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장애인야간학교 제2회 졸업식…초·중·고등과정 7명 이수

"16년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
"오늘은 초등과정 졸업이지만 대학입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겠다"

   
 
 
29일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는 특별한 졸업식이 진행됐다.

바로 제주장애인야간학교 학생들의 졸업식.

과거,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걸을 수 없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배움의 기회를 빼앗겼던 이들이 이날 감격의 졸업식을 가졌다.

이날 졸업식에는 졸업생 7명 가운데 1명만 불참하고 6명의 졸업생이 참석했다.

▲ 졸업장을 받고 있는 강경임씨.
졸업식의 주인공들은 초등과정을 이수한 이정희씨와 강경임씨, 윤명희씨, 중등과정을 이수한 김기홍씨와 고봉균씨, 고등과정을 이수하고 대학입학을 목전에 두고 있는 강윤미씨와 이승훈씨였다.

이정희씨(53)는 고1인 아들을 두고 있는 늦깍이학생이다.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한을 이제야 조금 푼 것 같아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학교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지만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을 느낀다"며 "집에서는 아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

"배움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지금에서라도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너무 기쁘다"는 이씨는 야학을 다니면서 아쉬웠던 점으로 실험과 실습의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을 들었다.

"과학원리 같은 것은 말로만 들어서는 이해가 잘 안된다"며 "실험같은 걸 한다면 이해가 잘 될 것 같은데 그럴 여건이 안 된다는 게 조금 아쉽다"고.

최종 목표를 대학입학에 두고 이제 첫발을 내딛는 강경임씨(40)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고 얼떨떨하다"며 "우연한 기회에 야학을 다니게 됐고 또 정신없이 시험을 치렀는데 검정고시에 떡하니 합격해 버렸다"고 웃는다.

"원래 내가 머리는 좋았지"라고 너스레를 떠는 강경임씨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싶다는 김기홍씨.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싶다는 김기홍씨는 이날 중등과정을 이수했다.

김기홍씨는 제주장애인야학 1회 입학생으로 지난해 초등과정을 이수했고 올해는 중등과정을 이수했다.

김씨는 "내년에는 고등과정을 이수하고 대학에 들어가 사회복지를 전공할 계획"이라며 "사회복지를 전공해 나도 도움을 받기만하는 사람이 아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말했다.

▲ 아들 고봉균씨의 졸업식에 참석한 어머니 변영숙씨.
졸업을 "마냥 기쁘다"고 표현한 고봉균씨(31)는 뇌성마비장애를 갖고 있다.

졸업식장을 찾은 고씨의 부모와 고모는 교육과정을 무사히 잘 마쳐준 아들과 조카가 너무 대견스럽다.

고씨의 어머니 변영숙씨(61)는 "아픈 몸때문에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던 봉균이가 이렇게 졸업하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며 "예전에는 오늘처럼 전동휠체어나 도우미도 없었고 장애인에 대한 지원도 이뤄지지 않아 봉균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은 엄두도 못냈다"고 아들의 졸업식을 감격스럽게 지켜봤다.

국어국문을 전공하고 싶다는 강윤미씨(39)는 오는 11월 대학교 합격자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다.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제주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원서를 낸 강씨는 "공부를 하는 순간만큼은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여느 학교에서의 생활처럼 공부하기 싫은 날은 선생님을 졸라 수업을 중단하고 놀던 것도 기억이 남는다"는 강씨는 몸이 약해 초등학교까지 학교를 다니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남들처럼 공부할 시기에 공부를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었다는 생각은 않는다"며 "간혹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땡땡이도 치면서 그렇게 열심히 하겠다"고 웃는 강윤미씨.

▲ 선생님들과 기념사진 찰칵! 강윤미씨.
조만간 그녀에게서 대학 합격이라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강씨와 같이 고등 과정을 이수하고 역시 대학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의 행정학도 이승훈씨(34).

이씨는 정규교육과정으로 고등학교까지 다녔지만 졸업을 하지는 못했다. 그때가 18살. 이후 16년만에 고등학교 졸업장을 갖게 됐다는 이승훈씨는 "항상 마음 한켠을 짓누르고 있던 아쉬움을 이제 비로소 해소하게 됐다"고 졸업소감을 밝혔다.

▲ 행정학도를 꿈꾸는 이승훈씨.
이씨는 제주대 행정학과에 입학원서를 제출한 상태로 "행정전문가가 되서 장애인들의 입장에 가까운 행정을 펼쳐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야학에서 많은 분들을 알게 됐고 그 분들과의 교류가 많은 도움과 힘을 줬다"고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고관철 교장(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당연한 권리인 교육받을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비록 야학을 통해 만학의 길을 걷게 됐지만 모든 과정을 잘 따르고 좋은 성과를 올린 졸업생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기뻐했다.

이어 "하지만 학생들을 졸업시키는 마당에 또하나의 걱정이 앞선다"는 고 교장.

고관철 교장은 "초·중·고등과정은 야학과 검정고시 등을 통해 학업을 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대학에 갔을 때는 또 달라진다"며 "지금의 학교의 문턱은 장애인에게 너무나 높다"고 말했다.

고 교장은 "이동권과 통행권에 제약을 받는 것뿐 아니라 장애인을 위한 대학내 학습 지원시스템이 너무나 미비한 게 현실"이라며 "앞으로 학교가 비장애인 뿐 아니라 장애인도 배우고 싶다는 마음만 있다면 제약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장애인 편의시설 뿐 아니라 학습 지원시스템도 충분히 갖춰지는 날이 왔으면 한다"는 바람을 말했다.

이날 졸업장을 안고 기쁨의 미소를 짓던 졸업생들이 소망하는 일을 위해 조금 늦은 걸음일지라도 끝까지 정진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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