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교 승격을 추진하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통폐합 위기' 더럭분교장, 주민·학교 노력 힘입어 본교 승격 추진...전국적 성공사례 나올까

학생수 감소로 통폐합 위기에 내몰렸던 제주의 한 농촌 분교가 주민들과 학교측의 각고의 노력으로 이제는 본교(本校) 승격을 바라보게 됐다. 학령인구 감소로 전국 곳곳에서 작은 학교 통·폐합이 추진되는 현실에서 이례적이면서도 반가운 소식이다. 

<제주의소리> 취재 결과 제주시 애월읍 상·하가리 주민과 학교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장 발전위원회'는 더럭분교장을 초등학교로 승격시켜 달라는 요청서를 지난 24일 제주도교육청과 제주시교육지원청, 애월초등학교에 제출했다.

최근 수십년간 제주에서 학생수 감소로 분교로 강등된 학교는 있어도, 학생수 증가로 본교로 승격한 학교는 거의 없다. 해안초와 도평초가 2011년 분교장에서 본교로 승격한 정도 뿐이다.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문 사례다.   

더럭분교장 발전위원회는 강종우 상가리장과 장봉길 하가리장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제주도교육청, 애월초, 더럭분교장, 상·하가리 주민 등에 따르면 발전위는 더럭분교 학생수가 증가하고, 학령인구 중·장기 계획에도 학생수 증가가 예고되자 주민 설득 끝에 본교 승격을 추진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더럭분교장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하가국민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그해 개교했다. 4.3사건으로 학교 운영이 중단됐다가 1949년 정상화됐고, 1951년 1회 졸업생이 배출됐다.

1954년에는 더럭국민학교로 교명을 바꿨다. '더럭'이란 어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즐거움을 더한다'는 뜻의 가락(加樂)에서 유래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1956년 6학급 편성 인가를 받고, 1984년 병설유치원까지 개원했던 더럭국민학교는 학생수 감소로 1996년 병설유치원 폐원과 함께 애월초 더럭분교장으로 강등됐다.

올해 2월까지 67회에 걸쳐 총 1958명의 졸업생이 배출됐다.

지난 2009년 더럭분교장 학생수는 17명에 불과했다. 폐교 위기의 작디 작은 학교였다.

'반전'의 시작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아름다운 무지개색 학교 건물이 CF에 등장하면서 유명 관광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상·하가리 주민들은 '살고 싶은 마을 만들기'에 주력했다. 주민들이 생각한 살고 싶은 마을은 바로 '제주다움을 간직한 마을'이다. 하가리 '연화(蓮花)못'을 비롯해 청정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그 모습 그대로. 제주 고유의 돌담길을 품은 하가리 올레길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극찬했을 정도다.

누구나 '이런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주민들은 자연과의 공존을 모색했다. 

주민들은 옛 상가리마을공동목장 부지에 예정됐던 대규모 개발사업도 막아냈다.

사업은 상가리 중산간지역 약 44만㎡에 사업비 2000억원을 투자해 조성하려던 ‘한류문화복합시설’이다.

하지만 사업부지의 44.2%가 국공유지인데다, 환경부 멸종위기종인 ‘애기뿔소똥구리’ 등 서식처로 드러나 환경단체의 반발을 샀다. 사업부지의 80%가 해발 500m 이상에 위치해 원희룡 도정의 '개발 가이드라인'에 저촉되는 점도 큰 부담이었다.   

결국 제주도는 사업부지 매입을 결정했고, 개발사업은 이뤄지지 않게 됐다. 

이러한 노력과 맞물려 지난 9월 상가리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한 '제4회 행복마을만들기 콘테스트'에서 문화복지 부문 장관상을 수상했다. 

또 하가리는 제주시가 추진하는 '농어촌 소규모학교 육성지원사업'의 일환으로 2014년 12월 더럭분교 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사업에 따라 하가리에는 이주민 등을 위한 2개동 10세대(세대당 82㎡) 규모의 공동주택이 건립되기도 했다.  제주시의 마을만들기 사업이 든든한 지원군이 된 셈이다. 

더구나 '제주 이주 열풍'은 이곳 상·하가리에도 불어닥쳤다. 그렇게 인구 유입과 함께 학생수도 점차 늘어났다.   

2012년 학생수가 40명, 2013년에는 60명을 넘어서더니 2014년 78명, 올해는 97명으로 증가했다. 학령인구 중·장기 계획대로라면 내년 더럭분교장 학생수는 100명을 돌파한다.

현재 제주에는 더럭분교장과 학생수가 비슷한데도 본교로 운영되는 학교가 상당수 있다.

고산초 99명, 곽금초 112명, 김녕초 105명, 납읍초 134명, 대흘초 169명, 물메초 104명, 봉개초 133명, 수원초 150명, 신창초 102명, 애월초 124명, 어도초 98명, 우도초·해안초 115명, 보목초 99명, 한마음초 128명 등이다.

심지어 구좌중앙초(59명), 금악초(43명), 북촌초(74명), 저청초(70명), 평대초(55명), 하도초(58명), 한동초(53명), 가마초(47명), 풍천초(52명), 하례초(55명), 토산초 (59명), 흥산초(45명) 등 더럭분교장보다 학생수가 적은 곳도 부지기수다. 

사실상 제주시·서귀포시 동(洞)지역 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초등학교 학생수는 더럭분교장과 비슷한 수준이다.

강종우 상가리장은 24일 <제주의소리>와 전화 통화에서 “학생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도 학생수가 늘어나는데, 본교로 승격해야 아이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 지난 1월부터 본격적으로 추진을 시작했고, 상·하가리 주민 모두가 원하고 있다”고 본교 승격에 대한 간절함을 드러냈다. 

본교인 애월초 관계자는 “더럭분교장 학생수가 90명을 넘었다. 발전위에서 애월초에도 본교 승격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왔다. 오는 26일 애월초 학교 운영위원회를 열어 의견을 나누겠다”고 말했다.

더럭분교장 관계자는 “다음 학기가 시작되는 내년 3월1일 (본교)개교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학생수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더 좋은 교육 여건 마련을 위해서는 본교 승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석문 교육감의 결단만 있으면 더럭분교장의 본교 승격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본교 운영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고, 조례개정 등을 거쳐 도교육청이 본교 승격을 결정할 수 있다.

주민과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교명을 '더럭'으로 유지할지, 새로 지을지 결정해야 한다. 더럭분교장은 지난 23일부터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본교 승격 신청에 따른 교명조사'를 실시중이다.

본교로 승격되면 '교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도교육청은 교육부에 직위조정을 요청해야 한다. 이후 학생수 증가에 따라 추가적으로 교원을 배치할 수 있다. 

결국 더럭분교장의 본교 승격을 위해서는 지역사회 관심과 함께 교육 당국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더럭분교장의 본교 승격은 긍정적이다. 소규모 학교 지원 강화라는 이 교육감의 정책 기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교육감은 농어촌 등 소규모 학교 지원에 주력해왔다. 지난해에는 '작은학교 지원조례'를 개정해 60명 이하 학교 통폐합 관리대상을 폐지하기도 했다.

분교장의 본교 승격은 곧 '작은학교 지원 성공 사례'로도 연결된다. 

더럭분교장의 본교 승격과 관련,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긍정적으로 검토중이지만, 국정감사 등 일정으로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한때 존립 자체가 위태로웠던 작은 학교가 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본교로 승격할 수 있을지 도민사회는 물론 전국 소규모 학교들의 이목이 쏠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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