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서정을 품은 현택훈 시인의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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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택훈 시인의 새 책《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제공=걷는사람. ⓒ제주의소리

세 번째 시집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발간

제주출신 현택훈 시인의 새 책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걷는사람)가 최근 발간됐다.

이번 세 번째 시집에서 시인은 180쪽에 걸쳐 70여편의 작품을 수록했다. 제주도를 일주하는 버스 안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무척 반가운 시집 전문서점 '시옷서점' 안에서, 따뜻한 남쪽 서귀포 도서관에서 꾹꾹 눌러 쓴 시들을 정성스레 모았다.

출판사 걷는사람은 “제주의 평범한 일상과 아픈 제주의 기억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이런 시편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혼합된 현택훈 만의 새로운 제주를 마주한다”고 새 책을 소개한다.

더불어 “현택훈에게 제주는 자신을 시인으로만 기억하는 친구가 묻힌 땅이기도 하며 지키지 못한 약속을 뒤늦게 라도 이행해 그 이름을 한 번 더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는 애틋함을 가지게 하는 장소다.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 것은 그와 그의 고향을 모두 일컫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솜반천길
현택훈
 
물은 바다로 흘러가는데
길은 어디로 흘러갈까요
솜반천으로 가는 솜반천길
길도 물 따라 흘러
바다로 흘러가지요
아무리 힘들게
오르막길 오르더라도
결국엔 내리막길로 흘러가죠
솜반천길 걸으면
작은 교회
문 닫은 슈퍼
평수 넓지 않은 빌라
솜반천으로 흘러가네요
폐지 줍는 리어카 바퀴 옆
모여드는 참새 몇 마리
송사리 같은 아이들
슬리퍼 신고 내달리다
한 짝이 벗겨져도 좋은 길
흘러가요
종남소, 고냉이소, 도고리소,
나꿈소, 괴야소, 막은소……
이렇게 작은 물웅덩이들에게
하나하나 이름 붙인 솜반천 마을 사람들
흘러가요

우리말 사전
현택훈

누굴까요 맹물을 타지 않은 진한 국물을 꽃물이라고 처음 말한 사람은
며칠 굶어 데꾼한 얼굴의 사람들은 숨을 곳을 먼저 찾아야 했습니다 마을을 잃어버린 사람들 한데 모여 마을을 이뤘습니다 눈 내리면 눈밥을 먹으며 솔개그늘 아래 몸을 움츠렸습니다 하룻밤 죽지 않고 버티면 대신 누군가 죽는 밤 찬바람머리에 숨어들어온 사람들 봄 지나도 나가지 못하고 동백꽃 각혈하며 쓰러져간 사람들 사람들 꽃물 한 그릇 진설 합니다
누굴까요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를 비꽃이라고 처음 말한 사람은 

추천사를 쓴 성윤석 시인은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의 시편들은 잔잔한 바다 위의 물결과 같다. 이 한 권의 시집을 통해 언어로 전달되는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과 우리의 고향을 한 번 쯤 추억해 보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추천했다.

시인은 소개의 글에서 "떠나는 사람을 붙잡으려 시를 썼더니 그 사람이 떠나지 않고 옆에 있다. 그 사람이 잘 떨어지지 않아 난처하다. 제발 이제, 그만 잊어야 하는데 당신은 내게 귓속말로 속삭인다.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귀를 막아도 다 들린다"며 책 전반에 흐르는 감성을 들려줬다.

현택훈 시인은 1974년 제주에서 태어나 2007년 《시와정신》으로 등단했다.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지용신인문학상, 4.3평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제주시 아라동에서 시집 전문서점 ‘시옷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180쪽, 걷는사람,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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