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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는 3일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 4.3 70주년 뮤직토크콘서트 <4.3 칠십년의 기억>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4.3 70주년 기념 행사 ‘4.3칠십년의 기억’ “깊이 있는 내용과 음악 만족...자주 열었으면”

제주4.3을 차분한 강연과 음악으로 만나는 자리가 제주에서 열렸다. 무겁고 거대한 역사를 ‘미래 세대 전승’이란 눈높이에 맞춰 의미·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뮤직토크콘서트 <4.3 칠십년의 기억>이다.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주최·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4.3 70주년 뮤직토크콘서트 <4.3 칠십년의 기억>이 3일 오후 5시 30분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70주년의 의미를 4.3 전문가와 도내·외 뮤지션들의 이야기와 음악으로 풀어내는 자리다. 특히 청소년·청년층, 제주와 4.3에 대해 이제야 막 알아가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지나치게 무겁지 않으면서 꼭 기억해야 하는 4.3의 가치를 공유하고자 했다.

출연진은 엔터네이터 오상진의 진행으로 가수 최상돈·안치환·장재인, 연주팀 아트만(Atman), 제주할망 전문 인터뷰 작가 정신지, 그리고 4.3 전문가 김종민(전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이 출연했다.

행사는 ‘뮤직토크콘서트’라는 제목에 맞게 음악을 듣고 출연진이 이야기 나누는 순서를 반복했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김종민, 최상돈, 정신지는 고정 패널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안치환, 장재인은 노래와 함께 각자 생각하는 4.3이 무엇인지 짧게 들려줬다. 

순서는 ▲4.3을 말하다 ▲4.3을 알리다 ▲4.3을 만나다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로 진행됐다. 

김종민은 제주신문, 제민일보, 국무총리 소속 4.3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거치며 30년 넘게 4.3을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4.3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과 4.3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했다. 최상돈은 고집스럽게 음악으로 예술로 4.3을 파고들면서 느낀 점, 정신지는 6년째 제주의 할망·하르방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4.3은 무엇이었는지 생생한 사연을 전했다.

김종민은 “1987년 6월 항쟁 덕분에 민주화의 바람이 불면서 1988년부터 4.3 공부와 취재를 시작했다. 처음 취재했을 때만 해도 유족들에게 ‘4.3’이란 단어를 꺼내면 마루에도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며 “그러나 조금씩 보도가 되면서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마지못해 답한 사연도 신문에 나가는 모습을 확인하면 유족들은 큰 위로를 받았다. 제주4.3이 풍문 밖에 남아있지 않은 역사가 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유족이 살아있을 때 모든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7000여명을 인터뷰했다”고 지난 과정을 밝히며 큰 박수를 받았다.

4.3 자작곡 <세월>을 혼신을 다해 열창한 최상돈은 동백꽃이 왜 4.3을 상징하는지 알려줬다. 그는 “겨울꽃인 동백이 피고 지는 계절의 시기가 4.3 영령들이 대부분 돌아갈 때인 1948년 11월말부터 이듬해 2월까지와 묘하게 일치한다. 강요배 화백의 화집 <동백꽃 지다>에서도 나오지만 동백이 지는 모습을 보면 마치 그날의 참상이 떠오른다”며 “제주도 전통 굿에서는 동백이 생명꽃으로 다룬다. 생명을 상징하는 꽃이라는 점에서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상세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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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작곡 <세월>을 열창하는 최상돈.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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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상돈의 열창에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 ⓒ제주의소리

자신이 손수 녹음한 4.3 유족의 목소리를 들려준 정신지는 “할머니들에게 4.3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냐고 물어보면 ‘자식들 키우느라 바빴다’며 무심한 듯 이야기를 시작한다. 할머니들 모습은 옛 한라산에서 흐르던 마그마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 같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본인조차 침묵할 수밖에 없는 ‘살아지면 살아진다’ 여덟 글자만이 새겨진 화석과 같다. 이제는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생겨서 가슴이 많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음악 손님으로 찾아온 안치환은 1987년 대학 시절 이산하 시인의 4.3장편서사시 <한라산>을 읽고 감명 받아 <잠들지 않는 남도>를 만들게 됐다는 사연을 들려줬다. 4.3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난 4.3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음악 인생에서 4.3은 분명하게 자리를 차지한다”고 솔직한 답변을 내놨다.

