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지 양, 최종 합격 '학교 발칵'...부모님은 막대한 학비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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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와세다대학에 최종합격한 제주외고 임영지 양. 손에 들고 있는 다이어리는 일본어 공부에 큰 도움을 준 학습플래너. ⓒ 제주의소리

요즘 제주시 애월읍에 위치한 제주외국어고등학교가 떠들썩하다. 학교 역사상 최초로 일본 전통 명문 와세다대학교(Waseda University, 早稲田大学) 합격자가 배출됐기 때문이다. 사교육에 의존한 것도 아니고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스스로 이뤄낸 성과이기에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합격자의 부모는 기쁨 만큼 걱정도 가득하다. 어찌된 일일까?

주인공은 제주외고 3학년 임영지 양. 지난달 23일 와세다대학교 교육학과에 최종합격했다. 지난 6월 첫 관문인 일본유학시험(EJU)에 이어 9월에 진행된 대학 본고사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며 일본 수재들 간 치열한 경쟁을 뚫은 것.

결과보다 놀라운 것은 과정이다. 영지 양은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일본어를 알지 못했다. 제주외고 일본어과에 들어가기 전 일본을 방문해본 적도 없거니와 입학을 앞두고 히라가나를 겨우 외웠을 정도다.

게다가 국내에서 고3 때 바로 시험을 봐 합격해 일본 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 소위 ‘현역’으로 일본 명문대에 진학하는 경우가 드문데다 서울 강남에서 학원을 꾸준히 다니며 대비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영지 양의 방식은 이와는 달랐다.

제주엔 이를 대비할 마땅한 학원을 찾기 힘들었다. 여건 상 사교육에 의존할 수도 없었다. 스스로 주제주일본영사관에 찾아가 정보와 자료를 얻었다. 어렵사리 구한 책들은 5번씩 돌려봤다. 하루에 4시간 30분씩만 자면서 압축적으로 공부에 매진했다. 그나마 학교에 일본어 원어민 교사가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글을 읽고, 쓰고, 듣고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일본어와 씨름했다.

그 노력의 결실은 지난 달 23일 합격자 발표로 돌아왔다. 주변에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담임인 정영훈 교사는 '학교가 뒤집어질 정도'였다고 했다.

“처음엔 믿기 힘들었어요. 사실 와세다 대학 말고 다른 대학도 준비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희망을 심어주면서 열심히 하라고 말해왔죠. 그런데 이렇게 붙고 나서 보니 그 동안 영지가 했던 노력들이 생각이 나는 거에요. 확실히 하나에 집중을 하면 결과가 나타나는 구나 하구요”

믿기지 않았던 건 영지 양도 마찬가지다.

“부모님 반응요? 다시 확인해보라고 하셨어요. 아닐 수 있다고.(웃음) 그래서 정말 10번 확인했어요. 그리고 그 날 자면서 ‘다음 날 수험번호가 바뀌어있으면 어떡하지’, ‘무슨 오류가 있어서 잘못 뜬 거면 어떡하지’ 걱정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다음 날 재차 확인해보고는 안심이 됐죠”

영지 양에게 가장 주효한 전략(?)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봤다. 학습플래너? 원어민교사? 의지? 돌아온 대답은 ‘친구’였다.

“정말 애들의 도움이 컸어요. 제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고, ‘넌 분명히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늘상 해줬어요.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거 정말 다들 ‘안될거다’라고 봤거든요. 가능성이 사실상 높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제 친구들 만큼은  ‘넌 할 수 있다니까!’ 하고 응원을 계속 해줬어요. 제가 이 친구들한테 세뇌(?)를 당했을 정도라니까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됐어요. 그게 가장 큰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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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지 양이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학습멘토링 교육기관 칠판에 쓴 문구. '와세다 대학 교육학과 합격! 반드시'라고 적혀있다. ⓒ 제주의소리

영지 양이 인생·공부·진로 상담차 자주 찾았던 학습멘토링 교육기관 소장 김모씨(60)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한편으로는 진짜 평범했던 영지가 꿈을 갖더니 결심한지 대략 1년반만에 일취월장으로 해냈다고 대견스러워했다.

"2학년때 쯤 뜬금없이 와세다 간다고 내 연구실 화이트보드에 딱하고 적어놓더니 '사고'를 치고 말았지 뭐야" 

김씨는 아직도 꿈만 같다고도 했다. 

"그런 얘기를 책에선 봤지만, 내 눈앞에서 펼쳐지다니..."

김씨가 생각하는 영지 양의 합격 비결은 철저한 자기주도 학습. 3년간 진짜 완벽하게 자기주도로 길을 뚫었다고 귀띔했다.

영지 양의 부모님 임호준(48)씨와 나애경(47)씨는 이런 딸이 아주 자랑스럽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영지 양의 어머니 나씨의 목소리가 심상찮았다. 너무 기쁘고 딸이 자랑스럽다면서도 미묘하게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혹시 무슨 고민이 있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잠시 주저하다 조심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

“사실 미안해요. 정말 저희는 제대로 해준 게 없거든요. 얘는 정말 혼자서 모든 걸 알아서 스스로 했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너무 안타까운 거에요. 사실 저희 집이 넉넉지 않거든요. 그래서 앞으로가 걱정이에요. 입학금과 학비, 그리고 일본 생활비까지 계산을 해보니 아무리 적어도 1년에 최소 3000만원이 들 것 같아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어머니는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갔다.

“장학금 제도를 찾아보지 않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국내 정부에서 지원하는 장학금은 사실상 국내 대학에 진학했을 경우에만 해당되더라구요. 사실 와세다 대학은 현지의 부유층들이 진학하는 학교라고 해요. 만약 영지가 학교에 가서 기가 죽지나 않을까 너무 염려돼요”

현재 국내 대학 등록금 지원 시스템은 국내대학에만 한정돼 있다. 국가의 도움을 받을 길이 막막하다.

“부모로서는 정말 너무너무 흐뭇하지만 동시에 걱정스러워요. 그리고 너무 가슴이 아파요. 한 번 이런 적이 있어요.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아니에요, 엄마 이만큼 살아줘서 고마워요.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요. 부모님이 노력하지 않으셨다면 전 아예 이런 꿈도 꿀 수 없었을 거에요’ 라고 하는 거에요. 정말 고맙고, 울컥했어요”

가족에게 날아든 기쁜 소식과 동시에 시작된 큰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영지 가족의 고민을 덜 수 있는 또 다른 기쁜 소식은 언제쯤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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