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반석탕의 탄생
‘문화공간’ 반석탕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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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희의 예술문화이야기] 35.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삼도2동 옛 목욕탕 '반석탕'

“제가 오래된 것들을 좋아합니다.” 

박미경 기획자는 수줍게 말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1월 말, 제주시 삼도2동 남성마을에 위치한 반석탕에서 그는 손을 비비며 혼자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제주에 온지 7개월,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운영하는 문화기획학교를 이수하고 결과를 보여주는 프로젝트로 반석탕을 선택했다는 그는 숨 가쁘게 산 시간의 고단함보다 오래된 목욕탕을 문화공간으로 만든 보람을 나누고 싶다는 듯 친절하게 전시장 곳곳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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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석탕을 소개한 박미경 기획자.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반석탕에는 지금도 소용천이 흐릅니다>는 1974년 세워진 후 남성마을 주민들을 맞이하다가 2010년 문을 닫은 목욕탕 반석탕의 역사와 남성마을에 흐르던 소용천의 과거를 끌어와 장소의 고유한 특성을 기록하고 해석한 전시이다. 박미경이 문화기획학교에서 만난 동료들(양정보, 김지호, 진주화), 그리고 지도교사 강술생과 공동으로 준비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던 탕과 때를 밀던 자리에 영상작업이 설치되고, 젖은 몸을 말리던 거울에는 텍스트 작업이 자리했다. 낡고 때 묻은 것들과 최첨단 기술에 ‘개념 있는’ 생각들이 혼합되어 반석탕 바깥의 흔하고 평범한 시간과 달리 긴장되고 반짝이는 시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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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탕의 영상 작업.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반석탕의 보일러실에는 ‘빛과 소리’의 <산으로 가는 극>이 선보이고 있다. ‘빛과 소리’는 문화기획학교에서 미디어 아트에 관심을 가진 이현태, 김누리 작가가 만든 팀으로, 남원의 ‘이승악’에서 진행했던 실험극 ‘산으로 가는 극’의 자료들, 즉 자연을 영상과 소리로 기록한 자료를 가져다 전시로 만들었다. 거대한 보일러 기계들 사이에 자연의 흔적들이 들어왔다. 낡은 기계들 사이로 녹음된 귀뚜라미 소리와 숲의 풍경을 듣고 보면 잠시 시공간을 뛰어 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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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일러실의 '빛과 소리'의 전시 장면.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제주시 원도심에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문화공간이 그동안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시와 도의 주도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황지식당, 유성식품, 예술공간 이아, 산지천 갤러리 등등. 그 외에도 삼도 2동에 시와 도의 지원을 받고 유지되고 있는 예술공간들도 있지만 대부분 힘들게 공간을 준비한 것에 비해 지원이 끊기면 유지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지원을 크게 받지 못한 반석탕도 마찬가지다. 

불투명한 미래와 적은 전시준비 비용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공간으로 만든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그 힘든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동력은 구제주의 매력과 그 매력을 살리려는 ‘미친 열정’이다. 박미경은 미술을 전공했지만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다 제주로 왔고 낯선 도시를 매일 걷다가 발견한 반석탕은 그의 미래를 바꾸었다. 직접 목욕탕 주인가족을 만나 설득하고 전시공간으로 허락받은 후 동료들과 같이 내부를 철거하고 다듬어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몇 달에 걸친 노력과 노동에 대한 금전적 대가는 없다. 대신에 무수한 언론과 방송에서 이 전시와 반석탕의 재탄생을 소개해 주었고, 원래 1주일 정도 예정되었던 전시는 올해로 연장할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원도심을 아카이빙 해온 도시재생지원센터가 관심을 가지면서 지원을 했고 그 덕으로 1월부터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2월부터 다른 전시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렇게 문화공간 ‘반석탕’은 만들어지는 중이다. 언제까지 운영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 일대가 도시재생사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운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안은 문화공간은 이 시대의 주목할 현상이다. 과거에는 터를 잡을 만하면 임대료 상승으로 쫓겨나는 문화공간에 대해 측은한 시선으로 보곤 했었다. 그런데 문화공간을 열 때부터 단기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떠나는 젊은 작가와 기획자들이 늘고 있다. 오래된 도시와 동네에 창의적 정신을 가진 이들이 들어와 낡은 공간을 리모델링하고 1-2년 정도 문화공간을 운영하다가 문을 닫고 떠나는 현상은 2000년대 이후 특히 지난 5-6년간 한국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1990년대의 상업화랑과 대조적으로 실험적인 정신을 담으며 떠오른 ‘대안공간’이 동력을 잃고 소수만 살아남았던 반면에, 최근의 ‘신생공간’들은 미술인이 많이 다니는 사간동, 홍대입구 등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을 거쳐 상업화된 지역을 벗어나, 을지로, 상봉동 등 미술과 거리가 먼 변두리로 나가 장소를 확보하고 SNS를 통해 활동을 알리다 장소계약기간이 끝나면 문을 닫곤 한다. 

이러한 현상을 이끈 이들은 상업화, 권력화된 미술계에서 얻을 것이 적다고 스스로 판단한 젊은 세대였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기회는 절실하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미술계 주변을 기웃거리며 기회를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대신에 스스로 임대료가 낮은 지역과 공간을 찾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계약기간 만료와 함께 문을 닫고 떠난다. 그들 중에는 작가도 많고 간혹 작가와 기획자가 그룹으로 활동하기도 하다. 따라서 사람들이 몰려와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던 과거와 달리 짧은 운영시간으로 인해 임대료 상승이나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그 자유는 공간의 명칭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아마도예술공간’부터 ‘반지하’, ‘호텔수선화’, ‘800/40’(보증금 800에 월세 40만원이라는 의미) 등 지금 시대의 현실을 반영한 것들이 많다. 

도시재생과 청년예술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요즈음의 제주를 보며 한 ‘예비 문화기획자’가 스스로 ‘문화기획자’로 성장하며 이끌어낸 문화공간 반석탕이 좋은 사례가 되었으면 좋겠다. 제도권의 영향력에 기대어 한 곳에 터를 잡으려 노력하기보다, 잠시 머무는 ‘임시성’의 강렬한 힘에 기대어 스스로 창작기회를 만드는 이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이끌고 도시재생지원센터가 당기는 모양새가 아니라, 그 제도의 과실을 따먹으면서도 창작과 표현의 밀도와 강도를 깊이 있게 만드는 이들이 주도적으로 문화의 흐름을 이끌면 공공기관이 쫓아갈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낡은 도시를 어떻게 활성화할지 갑론을박하는 현실을 넘어서, 서로 날선 공방을 주고받으며 황폐해가는 현실을 넘어서, 폭력적인 언어를 비틀고, 당연한 지식을 흔들어 의식을 깨우는 이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필자 양은희는...

양은희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후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뉴욕시립대(CUNY)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조우: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여러 미술잡지에 글을 써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공저, 2017)의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아방가르드』(1997),『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전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현재 스페이스 D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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