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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대학교 재일제주인센터, 탐라문화연구원은 재일제주인 소설가 김석범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심포지엄 ‘재일제주인문학에서 세계문학으로’를 22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제주대, 김석범 문학 심포지엄 개최...“통일투쟁, 평화 지향 담은 중요한 4.3문학”


원고지 2만 2000장, 집필 기간 20여년. 현재까지 유일한 제주4.3 대하소설 <화산도>(火山島). 일본과 제주라는 경계에서 평생 동안 펜을 놓지 않은 재일제주인 2세 소설가 김석범 선생과 <화산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자리가 제주에서 열렸다. 문학 전문가들은 <화산도>가 제주4.3을 민중수난사에 그치지 않고 ‘반제국주의 통일투쟁’으로 바라보는 중요한 작품일 뿐만 아니라, 친일파·기회주의자·미군정을 고발하는 기념비적인 4.3문학이라고 평가했다.

제주대학교 재일제주인센터, 탐라문화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심포지엄 ‘재일제주인문학에서 세계문학으로’가 22일 제주대 인문대학 1호관 3층 문화원형체험관에서 열렸다.

‘역사의 난경을 넘어 평화와 상생을 향한 김석범 문학’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김석범 개인이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써왔는지, 필생의 역작 <화산도>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국내 문학 전문가들이 참석해 논의하는 자리가 됐다.

1925년 재일제주인 2세로 오사카에서 태어난 김석범은 18세였던 1943년 제주에서 1년여를 머물렀고 해방 후인 1946년 서울 국학전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1948년 오사카로 밀항했지만 이후 평생을 일본에서 살아야 했다. 그가 한국을 다시 찾게 된 시기는 40년이 지난 1988년이다. 제주에서 밀항해 온 친척으로부터 4.3소식을 접한 뒤 32세인 1957년부터 4.3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을 꾸준히 써왔다.

<간수 박 서방(看守朴書房)>, <까마귀의 죽음(鴉の死)>, <관덕정(觀德亭)> <만덕유령기담(万德幽靈奇譚)>, <화산도> 등 일본에서 문학으로서 4.3을 알려왔고, 1987년 ‘제주4.3을 생각하는 모임-도쿄, 오사카’ 결성을 주도하는 등 4.3진상규명과 재일동포 사회의 평화·인권·생명운동에 앞장서온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제1회 4.3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4.3평화상 수상자 선정, <화산도> 전권(12권·출판사 보고사) 한국어 번역 발간 등 김석범에 대한 재조명이 잇달아 이뤄지는 가운데, 온전히 그를 위한 심포지엄이 제주에서 열린다는 소식은 많은 문학계 인사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날은 평소 김석범 선생과 가깝게 교류하고 있는 조동현 ‘4.3을 생각하는 사람들-동경’ 대표가 직접 참석했고, <화산도> 번역을 맡은 김환기 교수(동국대 일어일문학과), 김학동 동국대 일본학연구소 연구원과 김재용 교수(원광대 국어국문학과) 등 다수의 학계 인사들이 참석했으며 제주에서는 김동윤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장, 김수열 제주도 문화예술위원장, 이종형 제주문학의 집 사무국장, 문무병 박사 등이 함께했다.

#낯설지만 새로운 4.3을 보여주는 <화산도>

‘4.3문학으로서의 <화산도>’라는 주제로 발표한 김동윤 원장은 "김석범이 <화산도>를 통해 표현하는 4.3은 우리들에게 낯설다"고 말한다. 문학을 비롯한 4.3운동은 오랫동안 4.3을 막아온 금기의 벽에 맞서고자, 4.3을 진실 복원으로서의 '민중수난사'로서 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런 관점을 잘 나타내는 작품이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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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윤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장. ⓒ제주의소리
김 원장은 “4.3은 합당한 기념사업, 보상이 전부가 아니며 거기에 그쳐서도 안된다”며 “국민국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행으로만 4.3을 볼 것이 아니라 지구적(地球的) 시각에서 4.3을 만나야 한다. 김석범의 <화산도>는 그런 시각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면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꼽았다.

