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렬씨를 위한 변명

내가 황동렬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연말에 그가 친노(親盧) 언론매체인 서프라이즈를 대표해서 ‘DR북’이란 제목의 책을 판촉하기 위해 제주에 내려왔을 때였다. 그림과 도해(圖解)들로 채워져 있던 그 얇은 책을 자랑하며 ‘이 책이 100만권만 팔리면 사회가 바뀔 것이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던 황씨의 순수한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 책에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친일 청산, 재벌 개혁, 언론개혁 등 우리사회에 필요한 당면 과제들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려놓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안타깝게도 그 ‘DR북’은 5만권 밖에 팔리지 않았다고 했다.

황동렬씨는 85학번으로 세종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대표적인 386 운동권 출신 중년 가장이다. 직장을 다니다가 글을 쓰고 싶어서 서프라이즈의 고정필진(필명 산맥처럼)이 되었다고 했다. DR북 설명회가 끝난 후 황씨와 나는 몇 명의 지인(知人)들과 더불어 제주시 동문시장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밤늦게 까지 얘기를 나눴다. 내가 만난 황씨는 과거 대학 총학생회장을 지냈던 겉멋 투사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 그는 보기 드물게 점잖고 예의바르며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점잖은 황씨가 최근 자신의 속했던 서프라이즈에서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그 논란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치안비서관, 서울경찰청장을 거쳐 경찰 총수를 지냈던 허준영 전 경찰총장이 다가올 7.26 재보선에서 서울 성북을 지역구에 출마하기 위해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하는 데서 계기가 되었다. ‘사법개혁네티즌연대’라는 단체를 만들고 운영하던 황씨는 검사출신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국회 내에서 수사권 조정 등 사법개혁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경찰출신 국회의원이 한 명은 있어야 있다는 생각에 허 전청장의 선거캠프에 합류했다고 했다.

서프라이즈가 2002년 대선정국에 창간된 이래 대선정국과 탄핵정국에서 노무현 지킴이 역할을 충실히 해왔던 매체임을 감안한다면, 황씨의 이번 행보가 서프라이즈의 독자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던져 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받은 충격을 반영하듯 서프라이즈에는 황씨의 행보를 비난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황씨의 행보를 비난하는 글의 내용은 각양각색이지만 결론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 서울에서 중위권 대학을 나온 황씨는 결국 권력이 가져다주는 이권(利權)이  탐나 허준영 캠프에 합류한 것이 틀림없으며, 아무리 개혁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다고 해도 결국은 과거 이재오, 김문수씨가 한나라당 내에서 보여준 변신의 과정을 보여주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서프라이즈 독자들이 받은 충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아있는 필진들(이들도 대부분 386세대에 속한 자들이다.)이 황씨를 비난하는 방식이 일반 독자들이 보기에게는 시효기간이 많이 지난 낡은 어법임을 이해해줄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황씨의 행보가 이권을 탐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허준영 전 총장에 대한 한나라당 공천이 기정사실화 되고 그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어야한다. 현재로써는 정치 초년생인 허 전 총장이 한나라당 공천을 따낼 확률은 낮아 보이고, 황씨의 경우는 청와대 및 집권정당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던 권력 주변부를 버리고 나간 경우이므로, 그가 이권을 탐해 허 전 총장을 따라 나섰다는 주장은 현재로서는 아무 근거가 없다.

그가 허 전 총장을 따라가서 한나라당 배후에서 활동하는 것 자체가 김문수, 이재오류의 변신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도 현재 상황으로서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김문수 이재오씨의 경우는 진보정당을 버리고, 막강한 물리력과 자금력을 동원할 수 있었던 집권정당에 투항한 경우이므로 명백한 권력 추종이 된다. 하지만 현재 한나라당은 근 10년 째 권력을 놓친 야당인데, 단순히 한나라당 배후로 거처를 옮겼다고 해서 변절을 운운하는 것은 과거와 달리 현재로서는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주장이다.

그의 행보에 대한 각종 비난이 더 이상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최근 서프라이즈와 청와대 열린우리당 등 친노진영(親盧陣營) 내부의 개혁의지 실종에 있다. 만약 현재 친노진영이 개혁에 매진하고 있고, 한나라당이 정부의 각종 개혁 정책에 대해 사사건건(事事件件) 발목을 잡고 있다면 황씨에 대한 현재의 비난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게 될지 모르지만, 이미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나 서프라이즈는 서로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비슷해져 있다. 그들은 이미 이라크 파병에 찬성내지는 동의했고, 공히 공무원노조의 출범에 함께 분노했고, 황우석에 열광했으며, 에 매질을 해대었고 새만금 사업에 감동받았고 지율스님에게 온갖 비난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거리로 나온 농민들의 시위에 분노했고, 한미 FTA를 성사시키기 위해 협력했다.

내가 황씨의 행보에 대해 변론을 자처하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이는 현재 열린우리당과 청와대 주변에 머물고 있는 젊은 386 세대들의 도덕적 해이(道德的 解弛)가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황씨가 열정을 바쳐 활동했던 서프라이즈 조차도 전(前) 대표가 자신의 처(妻)가 대학교수로 임용될 수 있도록 정치권을 이용해 대학에 외압을 가하다가 물의를 일으켜 대표직을 그만 두었다. 정부 고위직과 정부 산하기관에는 참여정부에 줄을 댄 꽤 많은 386정치 브로커들이 낙하산 인사를 통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청와대 주위의 386들은 개혁의제를 설정해서 이를 실현시키고자 끈질기게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그저 낡은 권력실세들과 연합하여 대통령 임기 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뭐 한 가지라도 챙기려는 사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세력 주위에 건전한 사람들이 남아있기를 원한다면 욕심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썩은 고기를 찾아 권력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도 황동렬씨의 행보를 비난하는 386정치 주변인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들은 제발 나라걱정 하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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