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다시 연꽃이 피어났습니다"


놀이터 구석 풀밭을 기어다니고 있는 거북이
우리네의 삶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라고 하던가요?

우리들은 종종 숱한 만남,이별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기쁘게,아프게,때로는 슬프게 반추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꼭 사람인 것만은 아니지요.
아끼던 물건이나 동물과의 만남과 이별도 아픔과 기쁨을 주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제게 기쁨과 감동과 아픔을 줬던,그러나 지금은 ‘추억’이 돼버린 이놈과의 인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송현우 화백
제가 이 놈(이하 거북이)을 처음 만난 건 작년 ,바람마저 스산스럽게 불어대던 을씨년스러운 늦가을의 어느 날(정확히 11월28일)이었습니다.
회사 동료와 점심을 먹고 식당 인근 놀이터에서 잠시 쉬고 있었는데, 놀이터 구석 풀밭에서 뭔가 꿈틀댔습니다. 돌멩이로 알았던 게 알고 보니 ‘붉은 귀 거북’이었습니다.

누가 여기에 버렸을까요? 이놈,‘거북이’는 늙고 지친 몰골로 힘겹게 겨우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암튼 ‘이놈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사무실 곁의 연못에 갖다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물론 지난 겨우내 거북이는 수면 위로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았습니다.‘죽었나’했습니다.

그런데 올 봄 햇살 따뜻한 어느 날에 이놈이 드디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더군요.어찌나 반갑던지요. 녀석은 추운 날이면 물 속에 꽁꽁 숨어 존재를 드러내지 않다가도 날씨가 따뜻해지면 어김없이 연못 위 바위에 올라와 두 다리 쭉 뻗고 종일 일광욕을 즐기곤 했습니다.

녀석과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나중엔 녀석도 시나브로 저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제가 주는 새우깡까지 직접 받아먹곤 했습니다.(이것저것 먹을 것을 갖다 주곤 했는데 특히 오징어포를 좋아했습니다)
누가 녀석에 대해 물으면 ‘나의 세 번 째 자식’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저에게 ‘거북이 아빠’라 부르는 분도 계시더군요.

그렇게 놈과 정이 들어갔는데, 이달부터는 녀석의 모습이 보이질 않더군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인가 싶었는데 그도 아니었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일광욕을 쬐고 있어야 할 따뜻한 날에도 녀석은 모습 한 번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짐작이 가지 않는 바도 아닙니다.
녀석을 본 마지막 주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녀석의 등껍질은 이미 깨어져 있었습니다. 황혼의 나이를 맞았을 녀석은(미루어 짐작컨대) 어느 날엔간 깨어진 등껍질에 이끼류를 잔뜩 낀 채로 물 속을 천천히 부유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최근 2,3주 동안 하릴없이 연못 주위를 배회하다가 이제는 아프게 마음을 굳혀가는 중입니다. 아마 이놈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아마 물 속 바위틈바구니에서 영면에 들어갔나 봅니다)

이즈음 스스로 위안을 찾곤 합니다.
이놈이 사라지기 직전의 즈음에 제게 준 감동(새우깡을 직접 받아먹었을 때 얼마나 큰 감동을 느꼈는지 모릅니다)은 이놈이 제게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고 말입니다.

그 마지막 선물은 아마 평생 지울 수 없는 선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아주 힘겹게 겨우 기어다닙니다.등껍질을 보고 미루어 짐작컨대 '황혼'의 나이를 맞은 듯 싶습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거북이의 표정. 걸어다니다가 끼였을 풀잎 하나.


대체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대략 난감)


이대로 놔두면 죽을 것 같고...


사무실 곁 연못에 '방생'하기로 했습니다.


눈치를 살피는 거북이


그러나 마침내 연못 속으로 '철푸덕'


이렇게 뛰어든 거북이
(여기까지의 사진은 작년 11월 말에 찍은 겁니다)


겨우내 몇 달 동안 보이질 않다가 올 봄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추운 날에는 전혀 안보이다가,날씨가 따뜻해지면
어김없이 모습 드러내어 두 발 쭉 펴고 일광욕을 즐깁니다.


가끔은 경계의 눈초리도 보내고...


원래 이 연못에는 다른 '터줏대감'이 살고 있었는데,
처음엔 서로를 경계하다가,나중엔 아주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새우깡을 던져주자 이를 먹고 있습니다.


녀석의 등껍질이 깨어져 가고 있습니다.


두 녀석이 이제는 아주 가까워졌습니다.


금붕어들과도 '상생'을 합니다.
새우깡을 던져주면 오히려 금붕어들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먼저 먹어치우곤 했습니다.


새우깡을 받아먹고 있습니다.
(이게 제가 준 마지막 '먹이'가 됐습니다)


한 손에 카메라를 쥐고 겨우 찍었는데,잘라먹는 순간까지는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거북이는 이제 더 이상 보이질 않습니다.


그 자리에 '연꽃'이 피어났습니다.

※ 이 기사는 도깨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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