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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다큐멘터리 영화 <오사카에서 온 편지>

제주4.3을 다룬 영화가 오랜만에 등장한다. 1998년 <무명천 할머니>(감독 김동만), 2013년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감독 오멸)와 <비념>(감독 임흥순)에 이어 4년 만에 선보이는 <오사카에서 온 편지>(감독 양정환)다. 극영화로 제작된 <지슬>,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된 <무명천 할머니>, <비념>과 달리 신작은 두 장르를 반반 섞은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표방한다. 주인공들의 현재 모습을 영상에 담고, 동시에 그들이 겪은 일을 재현하는 방식이다.

이 작품은 4.3으로 인해 고향 제주를 떠나거나, 사랑하는 이를 일본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이들의 실제 사연을 그린다. 피신하듯 홀로 제주에서 오사카로 떠나 돌아오지 못한 권경석 할머니, 반대로 오사카에 있는 부모와 떨어져 지낸 문인숙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사카에서 온 편지>는 아쉬움이 많이 드는 작품이다.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와 비교하면 사실에 근거한 배경 설명이 충분하지 않고, 극 부분도 진행, 구성, 자막 같은 요소가 짜임새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오사카 재일교포들의 증언도 보여주다 만 듯 부족하다. 본래 의미는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에 가깝지만, 통상 국내 극우세력이 자신들을 비판하거나 거슬리게 하는 존재에게 전가의 보도처럼 덧씌워 사용하는 ‘빨갱이’라는 거친 표현도 전체 맥락을 고려하면 필요 이상으로 사용됐다고 보인다.

이런 지적은 제작진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인 동시에, 다분히 의도했다고 말한다. 21일 열린 4.3희생자유족회 운영위원 시사회에서 만난 양 감독은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 다만, 관객이 작품을 보고나서 여러 가지 생각과 질문을 가졌으면 하는 의도를 담았다. 빨갱이라는 말이 대체 어떤 의미인지, 4.3이 자세히 어떻게 벌어졌는지 영화를 본 사람들이 직접 찾아보게 하고 싶었다”며 취지를 밝혔다. 

영화는 정체 모를 인물들에게 무자비하게 살해당하는 주민, 일본에서의 고된 삶을 견디며 고향 제주에 갈 순간만을 기다리지만 한국전쟁으로 갈길이 막힌 여인, 밀입국 사실이 밝혀져 부모가 있는 일본에서 떠나게 된 딸 등 이념 갈등에 휘말려 고통을 겪은 피해자의 기억을 재현한다. 정치적인 시각을 떠나서 4.3 당시 고통 받은 모든 도민의 감정을 보여주려한 감독의 고민이다.

분명 ‘보다 완성도를 갖췄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바람은 있다. 그렇지만 어떤 의도로 양 감독이 영화를 시작했고 지난 제작 과정이 어땠는지 돌이켜보면, 4.3에 매달려 수년 간 뛰어다닌 제작진에 대한 고마움을 빠뜨릴 수 없다. 양 감독은 제주로 이주한 지 1년 만인 2004년 故 김경률 감독의 유작 영화 <끝나지 않는 세월>의 편집을 맡았다. 4.3 유족들이 직접 연기한 <끝나지 않는 세월>은 많은 지역 예술인에게 깊은 영감을 줬고, <지슬>도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4.3은 물론이고 제주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양 감독은 선배를 떠나보내며 4.3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지게 됐고, 그 첫 번째 결과물이 바로 <오사카에서 온 편지>다. 제작비 8000만원 가운데 상당 금액을 사비로 털어 충당하고, 일본 현지 촬영도 단 3일 만에 모두 마무리 지을 만큼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탄생했다. “나도 왜 4.3에 매달리는지 모르겠다. 4.3영령에 홀린 것 같다”는 감독의 너털웃음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이유다.  

21일 시사회는 지난 설 명절, 영화 주인공 가족에게 완성본을 처음 선보인 뒤 열린 두 번째 자리였다. 영화를 끝까지 관람한 4.3희생자유족회 운영위원들은 “감동 깊게 봤다. 앞으로 더 좋은 (4.3)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박수로 격려했다. 시작 전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했던 양 감독은 “4.3유족회에게 허락을 받았으니 영화를 (세상에) 보여줘도 되겠다”며 부담감을 덜어낸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4.3을 향한 양 감독의 여정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두 번째 작품인 다큐 영화 <4월 이야기>도 곧 제작에 들어간다. 어느덧 70년까지 와버린 4.3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지만 몸을 던져 다가가는 이들은 점차 줄어드는 오늘에서, <오사카에서 온 편지>는 투박하지만 정성이 담겨있는 영화다. 작품성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는 절반으로 접는다. 끈기 있게 4.3을 파고들 한 영화인의 발걸음을 지켜본다. 영화 명예감독으로 추대된 김경률 감독도 아마 격려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오사카에서 온 편지>는 3월 1일 오후 1시 30분 제주시 칠성로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옛 코리아극장)에서 세 번째 시사회를 연다. 여기는 4.3 유족, 사전 신청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영화가 궁금하다면 보러 오셔도 된다”는 것이 감독의 설명이다. 4월 2일에는 정식으로 상영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4월 2일 자세한 일정은 조만간 확정될 예정이다. 새 소식은 페이스북 ‘양정환’ 계정에서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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