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택과 제주도 공군기지

‘미군기지확장반대범국민대책위’가 ‘제2의 광주학살’로 규정한 4일 새벽 이후의 평택 유혈사태는 공교롭게 군사기지 논란에 휩쌓인 제주의 앞날을 미리 보여주는 듯 암담하다. 지나친 기우일까?

이제 보니 제주와 평택의 군사기지 역사는 닮아 있다

1894년 ~ 1895년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 지배를 위해 벌인 청일 전쟁, 1904년 ~ 1905년 일본이 이번엔 러시아와 벌였던 러일전쟁, 그리고 두 전쟁의 승리를 발판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던 일본이 설치한 군사기지, 이곳이 평택이다.

일제 해방후 미군에 의해 인수돼 3~40만평 하던 이 군사기지는 계속 확장돼 2005년 현재는 150만평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팽성읍 대추리, 안정리 등지의 주민들이 말 한마디 못하고 쫓겨났음은 물론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송탄에 만들어진 미군기지는 이 일대 주민들을 또 다시 용인, 평택, 안성 등지로 내쫓았다. 미군기지 확장 이전으로 쫓겨나게 된 현재 평택 주민들은 이제 두 번째 내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송탄 미군기지도 13번의 확장을 거듭, 현재 200만평에 이른다고 한다.

1938년 일본군에 의해 건설된 제주도 알뜨르 비행장, 해방 후 우리군이 이 일대를 인수한 이후 면적은 20만평에서 40여만평으로 확장되었다. 1999년에 활주로 조성과 더불어 수송기 이착륙을 시작했고, 작년까지 총 89회의 접근훈련, 7차례의 이착륙 훈련, 23회의 투하훈련을 이미 실시하였다. 공군은 부지면적 등을 이유로 제주도 공군기지 건설 계획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믿을 만큼 제주도민은 순진하지 않다. 다목적작전기지 건설을 이유로 알뜨르 비행장 일대 195만평을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했던 지난 1989년의 경험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치하로 거슬러 올라가는 군사기지의 역사, 그리고 비록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철거되지 않고 해방 이후 지금껏 이어져 왔던 군사기지 입지의 내력, 군사기지 확장 메커니즘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규모의 변천, 이 모든 것들이 평택과 제주가 섬뜩하게 닮아 있다.

 여기에, 부연하고 싶지는 않지만 미 군사전략 변화에 따른 주한미군 재배치와 군사기지 확장 이전의 중심에 선 평택.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벌어지는 제주의 군사기지 건설 논란. 평택사태를 보며 암담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지나친 기우일까?

# 평택과 제주도 해군기지

올해 4월에 나온 국방부 공식자료는 작년 12월 관련예산 삭감의 좌절(?)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해군기지는 그 추진이 이미 구체적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당장 올해 5~6월 중 작년에 삭감당한 예산을 예비비 편성으로 건의할 예정이며, 올해부터 내년까지 기본조사, 환경·피해영향조사, 문화재지표조사 실시계획을 알리고 있다. 내년에는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상정 심의 후 부지매입에 들어갈 것임을 밝히고 있다. 내년부터 당장 항만공사가 시작한다고 한다.

“도민들이 반대하면 강행하지 않겠다”던 해군은 80% 이상의 지역주민이 여전히 기지건설을 반대하고 있음에도 여론조사결과를 인용 도민들의 “찬성여론 우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해군기지 논란이 한창이던 작년, 제주도지사의 ‘논의 유보’ 선언으로 이 문제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이 사이 ‘제주도해군기지반대도민대책위’는 도지사의 선언을 존중해 일체의 행동을 멈추었다. 순진했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내부에서도 멈춰졌다. 그 사이 해군기지문제는 도내 지역간 유치경쟁처럼 현상하였고, 찬성론자들은 ‘제주도해군기지범도민유치위원회’까지 결성해 논의중단을 선언한 도지사를 우습게 만들었다.

국방부 자료는 이를 두고 “2002년 이후 대민홍보와 친해군화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현재는 전체적으로 찬성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유치경쟁 확산으로 화순지역의 호응도가 높아지고 있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따라서 “’06년 사업추진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돼 5~6월 예비비 편성을 건의하여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하고 있다.

필자도 뜬금없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지만, 논의가 유보된 사이 인맥을 동원한 대도민 ‘물밑 로비’ 의혹이 국방부 자료는 ‘유치경쟁 확산’과 이에 따른  높아진 ‘화순지역의 호응도’로 제시해, ‘사업추진이 가능하다는 판단’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해군은 2002년에 이어 작년에도 “반대여론과 상관없이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말을 바꿨지만, 또 다시 주민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내세우는 해군, 혹은 국방부는 제주도 해군기지건설을 그간의 논의중단 상황과 아랑곳없이 은밀히,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시작하고 있던 셈이다.

애시 당초 주민동의 없이 추진된 미군기지 확장계획이었지만, 최근 막바지 ‘대화’합의마저 깨고 밀어붙인 결과 나타난 평택의 유혈사태가 다른 곳의 일 같지 않게 또 다시 섬뜩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 너무나 평온한 제주도?

최근 제주도지사 선거를 두고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여당의 제주도지사 후보 영입문제를 둘러싼 이 ‘중앙정치의 대리오염’은 메니페스토와 같은 생소한 언어까지 불러오며 전개되는 정책선거의 이벤트마저 삽시간에 잠재웠다. 여당후보 공천을 둘러싼 두 후보의 대결효과에 편승한 나머지 후보들의 도덕성 논란은 가십거리도 되지 않는다. 어쨌든 그 사정이야 어떻든 제주도는 현재 ‘선거 중’이다. 평택유혈사태 촛불집회가 있은 바로 다음날 저녁의 열린우리당 당원들의 촛불집회는 차라리 평온하다.

제주도 여당 두 국회의원은 지난달 13일 같은 당 임종인 의원과 함께 공군기지가 추진될 경우 “국회차원에서 저지하겠다”고 호언하였다. 또 이틀 후 15일에는 여당의 도지사, 도의원 후보 32명이 공군기지 반대를 천명하였다. 물론,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입장은 없었다. 해군기지 논란 당시 그토록 쟁점이 됐던 ‘경제효과’논란도 공군기지 문제에 만큼은 해당되지 않았다. ‘평화의 섬’ 위협론이 주된 이유가 되었다. 

더욱 의아한 것은 이번 도지사 공천후보 파문을 사실상 주도한 ‘여당 중앙당’이 도지사, 도의원 할 것 없이 입장을 천명하고 나선 공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는 이 당시에도 어떠한 공식적인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엄밀히 보면 지금이 지방선거국면임을 감안할 때 여당 후보 전원이 나서는 지역의 현안에 이는 너무 소홀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여당 중앙당의 책임정치가 선거국면에서 조차 지역의 요구가 있어야만 입장을 내는 수준인지 의심이 된다.

군사기지 문제는 이후 전개되는 양상에 맞춰 ‘상황에 맞게’ 대응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에 대한 입장이 찬성이든 반대이든, 아니면 심지어 타협이든 그것이 이번 선거 이후 출범하는 도정의 최대 숙제로 남겨질 것이 예상되는 이상 이번 선거 안에서 분명히 다뤄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도지사 선거 파열음은 차라리 평온하다.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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