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의 세 번째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않는다>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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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을 세상에 알린 소설 <순이삼촌>의 작가 현기영이 최근 산문집을 썼다. 생애 세 번째이자 14년 만에 펴낸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않는다>(다산책방)이다. 

올해로 등단 41년이 된 노(老)작가의 산문집은 2002년부터 2016년까지 틈틈이 써오고 발표해온 글 37편을 묶었다. 

현기영은 “싸우는 동안 증오의 정서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비극에 서정과 웃음을 삽입하는 일을 꺼려서는 안 되겠다”며 “사랑이란 두 글자 앞에 머리를 조아려 사과를 한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내어놓는다.

이 책에는 늙음을 접하면서 오는 인간으로서의 상실감, 소설가로서의 슬픔, 또 그것을 받아들이며 생기는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꿈꾸게 되었다. 노경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들이 적지 않는데, 그중 제일 큰 것이 포기하는 즐거움”이라며 “이전 것들에 너무 아등바등 매달리지 않고 흔쾌히 포기해버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고 쿨(cool)하게 말한다.

현기영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제주4.3에 대해서도 한 마디 덧붙인다. 그는 “4·3사건을 말하지 않고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 동안 독재정권을 겪으면서 발설 못하게 철저히 금압당해왔기 때문”이라며 “4·3의 글쓰기도 조금은 너그러워야 하지 않겠냐. 모든 걸 엔터테이먼트와 쇼로 만들어버리는 이 경박한 시대에 해묵은 엄숙주의만을 고집하다가는 비웃음을 당하기 십상이지 않겠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반문한다.

이제 일흔이 넘은 현기영은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에서 오랜 시간 지켜온 문학적 의식마저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때로는 지키며 새로움을 향해 나아간다. 엄숙함의 무게를 한 단계 내려놓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글과 세상을 대하는 제주의 대표 작가 현기영의 오늘은 알고 싶다면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

1941년 제주서 태어난 현기영은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서슬 퍼런 독재 정권 아래서 4.3소설집 <순이 삼촌>(1979)을 비롯해 <아스팔트>(1986), <마지막 테우리>(1994) 등 다수의 작품을 펴냈다. 산문집은 <바다와 술잔>(2002), <젊은 대지를 위하여>(2004)를 출간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역임했으며 신동엽문학상(1986), 만해문학상(1990), 오영수문학상(1994), 한국일보문학상(1999) 등을 받았다. 

다산책방, 260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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