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칼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회운영위원장 김태석

사람은 소득이 늘수록 넓은 집으로 이사를 생각한다. 집의 크기에 따라 세간살이의 개수와 크기가 달라진다. 지방재정 또한 재정규모에 따라 정책과 사업의 구성이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인구 대비 재정규모가 커질수록 재량예산이 증가하고, 재량예산은 정치적지지 확보를 위해 세출에 편성된다.

2016년 제주도의 재정규모(순계예산 기준)는 3조9000억원으로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 당시 2조원에 비해 9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이 43% 증가한 것에 비하면 상당한 증가율이다. 자체재원의 경우 2016년은 1조원으로 2007년 4000억원에서 140% 증가했다. 이러한 지표들은 제주도정의 의지대로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여유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례로 2008년 제주도 1인당 사회복지 예산은 45만원인데 비해 2016년은 123만원에 이른다. 광역자치단체 중 대전에 이어 두 번째다. 재정여유가 다른 분야에 비해 많이 투입된 결과다. 정치적 과정의 결과로 사회복지 예산이 증가하는 것은 주민으로선 달가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재정여유가 일시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제주도의 괄목할만한 재정지표 호조는 리스차량 세제혜택 등 역외세원 발굴 때문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부동산 지가 상승에 따른 지방세의 높은 증가에 기인한다. 부동산 과열이 냉각되거나, 인구가 제주도 ‘수용력’의 임계치에 다다를 때 지방세는 급감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성장 둔화로 인해 교부 또는 보조되는 예산이 줄어들 가능성도 높다. 세입의 급격한 증가세가 가까운 미래에 꺾이거나, 오히려 감소될 가능성이 현실화 되고 있다.

예산은 당해연도 세입을 모두 당해연도에 지출해야 하는 원칙에 따라 세출총량의 변화를 강제로 억제할 수는 없다. 문제는 당초 예상되는 수입보다 초과 징수된 재정여유를 예산에 편성함으로써 세출총량을 최대한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수입의 적신호가 켜지고 있지만, 이미 늘어난 세출총량을 줄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재정수입이 급감하면 법적으로 반드시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복지, 개발, 환경예산이 줄게 된다. 투표권이 없는 미성년자와 정치적 소수자 예산은 대폭 줄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갈등이 예상된다. 예산을 둘러싼 진짜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일시적으로 소득이 증가했다고 무작정 집을 넓혀간 결과다.

이쯤에서 세입의 급격한 감소에 대비하기 위한 묘안은 분명해진다. 바로 재정여유를 적립해두는 것이다. 이미 미국과 일본, 북유럽 국가 다수에서는 재정여유를 ‘재정안정화기금(Rainy day fund)’ 또는 ‘재정조정적립금’ 형태로 비축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순세계잉여금의 절반 이상을 법적으로 비축하고 있다. 재정적자 또는 경제사정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수입의 일정 부분을 적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지방정부 수준에서 재정위기를 겪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외국의 사례로만 치부할 일이 아닌 이유다.

지금 제주도의 세입은 급증하고 있고, 이에 맞춰 세출총량도 급증하고 있다. 만일 세입이 급감한다면 어느 분야의 예산을 감축해야 할까? 가장 우려스러운 일은 정치적 반발을 걱정해 선심성 예산은 유지되고, 제주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예산을 줄이는 것이다. 재정여유를 적립해두는 제도가 제주도에 절실한 시점이다.

1.jpg
▲ 김태석 위원장. ⓒ제주의소리
이러한 제도를 제주도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원희룡 도지사의 과감한 용단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정치적 쌈짓돈인 재정여유를 임기 내에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2017년도는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둔 해이다. 짐작컨대 재정여유의 예산편성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가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보다 현명한 지사라면 재정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선진화된 재정운용제도를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도입했다는 치적이 재정여유의 활용을 통해 얻게 되는 정치적 지지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세출총량의 증가를 억제하면 자연스레 정책의 우선순위를 따져보게 된다. 이를 통해 재정은 더욱 건전해진다. 이솝우화의 베짱이 같이 어려운 시절을 대비하지 않았을 때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회운영위원장 김태석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