그는 <화산도>가 4.3문학으로서 ▲반제국주의 통일투쟁 ▲인간애와 평화 지향 ▲바다와 성내(성안)라는 장소성 강조 등의 특징을 지닌다고 정리했다.

김 원장은 “김석범은 미군정의 정책에 대한 지적을 통해 미 제국주의가 4.3의 주요 원인임을 분명하고 집요하게 드러낸다”며 “특히 친일파 문제를 집요하게 쟁점화해 미군정의 친일파 등용을 문제 삼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작품 전반에 걸쳐 4,3이 끝내 대참사의 비극으로 치닫게 된 데 따른 작가의 안타까운 심정이 감지된다. 이는 당시 그 현장에 함께 하지 못한 데 대한 죄의식과 상통한다”며 “김석범은 4.3봉기의 정당성 자체에는 근본적으로 동의하고 있으나 어떻게 해서든 희생을 최소화했어야 했다는 신념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고 밝힌다.

그는 김석범이 수많은 인명 희생의 책임을 미국, 이승만, 토벌군경에만 돌리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용의주도한 대책도 없이 봉기를 일으키고 섬을 빠져나간 무장대 지도부에도 책임이 있음을 김석범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주로 산, 들판, 해안으로 형상화된 4.3문학 속 배경을 바다(밀항선)와 성내로 넓힌 점은 문학적인 발견이라고 꼽는다.

# “친일파, 기회주의, 서북청년단, 미군정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고명철 교수(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는 주제발표 ‘해방공간의 혼돈과 섬의 혁명에 대한 김석범의 문학적 고투: 김석범의 <화산도> 연구 (1)’에서 <화산도> 속 등장인물에 주목했다.

특히 친일파, 기회주의자, 서북청년단, 미군정 등 ‘반(反) 혁명 권력’으로 묶어지는 존재에 작가가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조명했다.

작품 속 유달현이란 인물은 일제강점기 전형적인 친일협력자였다가 해방공간에서는 전향해 투철한 남로당원으로서 활동한다. 제주에서의 혁명이 점차 패배로 기울어지자 성내의 당 조직 정보를 토벌대에게 팔아넘긴 후 일본으로 밀항하고자 한다. 

고 교수는 “유달현 같은 친일협력자로부터 전향한 이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과거가 부끄럽고 치욕스럽다면 그것을 은폐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해 철저한 자기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점에 대해 작가는 문제를 제기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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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문학전문가들은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가 민중수난사에 집중된 지금까지의 제주4.3 문학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고 평가했다. ⓒ제주의소리

정세용이란 인물 역시 기회주의를 비판하는 도구로 등장한다. 정세용도 전형적 친일협력자로서 미군정이 그를 경찰로 재등용한 것을 계기로 권력욕망에 눈이 멀어 무장대와 군경간의 4.28평화회담을 일부러 음해하고 곡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고 교수는 "정세용은 자신의 사촌에게 권총으로 사살당한다. 그만큼 김석범은 정세용으로 표상되는 반역사적 권력을 매우 단호한 문학적 보복의 대상으로 규정한다"고 해석했다.

김석범의 시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서북청년단과 미군정으로 향한다. 권총을 찬 채 제사에 참여하는 서북청년단 간부 마완도, 제주도를 향해 함포사격을 가하는 미군함.

고 교수는 "마완도가 차고 있는 권총은 바로 서북청년단의 유사 권력을 상징하면서 이후 4.3무장봉기를 토벌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제주도 전체를 아비규환으로 내몰고 주검의 지옥으로 치닫게 한 폭력의 실체"라고 비평했으며 “김석범은 제주섬의 혁명이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는 것을 저지하는 민족 구성원 내부의 문제로만 파악되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무엇 때문에 미군정과 미국이 집요하게 간섭했는지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절실하다는 문제의식을 문학의 힘으로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김재용 원광대 교수가 ‘김석범 문학과 동아시아’, 김동현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이 ‘김석범의 문학 세계와 제주’, 김학동 동국대 교수는 ‘<화산도>의 중심의식으로 작용하는 이방근의 자유사상’, 곽형덕 KAIST 교수가 ‘대하소설<화산도>와 재일조선인’으로 주제 발표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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