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내 생명이 게보다 우월하다 오만하진 않았을까…

도마 위에 소라 껍질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안에 빨간 게 한마리가 들어 있었다.

빈 소라 껍질에 기어 들어 가 산다 하여, '기들래기'라 부르는 그 게의 삐죽이 나온 집게발은 흰 밥알 몇개를 움켜쥐고 있었다.

주방 할머니에게 웬 게냐고 물으니, 소라들 속에 섞여 있었다면서, 키울거라 했다.

밥을 먹냐 하니, 벌써 한 덩어리는 먹고 남은 것을 저렇게 쥐고 있지 했다.

밥알을 움켜쥔 남의 집살이 게가 웬지 안스러워 보였다.

스무명이 10분 안에 도착할 예정이니, 빨리 준비해 달라는 예약 전화를 받고, 갑자기 바빠져서 게는 잊어 버렸다.

전국에서 유명한 신부님은 다 오셨으니, 잘 모셔 달라는 예약자의 청이 있었고,

나는 정신 없이 바빴다.

유명한 신부님들이라 해도, 카톨릭 신자도 아닌 내가 아는 신부님은 거의 없지하는데,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본,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새만금을 살리자고 삼보일배하던 신부님...그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공연히 부끄러웠던 기억이 났다.

혹시..하는 생각에 손님들 나가실 때 꼭 알려 달라 하였다.

전에 유명한 연기자들, 이정재나, 허준의 전광렬이 두 번씩이나 다녀갔어도, 공연히 쉬러온 사람들 피곤하게 수선 떨지 말라하던 나였는데, 이번엔 달랐다. 만약 그 신부님이 오셨다면 꼭 인사를 하고 싶었다.

"손님 나가셔요." 주방을 향한 외침에 서둘러 나가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작은 체구에 안경 낀 까만 얼굴, 나는 신부님을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텔레비젼에서 보았다며 달려가 인사했더니, 신부님은 내 손을 잡고 가볍게 안으며
"새만금이 살아야 우리도 살아요."한다.

왜 그 말에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전에도 그러더니, 그 앞에서 다시 한없이 부끄러웠다.

글쎄, 그건 내가, 그가 살리려는 바다 생물들을 잡아 죽여 먹고 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어떤 이는 사회, 인간, 자연을 다 보살피며 사는데, 똑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나는, 내 생명, 내 가족을 위해 살기도 이렇게 정신 없나하여 부끄러운 것이다.

내 자신이 꼭 밥알을 움켜 쥐고 있는 남의 집 살이 게같다.

"사인 하나 받아둬요." 일행 중 한 분이 말했다.

허둥거리는 통에 적당한 종이를 찾을 수가 없어, 가까이 있는 달력의 뒷면을 내미니,신부님은 '생명은 하나입니다. 천주교 정의 구현 사제단 문규현'이라고 써서 건네주고는 다시 오겠다며 인사 하고 나갔다.

생명은 하나, 생명은 하나같이 소중하며, 한번 죽으면 끝이라는 말이리라 , 달력 뒷면에 적은 글귀를 마음에 새기며 주방 정리를 하고 있었다.

수족관 아래 선반 위에 둔, 뜨거운 기름이 든 튀김팬 속으로 무언가 뽀르르 빠져 들었다.

뭔가 싶어 얼른 꺼내 보니, '기들래기' 게다.

누군가 도마 위에 있던 걸 수족관 위에 올려 놓았는지, 이왕 옮겨 놓을 거면 수족관 안으로 집어 넣을 일이지, 하필 거기에 올려 놓아서....

고무 장갑 낀 내 손에는 고무장갑 색깔의 게가 뜨거운 기름을 뚝뚝 흘리고 있었고, 수족관 위에는 그가 얼마간 살았던 집, 소라껍질만 덩그라니 남아있었다.

기름의 뜨거운 기운이 내 머리까지 옮아 왔는지, 갑자기 머리가 뜨거워졌다.

문규현 신부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또 한없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내 무심함에 나를 닮은 게는 집게 발을 허우적대며 죽어 가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 내가 움켜쥐고 사는 것들을 툭 놓고 죽게 될 것이다. 좀 전까지 게가 집과 밥을 움켜 잡고 있었듯이 .

남의 집 살이 게도, 그 안에 살던 소라도, 나도, 문 신부의 생명도 하나 같이 소중한 것을 , 내 생명이 소라, 게, 게불보다 우월하다 여겨 오만하지 않았을까.

세상의 모든 생명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소라껍질같은 집, 집게 발로 움켜쥔 밥처럼 내것만을 움켜 쥐려 하지 않았을까 .

속이 거북했다.

그 파르르 떠는, 나를 닮은 게의 집게발이 나를 사정없이 꼬집어 대고 있었다.

가슴 아프도록 부끄러운 날이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