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행방불명인 개인표석 도민토론회…"공원 전체조화 고려해야"
토론자 "후대 위해 간소화…획일적 표석 지양하고 조형미 고민해야" '일성'

▲ 10일 오후 열린 도민토론회에서 4.3행방불명인 표석 설치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4.3희생자 행방불명인에 대한 개인 표석 설치에 대한 논란을 매듭짓고 '어떻게 설치할 것인가'에 대한 지혜가 서둘러 모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이미 4.3유족회의 설문조사 결과 행불인에 대한 개인표석 설치에 대한 여론이 높아진데다 곳곳에 새겨질 희생자 이름에 대한 중복설치를 피하고, 후세대를 위해 표석을 간소화하는 등 획일적인 표석 설치가 지양돼야 한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아울러 천편일률적인 독비형태의 '개별 표석'에 대한 조형미를 감안해 전체 평화공원과의 친환경적인 조화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는 등 앞으로 '공원 설계'에 반영되기까지 적지 않은 숙제가 남겨졌다 .

토론에 앞서  4.3유족회는 결의문을 채택해 "국회에 계류 중인 4.3특별법 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 기간에 반드시 통과돼 진정한 해원의 길로 갈 수 있도록 해 달라"며 국회에 건의했다.

▲ 4.3 희생자 1만4000여명 신위를 모신 위패봉안소가 너무 협소해 개인 추모 공간을 마련해 달라는 유족들의 요구가 일찍부터 제기됐었다.
"역사의 현장 '백조일손묘역'...성공 사례로 삼아야"

10일 오후 2시 제주미디어영상센터(옛 제주민속관광타운)에서 열린 '제주4.3사건희생자 행방불명인 개인표석 관련 도민토론회'에서 박찬식 제주대 연구교수(4.3연구소 연구실장)는 "20~30년 후면 4.3평화공원내에 기념관, 기념탑, 조형물 등이 남게 될 것"이라며 "우선 후세들이 영원히 볼 수 있도록 주변과의 조화를 잘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 박찬식 제주대 연구교수
이날 '4.3행발불명인의 진상규명과 위령사업 방향'에 대해 주제발표 한 박 교수는 먼저 "묘역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다"면서도 "제주도의 공동체 의식과 집단 문화를 응집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표석 설치의 명분과 취지에서 볼 때 시대적으로 함께 집단 희생을 당했다는 사실이 잘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충혼묘지식으로 군대식 표석 배치는 4.3정신과 맞지 않아 지양해야 할 것"이라며 "유가족들의 애절함을 담아내고 공동체적인 요소와 집단학살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낼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집단군집형 설치 방식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집단적 학살 현장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백조일손묘역의 경우도 좋은 선례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그루마다 희생자 생명 심어 '평화의 숲'을 조성하자"

▲ 강원철 도의원
강원철 도의원은 "그간 표석을 둘러싼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구체화, 현실화되지 못했다"며 "2단계 사업 추진때 반드시 행불인 표석 설치가 매듭지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 의원은 이어 "위패봉안소, 사료관, 각명비, 개인표석 등 무려 4곳에 이름이 새겨진다"먀 "앞으로 형무소별 희생자나 별도의 마을 학살지 등의 집단학살지를 중심으로 위령비가 세워지면 더 많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표석만이 유일한 대안인가'라고 되물은 강 의원은 "매장 일색에서 장례풍습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며 "독비 외에 다른 대안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합리적인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이날 강 의원은 "평화공원내 일정 공간을 확보해 각 나무(수종) 밑에 표석을 설치하는 방식의'평화의 숲'을 조성하자"며 "가령 거친오름 서쪽에 시유지를 활용한다면 나무 한 그루에 생명과 평화를 담고 이를 염원하는 의미있는 작업이자 명소가 될 것"이라고 서구식 수장(樹葬) 문화의 도입을 제안했다.

아울러 "관람자에게 4.3과 희생을 기록하는 표석이 되기 위해서는 표석에 생사일시를 넘어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낱낱히 기록해 인권 교육의 장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며 "특히 집단군집형으로 시설하는 방식을 좀 더 고민해 4.3 집단학살의 의미를 살렸으면 한다"고 박 교수의 입장을 지지했다.

 

▲ 토론회에 쏠린 유족들의 눈

"관습적인 비석은 위패봉안소가 대신...중복성 탈피해야"

▲ 박경훈 제주전통문화연구소장

당시 '4.3평화공원 현상설계' 공모작 자체가 지역의 역사성과 4.3의 진정성을 담아내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는 박경훈 제주전통문화연구소장(화가)은 "4.3사료관 내용은 많은 내용을 변화시켰지만 공원 전체의 모습을 바꾸는데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운을 뗐다.

"관습적인 비석은 위패봉안소가 대신하고 있다"는 박 소장은  "별도의 비석을 설치하는 것은 희생자의 원혼을 모신 위패들이 중복 설치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오키나와에 40만명의 이름을 기록해 놓은 비석으로 소위 '각명비'를 세워 놓았지만 감동이 없다"며 "단순한 성명만 나열하는 각명비는 의미가 없다"고 차별화된 방식의 표석 설치를 주문했다.