안치환은 <잠들지 않는 남도> 이후 두 번째 4.3 노래 <4월 동백>을 라이브 무대로는 이날 처음 공개했다. 이어 <잠들지 않는 남도>, <자유>를 부르며 환호성을 받았다.

잔잔한 감성을 지닌 뮤지션 장재인은 ‘기억’에 대해 노래하는 자작곡 <버튼>, <그곳>을 불렀다. 그는 “제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절물자연휴양림, 성산일출봉에서 4.3 표지석을 봤는데, 아름답다고만 생각한 관광 명소에도 아픈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5.18 민주화 운동은 여러 경로를 통해 보고 듣는 배우는 기회가 있어서 기억하는데, 4.3은 그렇게 알지 못했다. 이제 4.3을 알고 나니 ‘내가 어떻게 이런 역사를 모를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4월 3일 제주에서 노래까지 하게 됐는데 앞으로 4.3을 주변에 알리겠다”는 나름의 포부를 전했다.

이번 행사는 미래 세대들에게 4.3을 보다 더 많이 알리기 위해 기획된 행사다. 출연진 역시 4.3 같은 끔찍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계속 기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종민은 “난 소심해서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럼에도 강의, 토크콘서트에 나가는 이유는 더 많은 이들에게 4.3을 잘 알리기 위해서다. 4.3에 대한 내용은 많은 책자와 진상조사 보고서에서 읽으면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4.3 당시 희생자 90%가 군인·경찰·서북청년회에 희생됐지만 10%는 무장대에게 당했다. 4.3의 이름 찾기는 120년이 흐른 동학혁명처럼 개인, 가족 역사를 뛰어 넘는 긴 호흡의 역사 이론으로 봐야 가능하다고 본다”며 “최근 항쟁이란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시간이 흐르면 더 나은 이름을 찾을 수 있다. 분단 반대운동, 통일 운동도 가능하다. 4.3의 이름을 붙이는데 성급해 하지 말자. 4.3을 체험했던 분들의 쓰린 마음을 치유하는 데 방점을 찍자”고 주장했다.

정신지는 “70년을 인내하고 침묵하는 삶을 그분들의 강한 내공이라고만 보지 말았으면 한다. 유족들과 슬픔을 함께 치유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방법도 어렵지 않다. 함께 이야기만 나눠도 그들에게는 슬픔을 치유하는 약이 된다”며 “미래는 과거의 심장으로 뛴다고 한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은 4.3의 슬픔 씨앗을 하나씩 받아가셨다. 그 씨앗을 각자 위치에서 심어 나무로 만들고 풍성한 숲으로 일구자”고 비유하며 객석의 환호를 이끌어 냈다.

최상돈은 “70년을 넘기지 않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4.3을 세대로 전승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4.3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명예는 과연 무엇일까. 그때 돌아가신 분들의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라고 물으며 “올바른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살았던 당시 도민들을 역사 위에 올려놓을 때 비로소 4.3의 명예회복이 가능하다”고 굳은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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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칠십년의 기억 공연 모습. ⓒ제주의소리

차분하면서 부드럽게 진행한 오상진은 “영광스러운 자리에 마이크를 잡게 해준 도민들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린다. 앞으로 4.3을 깊이 생각하며 널리 알리도록 노력하겠다”는 성숙한 마무리 인사를 전했다. 또 “내가 출현하는 JTBC 강연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곧 제주4.3에 대해 다룬다. 강사로는 현기영 작가가 출연할 예정”이라며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객석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좌동철(25), 박주은(24) 씨는 “제주에 살면서 어릴 때부터 4.3에 대해서는 들어보긴 했는데, 이렇게 자세히 들어본 기회는 없었다. 4.3을 직접 경험한 분들의 사연과 전문가의 설명과 함께 들으니 더 깊이 와 닿았다”며 “노래 공연도 있어서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런 토크콘서트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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