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4.3 진상규명 예술운동 직접 알린 문재인 대통령 추념사

“제주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2018년 4월 3일, 제주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밝힌 추념사는 60만 제주도민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특히 제주 예술인들, 그 중에서도 4.3 진상규명 예술운동에 몸담은 예술인들에게는 더욱 특별했을 순간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4.3이면 직접 참석하거나, 혹은 메시지만 보내거나 나름의 평가와 위로를 전했다. 그러나 4.3예술에 대해 언급한 건 올해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수많은 4.3 단체들이 기억의 바깥에 있던 4.3을 끊임없이 불러냈습니다.
제주4.3연구소, 제주4.3도민연대, 제주민예총 등 많은 단체들이 4.3을 보듬었습니다.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 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습니다.

유신독재의 정점이던 1978년 발표한,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던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임흥순 감독의 ‘비념’과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故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는 세월’.
가수 안치환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

때로는 체포와 투옥으로 이어졌던 예술인들의 노력은 4.3이 단지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도민과 함께 오래도록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알려준 분들이 있었기에 4.3은 깨어났습니다. - 70주년 4.3 희생자 추념사 가운데 일부.
대중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대표 4.3 작품을 친절히 설명하고 예술운동의 노력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국가수반이 60만 도민과 전 국민에게 들려줬다. 

놀라운 건 이 뿐만이 아니다. 제주시인 김수열의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 이종형의 <바람의 집>, 4.3장편서사시 <한라산>의 작가 이산하의 <생은 아물지 않는다>까지, 시 세 편을 가수 이효리가 낭독했다. 모두 4.3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위령제단 앞에 대형 LED 화면을 설치했는데, <잠들지 않는 남도>를 합창 하는 동안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작품이 가사 뒤로 지나갔다. 현기영 작가는 4.3 영령의 명예를 당당하게 이야기하자는 추모글을 추념식에서 낭독했다. 국가추념식의 한 부분을 4.3예술이 채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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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 위령제단 위 LED 화면에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연작 그림이 등장했다. ⓒ제주의소리

감격스러운 순간을 마주하니 문득 생각나는 사연들이 있다.

제주 미술인 A씨는 “예전만 해도 4.3 예술 하면 '저거 빨갱이짓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종종 착잡하게 말하곤 한다. 얼큰하게 술에 취한 어느 날, 제주 문인 B씨는 경찰에 붙잡혀 당한 구타·조롱을 감내해야 했던 과거를 기자에게 털어놓은 일이 있다.

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서슬퍼런 분위기에 4.3을 공개적으로 꺼내기가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시기에 예술로써 4.3을 이야기하는 건 분명 용기 없이는 할 수 없던 일이다. 《순이삼촌》 발표 이후 군 정보기관에게 끌려갔던 현기영 작가의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4.3예술운동은 “빨갱이짓”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꿋꿋하게 세월을 버텼다. 어느새 세상은 묵은 적폐를 촛불 시민의 힘으로 몰아내는 변혁까지 일으켰다. 이제 4.3예술운동에 힘쓴 이들의 노력은 대통령의 말처럼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소중한 노력으로 재평가 받는다. 4.3을 위해 만들어진 제주민예총이 1994년 출범과 함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여는 문화예술축전이 대표적이다. 

김수열 시인은 “역사를 이야기할 때 예술은 공기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잠수함 속 토끼처럼 전위에 서곤 한다. 4.3 진상규명을 위한 예술운동도 1987년 현기영 작가에서 시작해 강요배 화백, 그리고 조직을 갖춘 제주민예총이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4.3을 편협한 이념의 잣대로 바라본 정권에서는 (4.3예술운동이) 탄압도 받았다. 그러나 이번 추념식에서 대통령 본인의 입으로 지금까지의 진상규명 운동과 예술가의 역할을 일일이 거명해줬다. 너무 고맙다”고 추념사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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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형진 제주의소리 기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4.3 70년을 맞아 예술운동은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했다. 미래 세대 전승이라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주목할 만한 노력도 눈에 띈다. 역사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삭제되지 않으려면 단순 사실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기억투쟁에 있어 예술은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지난 4.3예술운동을 인정해준 대통령의 70주년 추념사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이유다. / 제주의소리 문화부 한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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