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욱 칼럼] 개혁의 순수성을 5년만 간직합시다

강준만 교수는 지난 5월 9일자 한겨레21에 ‘후안무치(厚顔無恥)는 시대정신이다.’라는 제목을 단 칼럼을 썼다. 이 칼럼에서 강교수는 역대 대통령이 된 자들을 되돌아보면서, 이들 대부분이 경쟁자들에 비해 후안무치 자질이 뛰어났기 때문에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다고 평했다. 이승만은 김구에 비해 훨씬 후안무치했고, 김영삼은 김대중에 비해 탁월한 후안무치 능력을 발휘했다고 했다.

정치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계에서도 후한무치는 리더의 필수 덕목이라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 제계를 둘러보더라도 후안무치 농도가 진한 이들이 재벌 총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안무치 경쟁이 정치와 경제를 넘어 이젠 대중에게 일반화 되어간다고 주장하며 현대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후안무치 경쟁’사회로 규정했다.

스스로 후안무치 자각능력을 상실해버린 민주화 운동진영이 자신들의 순수성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말도 남겼다. 7-80년대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자신들의 운동경험을 물질적 보상과 입신출세의 전리품 챙기기 기회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러셀의 ‘혁명의 순수성은 2주일을 넘길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하며 이들을 비꼬았다.

필자가 서론에 시대 최고 논객의 글을 잠시 도용한 이유는 참여정부 들어서도 인사(人事)에 있어서는 후안무치가 사라지기는커녕 더 심화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느낀 참여정부 최고의 후안무치는 이철 전 의원이 철도청 사장으로 임명되면서 남겼다는 말이다. 이 사장은 낙하산 인사를 꼬집으며 ‘보은(報恩)성 인사가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공에 비해 상이 너무 작다’고 답했다. 정몽준 캠프에서 달콤한 꿈을 꾸다가 정몽준이 낙마하자 노무현 캠프에 합류한 게 무슨 큰 공이라고 저러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그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 그의 후안무치한 대답에 걸맞게 정규직을 주장하며 파업 중이던 여승무원들을  사냥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최근 제주 지방정가에서도 여러 가지 후안무치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자신이 속한 정당의 도지사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낮아보이자 하루아침에 정당을 떠나 당선이 유력한 후보 뒤에 줄을 서는 입신주의 행정가들을 봐도 그렇고,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평소의 당규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 광역의원직을 차지하기 위해 원칙을 뒤엎은 집권당의 상무위원인가 하는 분들을 봐도 그렇다. 권력이 후한무치한 자들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강교수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지만, 현실세계에서는 그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만한 예를 찾아보기 어려우니 답답하기만 하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대로라면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에 양모씨의 감사 내정이 거의 확실해진 모양인데, 필자가 보기엔 이 역시 후안무치의 전형이다. 언론에서는 양씨의 내정 배경을 거론하면서 탑동 매립 반대투쟁으로 대표되는 과거 민주화투쟁경력과 시민단체 활동 경력, 그리고 제주노사모의 핵심 멤버였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양씨가 과거 민주화투쟁이란 걸 했을 당시 필자는 제주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과거 운동방식이나 헌신성의 정도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현재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에 필요한 것은 전문성을 갖춘 능력이지 과거 운동경험이 아님을 말하고자 한다.

국제자유도시 건설은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줄 중대한 과제이면서 동시에 큰 도전일 수밖에 없다. 필자가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인근 자유무역항을 방문했을 때 체험하게 되었던 국제자유도시의 부가가치를 생각하면 큰 희망을 떠올리다가도, 후발주자로 출발하면서도 진지함을 갖추지 못한 현재의 우리 제주의 모습을 바라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정말 국제자유도시를 추진할 기구임이 분명하다면, 그리고 제대로 된 국제자도시를 건설할 의지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내부를 전문가들로 채워야한다. 민주화 투쟁 경력은 과거 시대상의 반영인데 반해, 국제자유도시는 전 제주민의 미래가 달린 중대한 과제임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주위에 양씨를 잘 아는 분들은 ‘양씨는 매사에 개혁적이고 원칙적인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감사직을 다른 이들보다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내부에 있는 지인(知人)의 말을 들어보면 개발센터 내부에 쌓인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한다. ‘직원들이 소신을 가지고 일할 만 하면 가끔 정치부로커들이 한 명씩 낙하산인사로 보직을 차지해서 앉고 있으니 일할 맛이 나겠느냐’는 것이다. 양씨가 정말 매사에 개혁적이고 원칙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에 대한 낙하산 인사를 거부할 줄도 알아야한다. 말로 하는 원칙이 사회발전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필자 역시 익명의 시민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10만 노사모의 일원이었지만, 양씨가 노사모 내부에서 얼마나 핵심적인 역할을 했는지 역시 난 잘 알지 못한다. 설사 그가 제주노사모 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대한 역할을 수행했다하더라도 그는 자연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초기 노사모를 이끌면서 자신의 사재(私財) 수억을 바쳐 빚더미에 앉았다는 명계남씨나, 2002년 대선 정국에서 혼신의 열정을 바쳐 지지자들에게 감동과 눈물을 선사했던 문성근씨나 모두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양씨에 비해 능력이 부족하거나 공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 것이다. 그들이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게 그들이 열정을 바쳐 세워낸 정부와 그들이 한 때 목이 터져라 외치던 ‘원칙과 상식’이라는 가치를 지키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 MBC TV에 ‘아줌마’라는 제목을 단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다. 당시 드라마가 인기를 끌게 된 원인으로는 아줌마 삼숙이(원미경역)의 배역도 좋았지만, 그 남편 장진구(강석우역)의 배역이 독자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실에 무능하고 무책임하면서도 자신보다 학력이 낮은 아내 삼숙이를 끊임없이 자신과 분리해내고자 했던 장진구를 통해서 드라마 '아줌마'의 작가 정성주씨는 386을 다음과 같이 나타내고 싶다고 했다.

‘80년대를 밑천삼아 90년대에 백가쟁명(百家爭鳴)을 과시하였으되 세상을 바꾸기는커녕  2000년대 정신적 공황을 초래한 사람들이다.’

난 작가의 이 지적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시대가 빨리 다가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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