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jpg
근무조 소방관이 소화기-우편 배달...골든타임 준수 위해 물탱크·펌프차 동원
, 범법 내몰려

제주지역 일선 소방관들이 물탱크·펌프차량을 타고 소화기·안내문 배달 등의 업무에 동원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구급용도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차량이 애먼 곳에 출동하면서 소방관들이 졸지에 '범법자'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소방당국은 화재예방 차원에서 도내 취약계층과 홀로 사는 노인 등에게 소화기를 나눠주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배달' 업무에 물탱크차·펌프차, 구급차 등 현장 출동차량이 동원되고 있다는 점이다.

도내 모 119센터에서 근무하는 A소방관은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구급차량이나 물탱크차로 가정을 방문해 소화기와 화재경보기를 보급하고 있다. 응급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있다"고 토로했다.

각 119센터에는 순찰 용도로 활용되는 행정차량이 배치돼 있지만, 이 행정차량에 탑승한 채 센터를 비우게 될 경우, 1분 1초가 급박한 응급상황 발생 시 다시 센터로 복귀해 출동 차량으로 갈아타야 한다. 근무조의 소방관이 배달 업무까지 맡아야 하는 현실이 빚어낸 촌극이다.

높이만 3m에 달하는 소방펌프카나 물탱크차를 끌고 나가면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차체가 커 넓은 도로변에 차량을 세우고 소방대원들이 직접 골목을 누비며 소화기를 보급해야 한다. 교통이 번잡한 도심에서는 주정차 단속을 피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A씨에 따르면 119센터 대원들은 퇴근하면서 개인 차량에 소화기를 싣고 가구를 방문하기도 한다. 가뜩이나 출동 업무와 예방 업무가 가중되는 상황에서 초과근무를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1.jpg
이 뿐 만이 아니다. 일부 119센터 대원들은 이 출동차량을 몰고 다중이용업소에 대한 '소방안전교육 안내문'을 발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중이용업소란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재난 발생 시 생명·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곳으로 대통령령으로 지정된 식당, 유흥업소, 오락실, 목욕탕 등을 일컫는다. 관련 법에 따라 해당 업소들은 2년에 한 번 소방안전협회가 주관하는 소방안전교육을 받아야 한다.

소방당국은 이 소방안전교육 안내문을 유선이나 팩스로 전달하는데, 연락이 닿지 않을 경우 대원들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기도 한다. 이마저 일선 소방관들이 소방차·구급차를 타고 방문해야 하는 실정이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가 집계한 소방안전교육 현황에 따르면 도내 소방안전교육을 받은 다중이용업소는 2015년 746곳, 2016년 1621곳, 2017년 1929곳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워낙 수가 많아 소방안전교육 안내문을 전달하는 것도 이들에게는 또 다른 부담이다.

제주시내 모 119센터에서 근무했던 소방관 B씨는 "제주시에 등록된 다중이용업소는 워낙 그 수도 많은데다가, 새로 생기거나 주인이 바뀌는 업소가 많아 수시로 안내문을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

모 소방서 관계자는 "단란주점, 노래방 같은 유흥업소는 주로 밤 늦게 영업을 하기 때문에 주간에 전화 통화가 어렵고, 우편을 발송해도 반송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직접 안내문을 전달해야 하지만 이마저 인원이 부족하다보니 구급차량을 타기도 한다"고 말했다.

단순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응급의료법 제45조는 구급차의 용도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구급차는 △응급환자 이송 △응급의료를 위한 혈액·진단용 검사대상물 및 진료용 장비 등의 운반 △응급의료를 위한 응급의료종사자의 운송 △사고 등으로 현장에서 사망하거나 진료를 받다가 사망한 사람을 의료기관 등에 이송 △그 밖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용도 등으로만 사용돼야 한다.

소방차량도 행정안전부의 '소방장비 관리 규칙'에 그 용도가 정해져있다. 당연히 소화기 배달이나 소방안전교육 안내문 발송은 해당하지 않는다. 

소방당국 내부에서도 구조적인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토로하고 있다.

모 소방관은 "우편을 적극 활용해 안내문을 발송해야 효율적인 예방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교육을 받지 않은 책임은 업주에게 있지, '안내문을 못 받아서 몰랐다'고 해서 소방관이 책임을 져야하는 구조는 문제가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소방에서 교육 안내를 하다보니 당연한 소방의 의무로 생각하지만, 의무가 아닌 안내 업무다. 이 점이 보다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고 개선을 요구했다.

또 다른 소방관은 "구급용도 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 차량으로라도 우편발송을 하라고 하면서 또 5분 출동은 지키라고 한다. 3곳 정도 돌다보면 하루가 다 간다. 어떻게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겠나"라며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예산배정을 통해 인력이든 장비든 추가적으로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