의 정체성이며, 그 정체성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유산에서 확인될 수 있다.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과 활용 정책은 원도심 문화재생뿐만 아니라 읍면의 균형 발전적인 문화재생도 동시에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고태민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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