이어 "만약 표석 설치가 이뤄진다면 희생자의 성명. 성별. 연령. 죽은 장소와 경위를 기록해 놓는 등 기존의 비를 대체하는 '인권 교육' 차원의 기념비가 필요하다"며 "곳곳에 설치될 비석의 중복성 탈피를 위한 고민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 이재후 4.3유족회 조천지회장
또 "사료관에 설치될 4.3영상물에도 1만4000여명의 4.3희생자 명단을 기록하고 스크린에 올릴 계획으로 있다"며 "행불인만 별도로 표석 설치를 고민하는 것은 전체 희생자의 입장에서 볼 때 다소 이질적으로 비쳐질 수 있어 '모두 같은 희생자'라는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고찰하는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울러 "위패봉안소 뒤쪽 4500여평의 공간에 별도의 묘역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원론적인 제안에는 찬성했다.

"도지사가 참석해야 경찰청장도 참석할 것 아니냐" 성토

이재후 4.3유족회 조천지회장은 "원래 희생자 전원에 대해 표석을 세우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시신을 찾은 이들이 양보를 하자는 차원에서 행불인 표석의 필요성이 제기됐다"며 평화공원에 희생자 전원의 표석이 세워지지 못하는데 대한 유족들의 아쉬움을 피력했다.

그는 "올해 대통령의 4.3평화공원 방문과 참배까지 이어지면서 4.3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여전히 4.3특별법 개정안이 발목잡히는 등 요원한 것 같다"며 정부와 행정당국의 각성을 촉구했다.

특히 한 4.3유족은 "이 같은 중요한 행사에 특별자치도지사가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은 4.3에 대한 홀대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거칠게 비난하고는 "도지사가 참석해야 경찰청장이 참석하고 이후 많은 군.경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등 4.3 유족들의 아픔을 제대로 인식할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행방불명인을 위한 상징적인 위령공간 필요...조형적 요소 살려야"

▲ 장윤식 제주4.3연구소 책임연구원
장윤식 4.3연구소 책임연구원은 "4.3평화공원은 위령공간의 성격도 갖지만 역사공원으로서 4.3정신과 평화정신을 함양하는 공간으로 도민을 비롯해 국내.해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문화공간의 성격도 갖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장 연구원은 "3400여명의 적지않은 행불인 개개인에 대한 표석은 바둑판식의 충혼묘지처럼 도식화될 우려가 있다"며 "희생당한 원인과 사건의 경위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다른 토론자의 입장에 동의를 표했다.

장 연구원 역시 '과연 개인표석만이 대안일까'라고 되묻고는 "상징적인 조형물 차원에서 집단적인 표석 조성 방안이 함께 논의되어야 하며 4.3정신과 취지에 맞게 상징화할 수 있는 고민 또한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모든 유족들이 참여해 집단적으로 표석 설치 작업을 벌이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이 같은 형식을 빌면 행불인을 위한 의미있는 공간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나름대로 제시했다.

이어 "무엇보다 천편일률적인 표석 설치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최대한 조형성을 살리고 상징적 위령공간으로 만들어 나가는 노력과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희생자 전체 '각명비'와 '행불인 개인표석'...공원 전체의 조화와 조형성 차원서 논의돼야

하지만 이날 희생자 전체를 기리는 '각명비' 설치와 함께 '행불인 개인 표석'에 대한 상호 관련 논의가 다소 부족해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이날 희생자를 기리는 각종 표석 설치와 관련, 공원전체의 조화와 조형적 요소에 바탕을 둔 구체적이고 총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표석 설치를 위한 현실적인 고민으로 남겨졌다.

이러한 총체적 논의는 4.3평화공원내 각종 시설물에 대한 상호 조화로움를 위해서도 필요한데다 차후 공원 실시 설계에 반영하는 과정이 남아 있어, 보다 구체적이고 실행적인 대안과 함께 서둘러 매듭지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 이날 대부분 토론자들은 행불인 개인표석 설치를 위해선  '공원 전체와의 조화'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제주도4·3사건희생자유족회가 지난 9월 유족 509명을 대상으로 한 '4·3평화공원내 행방불명인 개인표석 설치'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행불인을 위한 개인표석 설치에 대한 공감대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 한 4.3 유족이 수많은 위패속에서 4.3 당시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가족 위패를 찾고 있다.
설문 결과 유족들은 '위패 봉안실'에 대해 상당수(73.6)가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희생자 전원 표석 설치'에 대해서 10명 중 6명이 '꼭 필요'(60.1%)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 현 봉안실이 너무 협소해 개인 추모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는 점 ▲ 이유 없이 돌아가신 것도 억울한데 화해와 상생의 의미 차원으로 영혼을 달래고 넋을 기리고 싶다는 점 ▲ 후손의 당연한 도리인데도 성묘나 참배를 할 수 없다는 점 등을 꼽았다.

특히 '행방불명인 개인 표석 추진'에 대해 유족 대다수(78.2%)가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이는 등 다른 유족들도 행불인에 대한 개인 표석 설치에 대해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행방불명인 개인 표석 설치 비용'은 대부분(84.9%)이 '전액 국고 지원에 의해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 '국가차원에서 당연히 희생자에 대해 지원해줘야 한다'는 4.3유족들의 인식을 반영, 정부와 행정차원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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